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자로 해체 및 방사능 오염수 유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은 선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하려는 것일까요?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NO” 입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원자력손해 배상에 관한 보충배상협약(CSC, Convention on Supplementary Compensation for Nuclear Damage)에 서명을 해야만 합니다. CSC는 원전 사고에 대한 배상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규정하는 원자력 배상 관련 국제 협약입니다.  

그러나 이 협약의 진짜 목적을 들여다보면 원자력 배상 관련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s on Nuclear Liability)과 마찬가지로 원자력 업계를 보호하는데 있습니다. CSC는 원전사고에 따른 총 배상액을 실제 피해액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으로 상한선을 정해 놓았습니다. 원전 설비 및 관련 자재 공급업체는 책임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해도 그 어떠한 보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상 책임을 지는 것은 원자력 발전소 운영자입니다. 하지만 사고 피해 비용을 책임질 충분한 자금이나 재정안정 확보에 대한 의무조항이 없어 이들 역시 CSC의 비호를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 전 원자력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때부터 원전업계는 자신의 실책으로 야기된 손해에 대해 면죄부를 받아왔습니다. 정부는 원전업자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왔고 이에 반해 원전 사고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이 부담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원자로 건설업체인 GE, 히타치(Hitachi), 토시바(Toshiba) 역시 자신이 건설한 원전 사고에 대해 전혀 책임 지지 않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렇게 불공정한 관행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후쿠시마 원자로는 GE가 설계를 맡아 히타치, 토시바와 함께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건설한 원전의 사고 피해비용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원자력 업계를 구제하는 역할은 결국 납세자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 국유화된 도쿄전력(TEPCO)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처음으로 흑자(14억 4천 달러)를 올렸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력은 30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제염작업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매우 수상쩍습니다.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으로부터 후쿠시마 원전사업부를 분리해 정부가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다시 납세자의 호주머니에서 사고 대처 비용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제염작업 비용의 전액 부담이 법적 의무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력은 비용 지불을 거부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셈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미국정부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능 오염수 문제 해결에 도움이 필요할 텐데. 우리가 도울 수 있어. 사인만 해…”라며 CSC에 서명하도록 일본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일 지원은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침몰하고 있는 배, 원자력 업계에 구명 밧줄을 던져주기 위한 의도인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인도, 캐나다, 한국 등 자국 원자력 사업의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는 여러 국가들을 상대로 CSC 비준을 종용해 왔습니다. 

일본이 CSC에 서명하게 되면 미국은 자국 기업인 GE가 후쿠시마 사고 보상 청구소송에 휘말릴 확률을 줄이고, 미국 원자로 건설 기업의 일본 내 비즈니스 기회 확보라는 두 가지 이익을 두둑히 챙기게 될 것입니다.

원자력 분야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업계는 실수에 대한 책임을 계속해서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 질 의지가 없는 기업은 처음부터 업계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자력 업계를 보호하는 손해배상 제도는 온전하지 못하며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제도 개선은 이미 오래 전에 수행되었어야 합니다. 변화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원인제공자가 배상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면 됩니다. 원자력 발전의 엄청난 리스크를 야기하는 기업은 자신의 실수에 대한 금전적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합니다. 고통을 받는 일반 국민들이 그 책임을 대신해서는 안됩니다.

 

: 리안 툴 (Rianne Teule) 박사 / 그린피스인터내셔널 방사능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