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저는 에스페란자 호를 타고 5일 동안 울산, 강원도 앞바다를 항해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과학적 연구를 위한 고래잡이, 즉 과학포경을 재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파문을 일으킨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이었죠. 우리는 정부에게 과학을 위해 고래를 죽일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고자 비살상적인 방법으로 고래를 연구하는 해외 과학자 두 명, 그리고 포경에 반대하는 네 명의 서포터를 초빙하여 동해 바다로 탐사를 나섰습니다.

이후 전 세계 시민들의 서명운동, 정부 관계자와의 면담 등 몇 개월의 캠페인 활동을 이어간 끝에 한국의 과학포경 계획은 철회되었습니다. 한국 바다의 고래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을 거라 믿으며 당시 한없이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이번에는 남극해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남극해에서만 연간 수백 마리를 잡던 일본이 올 해에는 잡지 않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물론 이런 발표를 불러온 것은 2010년 호주 정부가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일본이 과학적 연구를 명목으로 사실상 상업적 포경을 하며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소송에 일본의 과학포경이 위법이라는 판결이 지난 3월 내려진 것입니다. 당시 재판부는 일본의 남극해 ‘과학적’ 포경이 실은 ‘상업적’ 목적으로 행해졌음을 명확히 했고, 국제적인 비난과 함께 내부적인 압박을 받은 일본 정부는 포경계획을 황급히 재검토했습니다.   

이후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업체 라쿠텐(Rakuten)은 고래고기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고, 일본 정부 내부적으로도 과학포경에 대한 열띤 논쟁이 촉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판결 이후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주말, 매우 실망스럽고도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일본 정부가 북태평양으로 포경선을 다시 출항시키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향유고래는 포획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수주 내에 북태평양에서 밍크고래, 브라이드고래, 멸종위기종인 긴수염고래에 대한 포경이 시작될 것입니다.  

공해상에서 벌어지는 포경활동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실질적인 고래보전에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세기 동안 자행된 무분별한 상업적 포경으로 몇몇 고래 종은 여전히 안전한 수준의 개체 수가 회복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변화에서 선박과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고래들이 직면한 모든 위협요소를 고려할 때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과학적 연구용이라며 잡은 고래고기는, 실상 고래고기 수요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대부분 냉동창고에 쌓여 있습니다. 고래고기의 수요는 분명 줄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비난은 높아가고 있지요. 일본 정부는 이 현실을 직시하고 이미 위기에 처한 고래들에 더이상의 위협을 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글: 한정희 해양캠페이너 /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