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다수호기 위험성 검토없이 세계 최대 원전단지 추진 안돼

Press release - 2015-04-22
밀양 송전탑 사태를 야기한 신고리 3호기의 운영 승인이 한 달 전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으로 상정된 가운데, 다수의 원자로가 밀집된 원전의 위험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2일 보도자료를 내고, “후쿠시마 사고 당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전원이 완전 상실된 데 이어, 총 6기 중 3기의 원전이 잇달아 노심용융(멜트다운) 현상을 보였다”며 “이후 세계사회가 다수호기 원전의 위험성 평가 방법론을 개발하는 등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도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은 아무런 준비 없이 신고리 3호기 운영을 추가로 승인함으로써 고리를 세계 최대의 원전단지(설비용량기준)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수호기, 무엇이 문제인가

한 곳에 원자로 여러 개가 들어서면 해당 부지에서의 사고 확률은 높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지진 쓰나미 태풍 홍수같은 자연재해와 테러 등이 가까이서 발생할 경우 그 피해도 몇 배 가중된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전세계에 다수호기 원전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다. 잇달아 벌어진 노심용융 외에도, 도쿄전력 직원 90%가 피폭을 당할까 두려워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발전소를 탈출했던 것. 그 뒤 원전에 추가 문제가 생겼지만 이를 제어할 인력이 부족해 피해는 더욱 커졌다.[1]

이후 다수호기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도 변했다. 캐나다는 사고 전 ‘(다수호기로 인한 대형 사고는) 가설에 불과하고 발생확률이 매우 낮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캐나다연방법원은 다수호기의 위험성 등을 이유로 달링턴 원전의 신규원전 부지준비 허가를 보류시켰다.

한국, 모든 원전이 다수호기… 고리는 세계 최대 원전 등극 코 앞

현재 전세계 187개소(443기 원자로)의 원전 부지 중 6기 이상의 원자로가 밀집된 곳은 단 11개소(6%)에 불과하다. 반면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은 4곳의 원전 부지가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다수호기의 위험성에 대한 대비가 시급한 이유다.

<전세계 원전 부지 별 원자로 밀집 현황>

원전 개수 1기 2기 3기 4기 5기 6기 이상 합계
해당부지 수 53 77 18 28 0 11 187
% 28% 14% 10% 15% 0% 6% 100%

출처: IAEA PRIS 참고 그린피스 작성(2015년 4월 1일 기준)

발전소 인근 주민(30km 반경 이내)이 340만 명에 이르는 고리 원전은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당장 신고리 3호기가 운영을 시작하면 무려 7기의 원자로가 밀집 운영된다. 용량기준으로 세계 1위 규모다. 여기에 건설중인 신고리 4,5,6호기와 계획중인 7,8호기를 추가하면 고리 원전은 세계 어느 원전 부지와도 비교 불가능한 위협적인 시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6기 이상 원전 부지 규모 순위>

순위 국가 원전명 원자로 개수 용량(MW) 비고
1 한국 고리 7 6860 신고리 4,5,6,7,8 (7200MW) 추가 예정
2 캐나다 브루스 8 6700  
3 한국 한울(울진) 6 6216 신한울 1,2,3,4 (5600MW) 추가 예정
4 한국 한빛(영광) 6 6193  
5 우크라이나 자포로지에 6 6000  
6 프랑스 그라블린 6 5706  
7 한국 월성 6 4809  
8 중국 진산 7 4386  
9 캐나다 피커링 6 3244  
10 인도 라자스탄 6 3244  

*원자로 7기가 있는 일본의 카시와자키 카리와 원전이 통계상 최대 규모이나 2012년 3월부터 모든 원자로가 가동 중단되었고, 재가동이 불확실한 점을 고려하여 제외                 출처: IAEA PRIS 참고. 그린피스 작성(2015년 4월 1일 기준)


다수호기 위험에 대한 한국의 대책은
“사실상 無”

그렇다면 위험천만인 다수호기 원전에 대한 한국의 대비 수준은 어떨까. 현재 한국은 후쿠시마 이전처럼 밀집도와 관계없이 각 원자로의 위험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원안위는 이에 대한 평가 방법론 개발이나 적용에 대해 아무런 계획이 없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2017년까지 방법론을 개발하겠다고 했지만 단순 연구과제일 뿐 원전사업자와 규제기관이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장다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는 “후쿠시마 사고가 있은 지 4년이 흘렀는데도 평가방법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것은 규제기관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다수호기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평가도 없이 신규원전을 계속해서 승인할 계획을 가진 원안위가 과연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규제기관인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고리원전 주변에는 시민은 물론, 대규모 중공업 단지가 밀집해있는 만큼 신고리 3호기 승인은 시민들의 안전과 한국 경제를 볼모로 한 무책임한 도박”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는 다수호기 위험성 평가 방법론 개발∙법률적 근거 마련까지

대책 없이 신규원전 승인에만 열을 올리는 한국과 달리 세계사회는 다수호기에 대한 구체적 대책을 모색 중이다. 그 선두에 캐나다가 있다. 캐나다도 한국처럼 부지별 원전 밀집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캐나다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사업자에 다수호기 위험성 평가 방법을 개발, 제출할 때까지 운영허가 갱신을 보류시켰다. 이는 당초 그린피스가 캐나다 원안위에 요구한 사항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는 지난해 5월 신규원전은 물론이고 기존 원전에 대한 운영허가 갱신 때도 다수호기 위험성 평가를 포함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또 각 원전에 대한 위험성 평가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대중에게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헝가리 역시 지난해 말까지 다수호기 평가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도는 원자력안전규제기관이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 

숀 패트릭 스텐실(Shawn Patrick Stensil) 그린피스 원전 전문가는 “캐나다보다 원전 밀집도가 높아 위험한 한국이 다수호기에 대한 구체적 대비 없이 시민들의 참여조차 제한하고 있는 상황은 심히 우려된다”며 “앞으로 한 곳에 여러 개의 원전이 더 들어설 예정이니만큼 한국사회에 이에 대한 시급성이 제대로 환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앞으로 다수호기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하는 등 한국의 단계적 탈핵을 위한 캠페인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2] Risk Assessment for Multi-unit Nuclear Power Plant Sites- WGRISK Perspective and Expectations, Dr. Marina Rowekamp- WGRISK Chair, Presented Nov 2014, International Workshop of N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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