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만으로 여행 오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늘었습니다. 혹시 타이페이를 여행하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원자력에 반대한다!” (我是人,我反核)라는 문구를 마주한 적은 없습니까? 현재 타이페이에서는 원전반대 포스터와 스티커를 카페와 음식점, 심지어 병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신다면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주위를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출처: Green Citizens' Action Alliance

 

지난달 대만 정부는 98% 가까이 공사가 진행된 제4원전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전소 부지인 궁랴오(Gong Liao)구 주민들과 반대운동을 벌여온 시민단체들은 20여년에 걸친 투쟁 끝에 부분적으로나마 승리의 기쁨을 나눴습니다.

물론 이번 발표가 대만을 완전한 탈원전 국가로 이끌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합니다. 그러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사안에서 시민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원전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마찬가지다”라는 메시지가 전 세계에 전달됐습니다.


    
무관심 속에 시작된 대만의 원전반대운동
제4원전 이야기의 시작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때는 체르노빌 참사가 있은 지 얼마 뒤였습니다. 당시 대만에는 6기의 원전이 세 지역에서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새 부지에 신규 원전 건설을 짓는 데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대만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궁랴오는 원전 반대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불행히도, 일부 학자와 환경운동가, 지역주민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들의 노력을 지지해주지 않았습니다.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일부 급진세력의 운동으로 치부됐습니다.

 사진출처: coolloud

 

후쿠시마 사고, 원전반대운동에 기름을 붓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는 모든 것을 바꿔놨습니다. 사고 직후 대만 전역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후쿠시마 사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촛불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매년 시민의 안전을 위한 탈원전 지지 집회가 활발하게 열렸습니다. 무려 20만 여명이 참가한 2013년 집회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원전반대운동은 소규모로 시작, 대만에서 가장 중요한 시민운동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전국에서 원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집회가 늘어났지만 제4원전 완공은 계속 추진됐습니다. 당초 올 6월 이 원전에 대한 안전성 검사와 함께 시운전이 진행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연료봉을 일단 넣으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원전건설을 중단시키다
4월 22일, 반핵운동가 린이슝(林義雄∙72) 전 민진당 주석(당 대표)이 원전을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부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존 원전 수명연장 금지, 제4원전 건설 중단 및 가동계획 폐기, 주민투표법 개정 등이 그의 요구사항에 속했습니다.

연이은 주말이었던 26일, 시민 수만 명이 연좌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사람들로 붐비는 타이페이 중앙역 앞 도로를 점거하고 집회를 열다가 경찰 병력에 의해 강제 해산됐습니다. 시민을 향해 쏜 물대포에 부상자도 발생했습니다.

시민들의 이 같은 노력 끝에 마침내 정부는 제4원전 건설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해당 원전의 원자로 1호기는 이미 완공됐기 때문에 안전성 검사를 하겠지만 가동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린이슝 전 주석은 정부의 답을 듣고 일시적으로 단식투쟁을 끝냈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끝나지 않은 싸움, 앞으로 우리는
현재 대만 정부는 에너지 대란 사태에 대비해 제4원전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 소강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투표로 건설재개를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제4원전 건설을 멈춘다고 해서 대만이 원자력에 등을 돌렸다고 할 순 없습니다. 탈원전으로 한 걸음 다가섰을 뿐입니다. 대만의 원전반대운동은 계속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오래된 원전의 수명연장을 막고,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대계를 정부가 수립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탈원전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지금 대만은 탈원전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가동중인 원전이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나라. 원전 밀집도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인데도 추가 건설을 계획 중인 한국의 원전반대운동은 안녕하십니까?

 

 

 

 

글: 르네 추(Renee Chou) / 그린피스 대만 사무소 커뮤니케이션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