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역사의 중심, 레인보우 워리어

Feature Story - 2013-06-25
레인보우 워리어는 왜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 라 불리게 되었을까요? 1971년 그린피스의 첫 대원들은 미국의 핵실험을 반대하기 위해 첫 항해를 떠납니다. 핵실험이 벌어지는 암치트카 섬으로 향하는 길, 대원 중 하나였던 언론인 헌터가 어떤 방랑자에게 받았다는 책 한 권을 꺼내놓습니다.

레인보우 워리어는 왜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 라 불리게 되었을까요? 1971년 그린피스의 첫 대원들은 미국의 핵실험을 반대하기 위해 첫 항해를 떠납니다. 핵실험이 벌어지는 암치트카 섬으로 향하는 길, 대원 중 하나였던 언론인 헌터가 어떤 방랑자에게 받았다는 책 한 권을 꺼내놓습니다.

 

1979년 레인보우 워리어가 아이슬란드 포경 반대 활동을 펼칠 당시 활동가

<무지개의 전사들> 윌리엄 윌로야와 빈슨 브라운이 쓴 이 책에는 200년 전의 예언이 실려 있었습니다. ‘불의 눈’이라는 이름의 늙은 원주민 여인이 “자원 고갈, 검은 바다, 오염된 호수, 길에 죽어가는 사슴들로 지구가 황폐해질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어 그녀는 “너무 늦기 전에 원주민들이 그들의 정신력을 회복해 백인들에게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가르치고, 백인들과 함께 협력하여 ‘무지개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는 대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1978년 마침내 자신들의 배에 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첫 항해를 시작한 이래 레인보우 워리어는 35년간 환경파괴와 수호의 현장 가장 최전선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숲을 보호하기 위해, 전 세계 바다를 남획과 오염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그린란드에서 기후 변화의 영향을 조사하고 피해를 기록하기 위해, 풍력발전과 같은 해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망망대해와 각국의 바다를 누벼 왔지요.

이러한 활동 과정에서 아픔도 겪었습니다. 1985년 7월 10일에는 프랑스의 핵실험을 막고자 남태평양의 모루로아 섬으로 향하던 중 프랑스 정보요원에 의해 폭탄테러를 받아 침몰한 것입니다. 그러나 레인보우 워리어의 정신까지 침몰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약 4년 뒤 다시 바다로 나선 레인보우 워리어 2호는 환경 감시선의 역할을 재개합니다. 2호의 특별한 점은 기존의 활동들을 이어가면서도 돌발적인 재해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 점입니다.  2004년, 인도양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는 현장에 급파되어 구호활동을 돕기도 하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났을 때 해안에서 방사능 농도를 감시한 일이 일례지요.

2호가 21년 간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으로서의 활동을 마무리 한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었습니다. 2011년 6월, ‘원전 없는 한국’ 투어를 벌이며 고리, 영광, 월성, 삼척 등 원전지역과 신규부지를 방문하고 2개월 뒤 방글라데시의 한 단체에 구호선으로 기증된 것이죠. 레인보우 워리어 2호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소외지역 주민들을 위한 ‘물 위의 병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 2개월 뒤인 2011년 10월, 전세계 10만 여 서포터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그린피스에 의해 설계 건조된 레인보우 워리어 3호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레인보우 워리어는 대통령이 승선해 화제가 된 인도네시아, 수천 명의 방문객들에게 재생가능에너지의 미래를 제시한 홍콩을 거쳐 곧 한국 시민들을 만나러 올 것입니다.

핵실험 반대 활동으로 침몰한 지 정확히 28년이 되는 7월, 오랜 그린피스 캠페인 역사와 침몰하지 않는 레인보우 워리어의 정신을 경험하고 싶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