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한국 청년, 에스페란자에 끌리다

아무도 꾸지 않은 꿈, 에스페란자호 승선

Feature Story - 2015-12-03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의 선원이 된 김연식 항해사. 김연식 항해사가 어떻게 에스페란자 호에 승선하게 되었는지, 첫 항해인 칠레 방문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 편에 걸쳐 소개드립니다. 서른셋 한국 청년이 어쩌다 국제환경단체의 배에 끌리게 되었는지 확인해보세요.

2015년 11월 1일. 그린피스 에스페란자(Esperanza)호는 콜롬비아를 지나 페루 연안을 따라 남쪽 칠레를 향해 항해한다. 이 일대는 혹등고래가 출몰하는 지역이라 속도를 높일 수 없다. 배는 천천히 적도를 향해 달린다.

대서양에서 파나마운하를 건너 태평양으로 넘어온 지 이틀째. 주말이라 선상 바비큐파티가 열린다. 주방장 다니엘(멕시코)이 선미 넓은 공간에 숯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는다. 선장 조엘(미국)과 기관장 벤트(독일)를 비롯해 이탈리아, 러시아, 호주, 스페인,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 15개국에서 온 선원이 그 주변을 둘러싼다. 각자의 악센트를 담은 영어로 배는 시끌벅적하다.

승선한지 사흘밖에 안 된 나는 아직 영어가 불편하다. 그 틈바구니에 벙어리 삼룡이가 되어서 주변을 둘러본다. 마냥 신기하다. 내가 어쩌다 피부색 다른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입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먹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바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상업 선박회사에서 항해사로 일하던 내가 말이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 호의 현재 선원들. 아랫줄 오른쪽 세번째가 필자 김연식 항해사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호의 현재 선원들. 아랫줄 오른쪽 세번째가 필자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에 끌리다

내가 그린피스의 선박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6개월쯤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부정기 벌크화물선에 승선하고 있었다. 길이가 200미터도 넘는 대형 상선을 타고 지난 5년간 전 세계 36개국에 기항했다. 큰 바다를 항해하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항구에 상륙했다. 그 이야기를 모아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예담, 2015)>라는 책을 탈고하고 난 후였다. 인생의 목표였던 책을 썼으니 이제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그린피스가 번쩍 떠올랐다.

그 길로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고 그린피스의 활동을 둘러봤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 빠져들더니 어느 순간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게 확 올라왔다. 이게 뭔가 싶었다. 한번 마음이 기울자 나는 밤이 깊도록 마우스를 놓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전부 찾아보고, 그린피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샅샅이 구경했다. 그 날 그린피스에 환경감시선 세 척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당연하게 지원서를 썼다. 에스페란자(‘희망’이라는 뜻)라는 배가 유난히 끌렸다. 이미 내 마음은 에스페란자에 있었다.

#greenpeace #그린피스 #항해사 가 되었습니다^^

김연식(@navigator_esperanza_greenpeace)님이 게시한 사진님, 2015 10월 18 오후 11:02 PDT

결국 에스페란자의 항해사가 된 김연식씨. 출처는 김연식 항해사의 인스타그램

아무도 꾸지 않은 꿈

숙고에 숙고를 거쳐 자기소개서를 썼다.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 끝에 연애편지를 보내는 심정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명문대에 가겠다 싶고, 이렇게 연애를 하면 김태희도 꼬실 수 있을 것 같았다(물론 심정적으로만 말이다). 그렇게 간절한 기원을 담아 떨리는 마음으로 ‘보내기’버튼을 눌렀다.

이메일을 보내고 부터는 스토커로 변신했다. 제대로 보낸 건지 궁금한 마음에 매 시간마다 ‘수신 확인’을 눌렀다. 조바심이 났는지 지하철에서, 횡단보도에서, 식당에서, 영화관에서 수도 없이 ‘수신 확인’을 눌러댔다. 그러기를 며칠. 실망스럽지만 끝내 아무도 내 메일을 열지 않았다.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들. 맨 오른쪽이 에스페란자 호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들. 가장 오른쪽이 에스페란자호. 

스토킹의 시작은 관심, 탐색, 접근, 접촉, 집착이 아니던가(미리 밝히지만 스토킹을 해본 적은 없다. 정말이다). 자연스레 집착이 생겼다. 그래. 이메일로 안 되면 전화다. 그린피스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우리보다 7시간이 느리다. 우리 오후 4시에 암스테르담은 오전 9시다(썸머타임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출근 시간에 맞춰 대표번호로 전화했다. 교환원이 받았다.

- 해사부 직원들은 아직 출근 안했습니다.
- 아, 네.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할게요.

한 시간 뒤.

- 아까 전화했던... 해사부 찾던...
- 아, 네. 지금 회의 중입니다.
- 아, 네... 그러면 오후에 다시 연락할게요.

그리고 오후.

- 아까 그.. 해사부...
- 아, 전부 외근중입니다.
- 네, 그러면 메모 좀 전해주세요. 저는 한국에 사는 김연식이라고 하는데, 선원 지원서를 이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달라고요.
- 네. 알겠습니다. 뚝!

이런 통화를 일주일 넘게 반복했다. 나중에는 말이 점점 짧아져서

- 여기 한국. 해사부 좀.
- 또 너니? 없어.
- 응. 메모 전해줘.
- 알겠어. 안녕.

이렇게 단어만 나열해도 대화가 되었다. 교환원 놈이 정말로 메모를 전해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낸 이메일의 ‘읽지 않음’ 표시는 바뀌지 않았다.

지난 10월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한국 방문시에도 자원봉사자로 함께 했던 김연식 항해사

지난 10월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한국 방문시 자원봉자사로도 함께 했던 김연식 항해사

 

*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글: 김연식 /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 호 3등 항해사

카테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