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그린피스의 상징적인 환경 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부산에서 캠페인을 마치고 대만 지룽(Keelung)으로 향했습니다. 바닷길을 거슬러가서 일부 선원들마저 멀미로 고생했던 7일 간의 항해. 그 중에서도 특히 제 관심을 끈 것은 선원들이 입고 있는 그린피스 캠페인 티셔츠였습니다. 한국의 ‘원전 비상’(Nuclear Emergency) 투어 티셔츠부터 브라질, 서아프리카, 호주 등 국적과 메시지가 제 각각인 형형색색 티셔츠들이 한 곳에 모여있었던 거죠. 배 위는 마치 캠페인 티셔츠 박물관 같았습니다.

걸어 다니는 캠페인

“티셔츠는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기 때문에 그린피스 캠페인에서 빼놓을 수 없어요. 평상시는 물론이고, 작업하기 편해서 배에서는 늘 입는 편이죠. 일상이 캠페인인 셈이에요.” 그린피스 티셔츠를 10장쯤 갖고 있다는, 2등 항해사 페르난도 마틴(Fernando Martin∙스페인)은 2008년 영국의 ‘석탄 반대’ 캠페인이 쓰인 파란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석탄과 절교하세요’(Give Coal The Boot)라는 유머 있는 메시지가 검정 발자국 안에 새겨져 있었지요.

자원봉사자로서 3개월동안 항해하고 있는 링(Ling∙홍콩)은 올해 첫 항해를 시작한 홍콩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캠페인을 위해 만든 흰 티셔츠를 입고 배를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티셔츠에 “귀여운 그림이나 확실한 메시지가 있는 게 좋다”고 합니다. 중국어권인 대만과 홍콩, 중국 사무소에서는 그린피스를 ‘녹색화평’(綠色和平)으로 부르는데, 링의 티셔츠 앞면에는 그 영문과 한문이 나란히 쓰여 있었습니다.

추억을 담은 ‘특별한’ 티셔츠
흥미롭게도 링처럼 캠페인 티셔츠가 그린피스 첫 기억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갑판원인 안젤로 무스코(AngeloMusco∙이탈리아)가 그 중 하나입니다. 1999년부터 이탈리아 그린피스 액션팀에서 활동한 그는 2011년에 배를 타기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 갖게 된 티셔츠를 이번 항해에도 가져왔더군요.

“브라질에서 아마존 보호 캠페인을 했어요. 당시 무차별적으로 벌목된 삼림 자원을 나르는 배의 닻 사슬에 매달려 11일동안 시위를 했죠. 일정을 마치고, 현지 활동가와 우정의 의미로 각자 입은 티셔츠를 바꾸었는데, 이게 그때 받은 거예요.” 그의 초록색 티셔츠에는 ‘전기 톱을 꺼라’(Desliga Essa Motosserra)라는 포르투갈어 메시지가 톱 그림과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그린피스 국제 본부에서 근무하는 프리츠 드빙크(Frits Devink∙네덜란드) 역시 2005년 첫 출근과 함께 참여한 교육에서 받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유명 제약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돈만 좇는 세상에 신물이 나 그린피스를 찾았다”며 그날을 떠올리기도 했답니다.

티셔츠가 생기면 주변인들에게 기념으로 나눠준다는, 1등 항해사 댄 빈연(Dan Binyon∙영국)은 이에 대한 그럴듯한 철학을 내 놓았습니다. “그린피스 티셔츠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 같아요. 하나하나 늘어갈수록 기억이 쌓이고, 저도 더욱 성숙해지죠.”


티셔츠로 나를 표현하다
단체 티라고 해서 다 같은 단체 티는 아닙니다. 선원들은 제 스타일에 맞게 티셔츠를 변형하기도 하고, 선호하는 디자인도 각기 달랐습니다.

통신 담당인 미르 로드리게즈(Mir Rodriguez∙파나마)는 티셔츠 소매를 잘라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2012년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인도양에서 벌인 해양 캠페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소유한 30~40장 정도의 그린피스 티셔츠 중에 모양과 색이 가장 마음에 들어 특히 아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가 제작한 ‘원전 비상’ 티셔츠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갑판원인 세르게이 솔로브예브(SergeySolovye∙러시아)는 검은 바탕에 화가 뭉크의 그림 ‘절규’를 연상시키는 얼굴이 그려진 이 티셔츠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빨래할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이 티셔츠를 입었던 그는 “세련된 디자인에 메시지도 잘 전달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습니다.

사실 모든 티셔츠에 대해 설명하려면 몇 시간은 얘기해야 할 겁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그린피스 배에 타는 멋진 기회를 얻게 된다면, 제가 이 글에 풀어놓은 것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는 사연을 들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다만 모든 선원들이 강조한 그린피스 티셔츠의 매력은 꼭 말해두고 싶어요. 선장부터 자원봉사자까지 모두를 평등하게 하나로 엮어주는 것, 바로 배에서 그린피스 티셔츠 역할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