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지구의 역습, 반전은 시작됐다

Feature Story - 2016-10-25
기후변화를 다룬, 지구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이미 중반부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악의 무리 가운데 다수가 이미 주인공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역할을 결정할 대목이다. 주인공 쪽에 가담할 것인가, 악의 무리 속에 엑스트라로 남을 것인가.

액션영화는 대개 악의 무리를 응징하는 주인공의 활약을 다룬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악의 무리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을 것처럼 강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에 비해 주인공은 초라할 정도로 약하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결국 통쾌한 역전을 완성한다. 그 반전이 액션영화를 보는 재미일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의 입장에서 지난 두어 세기 동안 인류는 ‘악의 무리’였을지 모른다. 지구는 인류가 정착할 땅, 숨쉴 수 있는 산소, 생명을 유지토록 해주는 물을 말없이 제공해 왔다. 그러나 인류가 돌려준 것은 땅과 물을 더럽히는 온갖 오염물질과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이산화탄소였다. 인류가 아무리 악행을 저질러도 지구는 묵묵히 당하고만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이달 초 제18호 태풍 차바가 한반도 남부를 강타했다. 기상당국에 따르면 지난 112년간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345개 가운데 90% 이상이 7~9월에 집중됐다. 10월에 온 것은 10개에 불과했다. 10월 태풍은 최근 점점 잦아지는 추세다. 이 역시 지구온난화의 결과다.

지구의 역습이 시작되는 반전의 서곡. 가을 태풍을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이미 시작됐다. 한반도에서는 열대야 일수가 증가했을 뿐 아니라 야생 동식물의 생장 환경도 급격히 변화 혹은 교란됐다. 재앙은 전 지구적이다. 어디선가는 극한의 추위로, 거대한 산불로, 견딜 수 없는 무더위로, 해수면 상승으로, 사막화로, 동식물의 갑작스러운 멸종이 나타난다. 어쩌면 지구는 악의 무리의 괴롭힘을 참아내며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통쾌한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인류는 그 액션을 즐길 입장이 못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또 다른 차원의 반전이 존재한다. 그것은 악의 무리로 묶였던 인류 내부에서 진행하는 반전이다. 지난 10월4일 유럽의회는 유럽연합(EU) 회원국 28개국이 일괄적으로 파리 기후변화협정(신기후체제)을 비준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현재(10월 6일)까지 73개국,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 전 세계 56.75%가 동참해 신기후체제 발효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각국에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하는 신기후체제는 협약 당사국 중 55개국(전체 185개국),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 55% 이상의 국가가 비준하면 효력이 발생한다. 양심에 따른 것이든, 지구의 반격에 겁을 먹은 것이든, 아니면 이제 대세가 기울었다는 계산에 의한 것이든, 악의 무리 가운데 다수는 주인공의 편으로 돌아섰다.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악’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미국도 일찌감치 주인공의 편에 섰다.

그러나 고집스레 주인공의 반대 무리를 지키는 나라도 있다. 세계 12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경우다. 온실가스의 가장 많은 부분이 전력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데도, 정부는 2029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9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비중은 1%대에 불과하다. 기후행동추적(CAT)은 모든 국가가 우리나라처럼 행동한다면 기후변화를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대외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고, 제조업체의 상당수가 탄소 제로를 추구하는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입장이나 좀체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변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도 늦었다. 신기후체제의 발효 예정일은 오는 11월4일이다.

최근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지구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70% 넘게 나왔다. 이케아, BMW, 코카콜라, 스타벅스 등 80개 이상의 주요 글로벌 기업이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약속하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아래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신기후체제하에서 세계는 ‘재생가능’한 일자리를 늘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키워드로 인식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다룬, 지구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이미 중반부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악의 무리 가운데 다수가 이미 주인공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역할을 결정할 대목이다. 주인공 쪽에 가담할 것인가, 악의 무리 속에 엑스트라로 남을 것인가. 결론은 뻔하다. 명확한 권선징악의 결말, 그것 또한 액션영화를 보는 재미 가운데 하나임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글: 이현숙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재생가능에너지 캠페이너

*이 글은 2016년 10월 25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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