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바다

바다의 마이크로비즈 방울을 닦아주세요

Feature Story - 2016-08-08
화장품 기업에 순위를 매겼습니다. 매출액 기준 세계 30대 화장품 및 생활용품 기업이 대상이죠. 기준은 '바다오염'입니다. 그린피스는 화장품과 생활용품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지름 5㎜ 이하의 작은 고체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일어나는 해양 생태계 파괴에 대해 경고해 왔습니다. 화장품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 마이크로비즈(microbeads)도 주범 가운데 하나죠. 평가 잣대는 마이크로비즈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사용 중단 계획은 가지고 있는지 등입니다. 순위에는 우리나라 기업도 있습니다. 화장대와 세면대 앞에서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이름들, 바다의 입장에서 이 기업들은 과연 몇 등이나 될까요?

Arctic Frontiers poster contest winners forming the text “Protect what you love” with garbage found on the beach at Sarstangen on Prince Carls Forland, on the west coast of Svalbard. According to the Governor of Svalbard, approximately 80 percent of the trash that ends up on the beaches of Svalbard originates from the fishing industry.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를 아세요? 아프리카 남수단의 헐벗은 이웃을 위해 삶을 바친 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죠. 가난과 내전의 상처만 안고 사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노력은 '희망고 운동'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수단 사람들이 망고나무를 키워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자는 운동이죠. 그리고 이 운동에 화장품 브랜드 더페이스샵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더페이스샵은 남수단에서 재배된 망고를 구매해 화장품 원료로 사용합니다.

혹시 직접 망고나무를 심지는 못해도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픈 마음에 이 화장품을 골라서 썼던 분이 계시다면, 조금 불편한 사실이 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 얘기죠. 여성환경연대가 2015년 국내에서 시판된 화장품 300여 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더페이스샵의 해당 제품도 마이크로비즈를 함유하고 있었습니다. 먼 대륙의 이웃에게 웃음을 줄 수 있지만, 뜻하지 않게 바다를 울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던 거죠.

하지만 이제 남수단의 이웃도, 바다도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페이스샵 브랜드를 보유한 엘지생활건강이 해당 제품을 포함한 자사의 씻어내는 제품에서 마이크로비즈를 추방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국내외 환경단체와 소비자의 끈질긴 요구에 응답한 거죠.

그린피스는 7월 20일 우리나라의 아모레퍼시픽과 엘지생활건강이 포함된 세계 30대 화장품 기업의 마이크로비즈 사용과 관련한 환경지수를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치약으로 유명한 미국 콜게이트 파몰리브, 니베아 브랜드를 소유한 독일 바이어스도르프 등이 수위를 차지했습니다.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빠른 정책 실천이 높은 점수의 배경입니다. 반면 에스티로더, 암웨이 등은 꼴지를 기록했죠. 이들은 사용하겠다고 밝힌 대체 물질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엘지생활건강은 중위권에 머물렀습니다. 마이크로비즈에 대한 정의가 협소하고 대상 제품의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점수가 깎였습니다.

순위 발표가 있은 후, 마이크로비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 발 빠르게 대처한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엘지생활건강은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마이크로비즈로 인한 오염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잠재적으로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국제 시민단체와 유엔환경계획의 의견에 공감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용 중단 계획을 수립해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세계 최대 생활용품 기업인 미국 피앤지는 지금까지 폴리에틸렌에 국한했던 마이크로비즈 대체재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일본의 시세이도, 고세 등도 마이크로비즈와 관련한 내부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투명성 강화 약속을 실천했습니다. 에스티로더 또한 홈페이지를 통해 마이크로비즈에 대한 정의를 좀더 명확하게 밝혔으며 정책의 이행시일도 공개하며 투명성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 암웨이, 샤넬 등 우리나라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들은 아직 진전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계속 환경단체의 요구, 소비자의 우려에 귀를 막는다면 결국 시장에서 지위가 흔들리게 되겠죠. 그린피스 한국사무소가 지난 6월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4%가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해 건강의 위협을 느낀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71%는 마이크로비즈가 함유된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응답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기업들도 마이크로비즈 사용을 중단하고 대체에 나서야 합니다.

마이크로비즈 추방을 기업의 자율에 맡겨놓는 것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각 기업마다 마이크로비즈의 크기, 성분, 기능을 정의하는 것부터 각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이번 순위 발표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들도 사실 모범사례로 꼽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많은 실정입니다. 관련 정책 개선을 약속한 엘지생활건강 담당자는 "업계 스스로의 노력이 한계에 부딪칠 때 정부에서 규제하는 것이 일반적 수순"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근본적인 해답은 법제화를 통한 규제일 것입니다. 해답이 되는 건 소비자와 바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화장품을 살 때마다 일일이 마이크로비즈가 없는 제품인지 확인하고 목록과 비교해보는 수고스러움이 없어지겠죠.

신음하는 바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마이크로비즈가 포함된 제품을 쓰지 않고, 제조사에 사용 중단을 압박하는 거죠. 그린피스 홈페이지에서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의 마이크로비즈 정책 순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성환경연대의 리스트에서도 화장품의 마이크로비즈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비즈를 포함하지 않은 제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런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도 늘게 되고, 따라서 소비자의 선택폭도 넓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린피스의 미세 플라스틱 규제 요구 에도 관심을 보여 주세요. 온라인 서명에 당신의 이름을 남겨주시는 것만으로도 바다는 큰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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