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이너의 목소리] 거꾸로 가는 원전비리 대책

Feature Story - 2014-04-17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에서 ‘원자력발전사업자 등의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웃나라의 교훈과 각종 비리를 겪으며 우리 정부가 고안해 낸 해결책이 고작 원전 진흥 부처에 관리 및 감독 권한까지 더하겠다는 것이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오늘(2014년 4월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에서 ‘원자력발전사업자 등의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앞으로 법사위 및 본회의를 거쳐 법률로 확정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 법안은 그동안 드러난 갖은 원전비리의 재발방지를 위해 “원전 마피아식 행태를 근절”시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주요 골자는 구조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적극적으로 원전산업의 관리∙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그야말로 본디 목적과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원전 안전 규제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원전 진흥과 규제의 분리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 원전 운영국가들은 이 원칙에 충실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 법안대로라면 원전 진흥을 담당하는 산업부에 일부 규제의 권한까지 부여하는 셈입니다.

산업부는 원전비리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작년 5월부터 원자력 관련 종사자 총 126명이 기소되었고 이 가운데 약 60%인 74명이 올해 2월까지 법원의 1차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 중에는 전 산업부(구 지경부) 차관, 전 한수원 사장, 전 한전 부사장 등 산업부와 원전 공기업의 최고위직들도 있습니다. 원전 공기업의 대표 격인 한수원의 현 사장 역시 30여년 간 산업부에 몸담았던 차관 출신의 인물입니다. 한수원의 모기업인 한국전력의 현 사장도 산업부 차관 출신입니다. 이렇게 원전 공기업의 수장들이 산업부와 긴밀하게 연관 되어 있는 현실에서 산업부에 관리 감독 권한마저 부여한다는 것은 오히려 규제를 약화시키려는 조치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원전 진흥과 규제의 분리’ 원칙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강조하는 사항입니다. IAEA의 안전을 위한 규제체계에 대한 기준(IAEA GSR Part 1)을 보면 규제기관의 독립성을 위해서 원자력 이용의 책임이나 이해를 가진 기관들과 별도로 독립된 규제기관을 운영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체약국이기도 한 ‘원자력안전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Nuclear Safety) 역시 “규제기관의 기능을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 또는 증진과 관련된 어떤 다른 기관이나 조직의 기능과 효과적으로 분리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원전의 안전 규제를 전담하는 국가기관은 국무총리실 산하의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입니다. 국내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하는 원전 비리를 방지하고자 한다면 원안위의 역할을 확대 강화하고, 이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며, 필요하다면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그린피스는 2013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가?’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국내 원안위가 미국, 프랑스 등의 규제기관에 비해 독립성 및 투명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을 밝히고 원안위의 위치와 역할 강화를 요구해 왔습니다. 역사가 짧아 아직 개선의 여지는 많지만, 2기 원안위 역시 지난 원전 비리 대응 및 안전 규제에 있어서 과거에 비해 더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필요함을 증명했습니다.

원전비리 문제는 5천만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문제입니다. 지난해 원전비리로 발생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수십조 원에 해당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법률안의 통과는 지난 2년간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던 온갖 유형의 원전비리로 추락한 신뢰도를 회복시키기는커녕 후퇴시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일본 의회의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조사위원회’는 후쿠시마 사고를 천재(天災)가 아니라 명백한 인재(人災), 즉 일본 정부, 규제기관, 원전사업자간의 결탁이 낳은 결과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웃나라의 교훈과 각종 비리를 겪으며 우리 정부가 고안해 낸 해결책이 고작 원전 진흥 부처에 관리 및 감독 권한까지 더하겠다는 것이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면, 새롭게 만들어지는 관리 및 감독권한은 원안위에게 주어져야 하고 산업부는 유관부서 중의 하나로서 협조의 역할을 맡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장다울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

캠페이너의 목소리 by 장다울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
Senior Climate & Energy Campaigner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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