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자 쉽투어] 자원봉사자 지혜인씨의 이야기

Feature Story - 2012-11-16
자원봉사자 지혜인씨는 지난 10월, 에스페란자호 쉽투어에 40일 동안 참가했습니다. 지혜인씨가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함께 쉽투어 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 합니다.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배가 팔라우(Palau)로 떠나기 직전 홍콩 서부 항구에 비가 내리고, 그 비를 맞아가며 하선한 사람들과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이 갑판에 모두 나와 서로 손을 흔드는 장면입니다. 한 달이 넘는 동안 집이자, 소중한 추억을 쌓아온 에스페란자호가 떠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저 많은 생명들이 오래도록 공존하기를 원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던 저에게, 약 40일 간의 쉽투어는 새로운 모험이었습니다. 15개국이 넘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지구를 보호하자는 하나의 목표로 모여 배 안에서 함께 지낸다는 것이 신기했고, 쉽투어에 참가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여러번 했습니다.

 

두근두근, 에스페란자호와 첫 만남을 준비하다!

올 여름, 저는 직장을 그만둔 후 이 때가 아니면 못하겠다 싶어 무작정 ‘환경보호 단체’라는 단어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여 그린피스를 찾아냈습니다. 부끄럽지만 환경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도 국내외 어떤 환경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운 좋게 그린피스의 자원봉사자가 되어 한달 간 부산 및 울산 쉽 투어 준비를 도왔고, 그렇게 저는 그린피스 그리고 에스페란자호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에스페란자(Esperanza)는 그린피스의 세 개 밖에 없는 선박 중 하나입니다. 가장 크며, 캠페인과 액션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배입니다. 이 배가 ‘태평양 보호’라는 하나의 거대한 목표를 위해 아시아를 순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참가할 수 있다면…’하는 생각으로,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에 가고 싶다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저는 에스페란자호 쉽투어에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함께 하기로 한 곳은 대만과 홍콩이었습니다. ‘태평양까지는 못 가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게 웬 횡재냐’ 싶었고, 설렌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자연과 지구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

저는 여수에서 출발해 대만까지 가는 여정이 일주일, 대만 3개 도시에서 약 2주일, 홍콩에서 약 2주일을 보냈습니다. 대만으로 가는 동안 태풍을 피하느라 3일 넘게 바다 한가운데 서서 머무른 적도 있는데, 덕분에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흔들리는 배 창문 너머로 어두운 하늘과 하얗게 파쇄되는 바다를 시소처럼 왔다갔다하며 봐야 했습니다. 파도가 너무 심한 날엔 다들 그저 조용히 자기 캐빈(배 안의 방)에서 바다가 잠잠해지길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마침 배에서 추석을 맞아, 저는 흰색과 분홍색으로 정성스럽게 직접 송편을 빚어 사람들에게 맛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바쁜 저녁 준비시간에도 불구하고 송편을 만들게 해준 나의 셰프, Babu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대만과 홍콩으로 쉽투어를 다녀와서 좋았던 점은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만에서 저는 보조 요리사(assistant cook)으로 내내 일해서 오픈보트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없었지만, 홍콩에서는 선원자격으로 오픈보트에 참여하여 에스페란자와 우리의 활동에 대해서 설명을 하며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눈을 반짝거리며 설명을 듣는 방문객들과 함박 웃으며 반갑게 인사해주던 그곳 자원봉사자들을 만난 시간들은 내리쬐는 홍콩의 햇볕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대만 Shao lui qui 섬의 순박했던 어부 아저씨들과, 후원자의 밤에서 봤던 열정 가득한 후원자들 역시 잊을 수 없는 얼굴들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족처럼 매일 얼굴을 보았던, 너무나 정이 많이 든 선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로 배에 있었던 친구들, 그린피스 대만∙홍콩∙베이징 사무소 사람들과 만나 소중한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이 이 여행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행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희망을 봤고, 그러한 열정은 자연과 지구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기뻤습니다.

 

지구의 미래를 더 건강하고 평화롭게!

홍콩으로 향하던 밤, 저는 오랜만에 구름 없는 하늘과 별이 보고 싶어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당연히 바다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저는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판 위로 나갔을 때, 제가 가장 놀랬던 것은 지평선 빽빽이 채워진 어선의 불빛이었습니다. 평소 배 지휘실 내 레이더 망에 많은 어선이 표시 되었고 종종 육안으로 어선이 보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실제 어선들이 밝히는 많은 불을 보면서 현실감이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사진과 글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현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만큼 많은 어선들이 돌아다니는 구나, 우리가 우려하는 남획이 이런 모습이었구나’ 라고 느끼며, 대만 근해에서 발생하는 남획에 대한 그린피스의 해양캠페인을 떠올렸습니다. 

우리에게 해양과 해양 생물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이전에는 기후변화나 동물복지 등의 개념들은 친숙했지만, 해양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바다는 우리에게 휴식과 바캉스의 장소로만 접했던 탓일 것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어획활동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향후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번 에스페란자호 쉽투어가 저에게 준 선물은 전혀 알지 못했던 해양 문제들을 자각하고, 불법 어획활동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도 느꼈습니다. 그린피스의 모든 활동은 한 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모두의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역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각자의 임무를 다하고 배 안에서 자원봉사들도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함께 쉽투어를 준비했고, 활동한 후 결과를 공유하는 모습을 저는 이번 쉽투어에서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린피스가 하는 모든 활동 역시 단지 그린피스만의 역할이 아니라 더 건강하고 평화로운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참여와 협력이 있을 때 훨씬 더 강력하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시작은 분명 평범한 우리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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