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도 잘 들지 않는 지구 남쪽 끝, 차가운 얼음 바다로 장막을 친 채 3천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얼음 대륙 남극. 지구상에서 가장 춥고 건조하며 세찬 바람이 부는 가혹한 기후와 환경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던 태고의 자연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2백 여 전 인류가 처음 남극을 발견한 이후로 남극은 인간의 남획과 약탈에 끊임없이 시달려왔습니다. 전설의 고래, 털가죽 물개, 코끼리 바다표범, 펭귄, 각종 물고기에 대한 ‘무한 살육’으로 많은 생물종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극한의 도전과 맞서 싸운 인류의 ‘위대한 남극 탐험의 역사’는 실상 ‘슬픈 남극 살육의 역사’ 였습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뒤늦게 1980년에 남극해양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이 체결되었고, 남극 해양생태계는 그 후 철저한 관리 체계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 16일, 독일 브레머하펜에서는 CCAMLR 특별회의가 열렸습니다.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시바다인 남극해 일부를 해양보호구역(MPA: Marine Protected Area)으로 지정하기 위해 특별히 개최된 회의였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25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CCAMLR는 2008년부터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해양보호구역은 말 그대로 바다 속의 ‘블루 벨트’입니다. 생물학적이나 환경, 기후변화 연구 등 여러 목적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바다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무분별한 개발을 예방하고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현재 전 지구 바다에서 해양보호구역은 1%도 못됩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이번 회의에서도 남극해 해양보호구역은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노르웨이, 중국, 일본, 우크라이나, 칠레가 극구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찬성한다 말했지만, 실제로는 반대 진영의 논리를 지지했습니다. 반대 국가들은 모두 조업국입니다. 조업국들의 논리대로라면 전 세계 물고기들이 다 씨가 마른 뒤에야 해양보호구역 지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들은 전체 국민의 한 줌도 되지 않는 원양어업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환경 보존을 반대합니다. 늘 봐왔던 모습입니다.

남극해는, 아니 전 세계 바다는 경계선이 없는 인류 모두의 것입니다. 바다는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는 네팔 첩첩 산중 마을의 소년부터 미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바다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거대한 배를 갖고 남극해까지 나가 톤 당 2만 불이 넘어가는 물고기를 잡으며 큰 돈을 번 원양업계들만이 바다를 점유한 듯 자원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그만큼의 돈을 벌면서 환경에 대한 공헌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는 원양자본의 횡포와 이들을 옹호하는 국가 권력. 남극해에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원양자본과 국가 간 오메르타(omertà)부터 깨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오메르타(omertà)는 시칠리아 마피아의 규칙에서 유래된 말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비밀을 지키고 말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