항해기록

레인보우 워리어는 전 세계 바다를 항해하며 포경, 전쟁, 지구온난화, 그 외 다양한 환경 범죄에 대항해 왔습니다. 레인보우 워리어는 법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환경 범죄에 맞서 싸웠으며, 방사능으로 오염된 남태평양 섬나라 주민들을 이주시켰을 뿐 아니라, 쓰나미 피해자를 위해 구호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1979 아이슬란드 해역으로 돌아와 다시 포경선에 맞서 싸웠습니다. 5개의 작살이 레인보 워리어 선원들의 머리 위로 날아왔고, 이후 레인보 워리어와 선원들은 불법적으로 억류되었습니다.

1980 일본에서 핵 폐기물을 가져오는 데 반대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해군 함대와 충돌하는가 하면, 수 톤에 이르는 화학 폐기물을 북해에 투기하려는 선박을 봉쇄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스페인에서는 반포경 캠페인을 계속햇습니다.

1982 캐나다 동부의 세인트로렌스 만에서 바다표범 캠페인을 벌이는 동안 일부 승선원이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유럽경제공동체(EEC)이 새끼 바다표범 가죽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바다표범 사냥은 몰락하였습니다. 한편 계속된 반포경 캠페인의 결과, 페루에서는 포경이 금지되었습니다.

1983 베링 해에서는 심해 유자망 연어 어업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했고, 시베리아에서는 러시아의 불법 포경 활동을 기록했습니다. 선원들이 체포되는 상황이 벌어졌으나 이후 국제 사회의 항의로 풀려났습니다.

1985 태평양에서 핵 실험을 감행하려는 프랑스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준비하던 레인보우 워리어는 프랑스 정보기관 요원이 설치한 폭탄 때문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원이자 그린피스의 사진 작가였던 페르난도 페레이라가 사망하였습니다.

1989 첫 번째 레인보우 워리어가 침몰한지 정확히 4년 뒤인 1989년 7월 10일, 그린피스는 두 번째 레인보우 워리어를 출범하였습니다. 이후 곧바로 유럽 투어를 시작하여 뉴욕에서 오픈 데이 행사를 가진 후, 타스만 해역의 유자망 어업 캠페인을 준비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향했습니다.

1990년대

1990 유자망 어업 캠페인을 마친 후, 레인보 워리어는 미 서부로 항해하여 반핵 캠페인 및 ‘펄프와 종이’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이후 모루로아 섬에서는 5명의 선원이 프랑스 영해에서 샘플을 채취하려다 추방되기도 하였습니다.

1991 1991년은 오클랜드와 시드니, 남태평양에서 ‘펄프와 종이’ 캠페인, 독성 물질 및 전쟁에 반대하는 캠페인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린피스가 맨 처음 조직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암치카에서 그린피스 탄생 20주년을 축하하였습니다.

1992 미국과 맥시코 서부를 따라 항해한 후, 모루로아에서 핵 실험을 감행하려는 프랑스에 맞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1993 일본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프리맨틀로 향했습니다. 얼마간의 휴식 시간 후, 오스트레일리아 남부를 지나 시드니까지 돌아오면서 도시와 해변을 방문하는 투어를 마친 레인보우 워리어는 수리를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났습니다.

1994 지중해에서 바젤 협약이나 유자망 어업, PVC와 CFCs 사용 등과 같이 중요한 환경 이슈를 많이 제기하였습니다.

1995 레인보우 워리어에게 1995년은 중대한 해였습니다. 프랑스가 3년 동안 핵 실험을 중단하기로 한 모라토리엄의 종결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레인보 워리어는 모루로아까지 쫓아갔고, 핵 실험 장소의 20킬로미터 출입 금지 구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프랑스의 예인선이 레인보 워리어를 들이받고 특수부대가 침입했습니다. 그리고 레인보 워리어는 결국 프랑스 해군에 의해 출입 금지 구역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1996 3월이 되어서야 프랑스로부터 풀려 난 레인보 워리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수리 및 보수, 캠페인 활동, 오픈 데이 행사를 갖기 위해 뉴질랜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어업 및 핵 캠페인을 위해 남아메리카를 방문했습니다.

1997 남아메리카 투어를 계속하면서 양식업 및 원유 캠페인을 위해 중앙아메리카를 방문했습니다. 태평양에서 대규모의 핵 및 기후 변화 캠페인을 벌인 후, 기후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산호초 백화 현상을 관찰하는 티모르 해 투어를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의 다윈 항을 방문했습니다.

1998 허리케인 미치가 중앙아메리카를 강타했을 때 레인보우 워리어는 식량과 의복, 의약품 등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니카라과로 운반해 주었습니다.

1999 1989년에 항해를 떠난 후 처음으로 유럽으로 복귀, 암스테르담과 함부르크를 방문하며 노르웨이의 포경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지중해에서의 독성 물질 투어를 위해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2000년 대

2000 레인보우 워리어는 독성 물질 없는 아시아 투어를 전개하면서, 60년대에 미국이 독성 물질을 투기한 곳을 정화하기 위해 남태평양에 있는 사이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 섬들의 곳곳이 PCB로 오염되어 있었고, 많은 주민들이 암이나 백혈병, 염색체 변이, 생식 능력 이상 등의 증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후 레인보 워리어는 친환경 올림픽의 파수꾼 역할을 맡기 위해 시드니에 정박하였습니다.

2001 그린피스의 '구하거나 없애거나(Save or Delete)'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유럽 주위를 항해하였습니다.

2002 1월에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의 4차 각료회의에 참석하는 등 바쁜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03 아이슬란드 정부가 상업 포경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레인보우 워리어는 아이슬란드를 방문, 그린피스가 아이슬란드와 다른 대안에 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인도로 향해 독성 물질을 방출하는 선박 해체장을 방문하였습니다.

2004 인도네시아와 그 주변 군도에 있는 여러 열대림을 방문하며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그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을 지원해 주었으며, 그러한 파괴를 야기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2005 아시아에서의 청정 에너지 개혁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바람(Sure Wind)’ 투어를 시작하고 재생가능 에너지의 개발을 촉구하였습니다.

2011 새로운 레인보우 워리어 Ⅲ 호가 활동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