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Feature Story - 2015-01-06
한국의 원전 상황은 어느 원전 운영국보다 특수하다.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도에 과도하게 높은 원전 이용률.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원전 비리와 사고는 안전 문화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다. 이 땅에서 끔찍한 원전 악몽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탈핵이다. 부실 재료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관련된 사고가 발생하는데도, 땜질로 누더기 원전을 양산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그린피스가 2014년 12월 한빛원전 앞에서 벌인 평화적 시위

지난달 8일 오전 9시.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전남 영광의 한빛원자력발전소 인근에 160개의 십자가를 설치했다. ‘비폭력직접행동’이라는 그린피스의 대표적 활동 방식이며, 이달부터 그린피스가 시작한 ‘누더기 원전 그만!’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숫자 160은 무려 6기의 원전이 집중돼 있는 한빛원전에서 지금까지 발생한 사고 및 고장 건수를 의미했다. 각각의 십자가는 해당 날짜와 원전 정보를 묘비명처럼 담고 있었다. 이는 40년 전 위험성이 판명된 부실 재료를 여전히 사용하면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한빛원전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은 하나하나의 십자가를 신중하게 설치해 나갔다. 칼바람 속에 꼿꼿이 서서 ‘누더기 원전 그만!(Stop Risky Nukes!)이라는 메시지가 적힌 대형 펼침막을 들기도 했다.

그린피스가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인코넬 600이라는 합금 소재는 국내에서 벌써 열두 차례나 원전 사고 및 고장을 야기했다. 이 소재를 사용한 원전 핵심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쓰나미나 지진 없이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같은 재앙적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 조치가 시급하다.

 한빛원전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전남 영광군 홍농읍의 일상. 주민들의 삶의 터전에서 위험한 원전까지는 걸어서 몇 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기술적 문제는 잠시 뒤로하고, 이 평화적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밟았던 땅, 아름다운 영광을 이야기하고 싶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포근하게 품어줄 것 같은 완만한 산세와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너른 갯벌. 세계 187개 원전 중 네번째로 규모가 큰 한빛원전이 있는 영광의 자연은 커다란 위험이 잠재된 곳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영광의 갯벌을 바라보며 2006년 7월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완료된 뒤에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갯벌에 나갔다가 바뀐 물길 때문에 변을 당하신 고 류기화님이 생각났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자 열심히 활동하셨던 고인은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가진 사람이나 가지지 못한 사람이나 차별하지 않는 갯벌에서 몸과 마음이 편했고 자유로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고인의 이 말씀과 더불어 생태 여성 신학자 현경 교수의 책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를 떠올렸다. 그렇게 서서 이곳이 죽음의 땅으로 변하지 않도록 꼭 막겠다고 다짐했다.

감히 말하건대 원전 사고는 어떤 재앙보다 섬뜩하다. 지난 2년 동안 그린피스 내 방사선 보호 전문가팀의 일원으로 후쿠시마를 방문하면서 온몸으로 겪은 사실이다. ‘복된 섬’이라는 뜻을 가진 땅에서 자란 빨간 홍시가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비극이 현실인 곳. 성인 남성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방사능 수치가 측정기에 찍히는데,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장면은 특히 견디기 힘들었다.

최악의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 6월 그린피스가 찾은 후쿠시마 시의 풍경. 높은 방사능 수치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해맑게 길을 걷고 있다. 

한빛원전 앞 평화적 시위에는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도 나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한빛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수십만명의 인근 주민들뿐 아니라 한수원 직원들 역시 큰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부는 살기 위해 도망갈 것이고, 일부는 현장에 남아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방사선에 막대한 피폭을 당할 것이다.

한국의 원전 상황은 어느 원전 운영국보다 특수하다.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도에 과도하게 높은 원전 이용률.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원전 비리와 사고는 안전 문화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다. 이 땅에서 끔찍한 원전 악몽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탈핵이다. 부실 재료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관련된 사고가 발생하는데도, 땜질로 누더기 원전을 양산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그린피스는 시민들의 지지와 함께 지속적으로 누더기 원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아름다움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 때까지’.

▲ ‘부실자재 인코넬 600과 위험한 한국 원전’ 그린피스 기자회견 동영상(2014. 12. 3)

누더기 원전 그만! 서명 참여하기

* 본 내용은 오늘(2015년 1월 6일)자 한겨레 오피니언에 소개됐습니다.

글: 장다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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