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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편지 4.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말들

글: 그린피스 항해사 김연식
펭귄이 좋습니다. 까닭 모르게 좋습니다. 세상을 의심하지 않는 순수함, 경계가 아닌 관심, 두려움을 배우기 전에 본능적 호기심을 발휘하는 펭귄에게서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를 발견합니다. 그 순수를 지켜주고 싶습니다.

펭귄이 좋습니다. 까닭 모르게 좋습니다. 작고 통통한 몸집. 날개를 어정쩡하게 펴고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앙증맞은 모습. 단언컨대 이 녀석들을 보고 사랑이 샘솟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펭귄 뒤를 따라 걸으면 느낌이 또 다릅니다. 세상 급한 일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딜 분주히 가는데, 막상 조금 걸었다 싶어 돌아보면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펭귄의 요란한 수고가 어디로 홀연히 증발한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보는 사람의 속을 간질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냉큼 안아다가 멀리 옮겨주고 싶습니다. 펭귄의 분주한 성실함이 마냥 기특합니다.

남극 젠투펭귄<남극 젠투펭귄>

그 마음은 우리가 반려동물에게 품는 그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때로는 호기심에 서슴없이 다가오는 펭귄에게서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정서적 유대를 느낍니다. 남극 도둑갈매기는 긴 부리로 사람을 위협하고, 제비갈매기는 머리 위에서 요란스레 짓다가 사납게 달려들어 머리며 어깨를 마구 쫍니다. 펭귄은 배척하지 않습니다. 호기심 많은 강아지처럼 먼저 다가와 반기는 것 같아 기껍습니다. 그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경계심 없음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고래는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아 여기 남극에서만 150만 마리가 작살을 맞았고, 남아프리카 파란 영양, 모리셔스 도도새 등 사람을 믿었다가 멸종하거나 위기에 놓인 순진한 동물이 한둘이 아닙니다. 세상을 의심하지 않는 순수함, 경계가 아닌 관심, 두려움을 배우기 전에 본능적 호기심을 발휘하는 펭귄에게서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를 발견합니다. 그 순수를 지켜주고 싶습니다.

눈 맞고 있는 아델리펭귄<눈 맞고 있는 아델리펭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런 걸 추구합니다. 관심과 친밀감, 열린 마음, 호기심, 보호, 연대, 평화, 다가감, 반김, 이해, 화해, 보듬음.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는 건 이런 긍정적인 감정들입니다. 배척과 경계, 착취, 부정, 폭력, 다툼, 갈등, 위협, 공격, 비난 같은 감정과 반대입니다. 남극의 펭귄에게서 우리 내면의 본질을 깨닫습니다.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아틱 썬라이즈 호를 타고 보낸 남극에서의 시간이 펭귄을 만났을 때처럼 따뜻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정반대의 감정을 지난 3월 23일 크릴 어선에게서 겪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크릴 어선 '모르 소드루체스토 호'는 비폭력 직접 행동으로 어업을 저지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을 위협했습니다.

폭력 대신 비폭력, 간접이 아닌 직접 행동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그린피스는 믿고 행동합니다. 이런 방침 하에 활동가 로니 크리챤센(Ronni Christiansen, 덴마크)과 조이 버클리(Zoe Buckley, 호주)가 어선 뱃머리에 매달려 어업을 평화적으로 저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릴 어선은 두 활동가의 목숨을 위협하는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모르 소드루체스토호, 저희는 귀선을 해하려는 게 아닙니다. 남극을 보호하기 위해 비폭력적 방법으로 귀선의 어업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그린피스 남극 캠페인을 이끈 틸로 마아크(Thilo Maack)가 어선에 무전했습니다. 어선 선장이 답합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저는 상관하지 않고 크릴을 잡으러 떠날 겁니다."
"당신은 지금 사람을 매달고 달리려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말입니다."
"분명히 경고합니다. 어쨌든 저는 15분 뒤에 엔진을 전속으로 돌릴 겁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그린피스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을 매달고 전속으로 가겠다는 겁니까. 사람을?"
"거듭 경고합니다. 저희는 엔진을 돌릴 겁니다."

우리는 설마설마하며 지켜보기로 했고, 예상과 달리 어선은 정말로 엔진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달고 말이죠. 활동가들이 매달린 뱃머리는 파도를 받아 출렁이는 바닷물에 잠기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둘러 물러섰습니다. 늘 활동가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요.

"모르 소드루체스토호, 두 사람이 위험합니다. 활동가들이 배에서 내릴 수 있도록 즉시 배를 세워주세요."

우크라이나 크릴 어선 모르 소드루체스토 호에 평화적 시위를 진행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우크라이나 크릴 어선 모르 소드루체스토 호에 평화적 시위를 진행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매달려 있던 조이와 로니는 다급하게 바다로 뛰어들었고,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아틱 썬라이즈 호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날 우리는 크릴 어선으로부터 어떤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그린피스는 관심과 보호를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내면에 잠재한 이 따뜻함만이 지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바다 곳곳을 보호구역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런 계획은 펭귄의 걸음처럼 아주 느리게, 그러나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Monterey Bay)은 1992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해달과 바다사자, 사다새(펠리컨) 같은 멸종 위기종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대가 생명으로 차고 넘치자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연 학습장이 됐습니다. 인도양 차고스(Chagos) 제도는 2010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위기에 처한 산호초와 거북이, 각종 특이 종이 번식해 지금은 해양생물 연구의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2006년 보호구역이 된 하와이 파파하나노무구아키아(Papahānaumokuākea)에는 현재 해양생물 7천여 종이 사는데, 넷 중 하나는 이곳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입니다. 이 밖에 남극의 로스해(Ross Sea), 스코틀랜드 람라쉬 베이(Lamlash Bay) 등이 파괴와 개발에서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올해 10월에 열리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에서 남극해 일대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되면 어류 개체 수가 늘어나 남극 바다가 살아납니다. 크릴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를 막는 데 기여합니다. 저희는 남극 웨델해를 시작으로 전 세계 바다의 3할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배 위에서 바라본 남극 웨델해<배 위에서 바라본 남극 웨델해>

그러기 위해 연대하려 합니다. 배척하고 반대하는 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 합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우리 시민들과 목소리를 합치려 합니다. 남극은 너무 멀고, 아무도 소유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반향이 있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희는 4월 현재 국내 5만 명, 전 세계 140만 명이 저희와 함께 하는 것을 남극해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는 서명운동으로 확인했습니다. 연대는 연대를, 희망은 희망을 낳는다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믿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되뇝니다. 관심과 친밀감, 열린 마음, 보호, 호기심, 연대, 평화, 다가감, 반김, 이해, 화해, 보듬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 말들을 작은 행동으로 실현할 수 있습니다. 펭귄이 먼 길을 뒤뚱뒤뚱, 그러나 성실하게 걷는 것처럼 우리도 서명운동 같은 작은 행동으로 지구를 지키려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바로 서명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글: 그린피스 항해사 김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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