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의 엄마이자 전직 유치원 교사였던 수가노 미나코 씨(39세)는 현재 후쿠시마 시내에서 19km 떨어진 다테시에 살고 있습니다.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수시로 인터넷을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또,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만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킵니다.

“저는 후쿠시마현에 있는 다테라는 도시의 야나가와 마을에서 온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2011년 6월 30일, 다테시에 있는 오구니 지역이 대피권고 지역으로 지정되어 7월 초 대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야말로 자발적인 대피를 한 셈이었습니다. 벌써 3년이나 흘렀는데 우리가 아직도 피난 중이라는 사실이 이해되질 않습니다.

집 주변의 방사능 수치는 2011년 4월에 측정되었고 방사능 고농도 지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연히 대피령이 내려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후 3개월 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피를 선택할 수 있다는 통지서를 받았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곳을 떠났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했으니까요. 대피령이 내려진 후, 저는 시나 정부가 주민들의 요구에 입장을 표명할 줄 알았습니다. 다테시에서 조치를 취하겠지, 설명이 있겠지, 주민과 협의하겠지. 그러나 이런 저의 믿음은 헛된 희망일 뿐이었습니다.”

오염된 곳에서 덜 오염된 곳으로

“저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시에서 나온 통지서를 보여주며 방사능이 무엇이고 얼마나 위험한 지 알려줬지만 아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큰 아이는 울고 말더군요. 그 아이는 떠나고싶지 않아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은요? 우리 할머니랑 우리 강아지는 어떻게 해요?’ 결국에 아이는 떠나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시어머니와 강아지는 남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시에서 직장생활을 해야 했죠. 그래서 우리는 그리 멀리 떠나오진 못했습니다. 그저 오염된 곳에서 덜 오염된 곳으로 옮겨왔을 뿐이죠.

저는 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래왔습니다.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전,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때도 밖에서 산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같이 산책을 나가곤 했어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지금은 늘 집 안에서만 생활합니다. 정말 힘든 일이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했던 모든 활동들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늘 집 안에만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차이는 확연히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마음 편히 있지를 못합니다. 게다가 하나에 집중하는 일도 어려워하지요.”

갑작스런 대피령 해제

“2012년 말, 저는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2개의 통지서가 들어있었는데, 하나는 “주변환경 방사능 정밀 측정 및 조사를 위한 통지서” 였고 또 하나는 “특별 대피구역 지정 해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방사능 측정결과 수치가 20mSv를 초과하지 않으면 대피령은 해제될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다음 달에 사람들이 와서 조사를 시작했고, 저는 ‘주민들에게 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시간이 있겠구나, 이런 상황과 관련해 질문 할 시간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이 2013년 초, 인터넷과 신문을 통해 대피령이 해제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충격으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시청에 전화를 걸고, 직접 찾아가 대피령이 해제된 연유를 물었습니다. 제염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사능 수치가 높다는 사실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요구는 묵살당했습니다. 모든 것을 떠나서, 저는 물었습니다 “그럼 저희보고 향후 30년 간 그저 조심하고 살라는 겁니까?” 그들은 그저 머리를 끄덕이고 사과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때 깨달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상의해 무엇을 할지 확실히 정해야겠구나.’ 결국 저희는 피난 온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피난을 왔지만, 방사능 수치가 여전히 높은 학교로 통학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전학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땅과 집도 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4년째 접어든 집 담보 대출 때문에 융자를 받는데 제한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도 없었습니다. 재난 복구용 주거대출을 통해 국가지원금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대피령이 해제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신청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 아이를 둔 어머니, 수가노 미나코씨는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수시로 인터넷을 확인하며,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만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킵니다.

암흑의 나날들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을 꿈꾸다

난데없이 대피령이 해제되었고,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유예기간도, 설명회도, 공청회도 없었습니다. 저는 한두번의 제염작업과 조사를 기반으로 방사능 수치가 여전히 높은 지역으로 내몰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3월 말로 보상금 지급도 종료되었습니다. 지금 제 상황은 자발적 대피군에 속해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남편 직장에서 보상금을 지급하곤 있지만, 언제까지 지급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소득세, 사업세, 현세를 제외하면 남는 금액은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왜 우리가 하루 하루를 걱정으로 그저 보상금에 의지해서 살아야 할까요?

모든 걸 다 떠나, 보상금은 세금에서 충당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저희가 고농도 방사능이 검출되는 예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요? 전 제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위험한 줄 알면서 자식을 그곳으로 데려 가겠습니까?

빛이 없는 암흑에서 사는 기분입니다. 저는 정보를 얻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어머니의 눈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더 나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제게 가장 시급한 일은 내 아이들을 해악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후쿠시마에 살았다는 사실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저 제가 한 일이 옳은 것이고, 필요한 것에 신경을 썼고, 오늘 내린 결정이 미래에 꽃피우기만을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