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으면 소주나 한잔 하자’

처절한 원양어업의 악순환

Feature Story - 2014-12-10
대체 얼마나 많은 배가 가라앉아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기본적인 안전 조치가 이행될 것인가? 차가운 바닷속을 떠돌고 있을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살아 있으면 소주나 한잔 하자'며 전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501오룡호'의 김계환 선장과 동료 간의 마지막 교신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국민의 눈시울은 다시 붉혀졌다. 정부는 부랴부랴 초계기·경비함 등을 파견, 주말에는 사조사업 본부를 압수 수색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부산함과 감성적 흔들림에 휩쓸려 또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은 60명의 생명을 태운 채 침몰한 '501오룡호'가 예견된 참사였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원양해역에서 기록된 한국 어선들의 해양사고는 사고는 85건 이다. 원양어업의 특성상 약간의 사건과 사고는 일상의 일부로 공식집계가 안 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숫자는 더 심각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고를 살펴보면 ‘501 오룡호’에서 드러난 안전 관리 부재, 무리한 어업 관행, 노후한 인프라 등의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사례로 501오룡호의 선주인 사조산업의 계열사 사조오양의 오양70호(당시 선령 38년)는 2010년 8월 뉴질랜드 인근해에서 침몰, 6명의 사망자를 냈다. 2013년 3월에 발표된 뉴질랜드 조사관의 조사보고서는 사고의 원인을 물이 차단되어야 하는 엔진실의 문이 열려 있어 침수가 된 것으로 지목하였다. 그리고 침수로 배가 균형을 잃고 위험에 처했을 때 120톤의 물고기가 담긴 그물을 잘라내자는 선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선장은 그 그물을 무리하게 끌어올리라는 명령을 내린 점도 지적하였다. 오양70호의 이런 모습은 다른 어선들이 조업을 멈추는 와중에 가장 마지막에 피항을 한 501오룡호와 어쩐지 닮아 있다.

보다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례로는 인성실업의 인성 1호(당시 선령 31년)로 2010년 12월 남극해에서 침몰하며 승선하고 있던 42명 중 22명의 사망·실종자를 내는 참극을 빚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해양안전심판원의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트롤 전개판(어망을 끌어올리는 문(trawl door))으로 해수가 들이닥치며 침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트롤 전개판은 평소에는 닫힌 상태로 유지되어야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활짝 열려있었다. 3미터 이상의 파도, 초속 10-13 미터에 달하는 풍속 등의 악천후에서 어떻게 이를 확인하지 않고 운항이 계속될 수 있었을까? 이후 이어진 상황은 무리한 문제 해결 시도, 뒤늦은 퇴선 명령 등의 익숙한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안전 훈련도 받지 않고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갖추지 않은 선원들은 허둥지둥 남극해로 뛰어들었지만 차가운 바다에서 살아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대부분의 선원들이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외국인 선원이었음에도 인성1호에 비치되어 있던 안전 매뉴얼은 한국어로만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사건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사건마다 매번 보고서와 교훈은 나왔다. 지적되는 문제점들은 패턴을 보이며 반복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어제의 이야기도, 작년의 이야기도 아니다. 수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12월 1일, '501오룡호'는 '살아 있으면 소주나 한잔 하자'라는 안타까운 교신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대체 그 동안 22명의 죽음을 통해 배운 교훈은 어디로 갔는가? 사고의 원인이 노후 어선의 안전 문제이든 선장의 판단 실수이든, 업계와 정부는 충분한 시간과 정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선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원양어업의 악순환을 끊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대체 얼마나 많은 배가 가라앉아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기본적인 안전 조치가 이행될 것인가? 차가운 바닷속을 떠돌고 있을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다음에 얘기될 술 한잔은 한국 원양어업이 '501오룡호'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된 업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개선했을 때 들게 될 축배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본 내용은 오늘(2014년 12월10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에 일부 축약되어 기고된 글입니다.

글 : 그린피스 한정희 해양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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