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Story - 2014-10-14
물살을 가르며 달린 작은 통통배 한 척에는 비장한 표정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항구에 이제 막 정박한 커다란 하얀색 배에 빨간색 글자로 'illegal 그만!'이라고 페인트 칠을 했습니다. 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작년에 한국은 미국과 유럽에 의해 각각 불법어업국,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됐습니다. 남극해에서 4배를 남획한 인성실업은 불법어업국 지정에 가장 큰 책임이 있죠. 국가의 외교적, 경제적 타격에 책임이 있음에도 인성실업은 또다시 불법어업을 저지르고, 얼마 전 잡은 물고기에 대해 정부가 어업허가권(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허가받는)을 내주지 않자 인성 7호 안의 선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정부를 협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그린피스는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 조속히 인성 7호를 입항시키고 불법어업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해양수산부와 관련 국가에 보냈고, 마침내 올해 8월 인성 7호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항에 긴급 입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간 언론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같은 회사 소유의 형제 어선 인성 3호도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불법어업을 저질렀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인성실업은 이미 반복적인 불법어업 행위로 국제사회에서 악명이 높은 회사입니다.(인성실업 불법어업 이력 간략 보기)
인성 3호 역시 인성 7호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EEZ(배타적 경제수역)를 침범했고, 해양수산부에 의해 처벌받기 위해 부산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선박이 부산 감천항에 입항한 10월 7일에 그린피스는 인성 3호를 포함, 더 나아가 인성실업의 불법어업을 규탄하고, 해양수산부에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부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인성 3호가 10월 7일에 부산 감천항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미리 접한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불법 어업 근절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위해 배를 마중(?) 나갔습니다. 활동가들은 멀리서 흐릿하게 보였던 하얀 배 한 척이 우리가 찾는 그 배가 맞는지 의심 반 기대 반 속에 두근거리며 지켜봤고, 배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찾는 바로 그 배가 맞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혹여 선원이나 항구 관계자가 알게 되어 캠페인 진행을 막을까 봐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불법어업 그만!'을 외치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비장한 표정과 떨리는 마음을 안고 보트를 타고 이제 막 입항한 인성 3호에 가까이 갔습니다. 준비한 페인트로 배 중앙에 ‘Illegal (불법) 그만!’이라고 빨간색으로 페인트칠을 하며 불법어업 중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페인트를 칠하는 동안 갑판에 나온 선원들과 관계자들로부터 '뭐 하는 거냐'는 질문, 욕설, 물 세례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불법 어업으로 우리 모두의 소유인 수산 자원을 빼앗고 국민 모두에게 불법어업국 국민이라는 오명을 씌운 인성실업을 규탄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페인트 칠을 하고 배너로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한 켠에서 또 다른 활동가는 위에서 지켜보는 갑판의 선원들에게 그린피스 캠페인의 의도와 바람을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반복적으로 불법어업 한 인성실업을 강력히 처벌할 것, 그리고 다시 되풀이 되지 않도록 관련 법안을 철저히 개정할 것.
이 요구는 바로 해양수산부에 전달되었습니다.
그린피스의 액션 후 해양수산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인성 7호와 인성 3호에 각각 과태료 150만 원, 어업허가 정지 60일/30일, 해기사면허 정지 30일의 행정처분을 내렸으며, 인성 7호는 남아프리카에서 폐선 되고 불법 어획물은 모두 몰수될 것이라 밝혔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불법어업국,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 이후 해양수산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국제사회의 눈과 귀가 모아져 있는 지금, 불법어업 혐의를 발견하고 어획 증명서 발급을 거부하고 처벌을 내린 해양수산부의 조처는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처벌의 근거가 되는 관련 법, 즉 ‘원양산업발전법’은 너무 허술하며 처벌 수준도 경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빨고기(메로) 어선 한 척이 나가서 잡는 어획물 규모가 수십억 원인데 과태료 150만 원이라니요. 게다가 불법어업 혐의가 발견된 이후로도 이 선박들은 계속해서 조업을 해, 수십억 어치의 이빨고기(메로)를 잡아들였고, 이 금액은 현재의 법령에 따르면 몰수 조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번 돈의 1%를 과태료로 내고 한두 달 어업 쉬는 걸 감수하면 그만인 '남는 장사'인 셈이죠. 불법어업 행위를 해도 적발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니 그리 위험한 장사도 아니였겠죠. 더 안타까운 점은, 인성 3호는 영업정지가 끝난 한 달 후면 다시 바다로 나가 조업을 할 텐데, 이미 여러 어선이 불법 행위로 적발된 인성실업에게 다시는 불법어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할 조치나 체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허점 투성이 정책에 대한 제대로된 보완없이, 불법어업국 탈출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된 이 부끄러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단순히 벌금을 높이고 감시를 강화해 불법 행위를 막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개정입니다. 전 세계의 수산자원이 지속 가능하도록 보호하는 노력에 동참하여 진정성 있게 원양 수산자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제대로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그제야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조업국으로서 역할을 다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법어업반대 를 위해 그린피스와 함께 목소리를 높일 시민 경찰로 참여해주세요! [시민 경찰 참여하기]
글: 한정희 해양보호 캠페이너 /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