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디자이너 윤호섭, 나는 왜 후쿠시마에 갔는가

Feature Story - 2014-02-25
안녕하세요. 저는 윤호섭입니다. 저는 지난 2월 15일부터 22일까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초청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3주기를 맞아 진행된 ‘후쿠시마 증언자 여행’에 한국의 일반인 참가자 자격으로 다녀왔습니다.

인형극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의 삶을 알리고 있는 오카와라 타츠코 씨

안녕하세요. 저는 윤호섭입니다.

저는 지난 2월 15일부터 22일까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초청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3주기를 맞아 진행된 ‘후쿠시마 증언자 여행(Bearing Witness Tour)’에 한국의 일반인 참가자 자격으로 다녀왔습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저는 원전 사고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것 같은 우리의 삶이 뭔가 크게 잘못돼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지요. 결국 저는 바로 가족 회의를 열고 우리 가족부터 에너지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서는 강연과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로 이어진 대형 원전 사고의 교훈을 전파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서울시의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의 ‘햇빛천사 동글이’ 캐릭터를 만든 것도 그 일환이었지요.

이러한 활동 중에도 저는 후쿠시마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늘 귀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실망스럽게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제공하는 정보는 투명하지 않았고, 제한적이었으며, 방사능 오염수 누출에 대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시인하는 등, 사고 수습에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린피스에서 후쿠시마 3주기를 맞아 증언자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잊혀져 가는 재난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부탁이었지요.

이번 증언자 여행에는 한국, 독일, 프랑스, 인도, 폴란드에서 온 일반인 참가자들과 그린피스 캠페이너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곳의 시의원인 분, 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을 평생 해온 분도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대화는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면 어디나 비슷한 문제들로 고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하필 여행 기간 동안 도쿄와 후쿠시마 지역에 3-4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열의를 갖고 후쿠시마 현 내 사고 원전에서 4-50km 떨어진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그 곳에서 다섯 분의 피해자 분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들을 만나며 저는 어린 아이들이 받는 피해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컸습니다. 마음껏 산과 들에서 뛰어 놀지도 못하고, 아버지와 할머니와 강제로 떨어져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요?

여행 중 그린피스 전문가들은 지속적으로 고농도오염지역(hot spot, 핫스팟) 모니터링을 했습니다. 충격적이게도, 후쿠시마 원전 30km를 벗어난 지역에서도 여전히 자연적 수준보다 수십 배 이상의 방사능이 측정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제염 작업 이후에 돌아오는 주민들에게 배상금 지급을 끊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정확한 정보를 제 때에 제공받지 못했고, 정부에 기만을 당했으며, 고통을 받고 있고, 불확실함 속에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만났던 오카와라 씨의 말처럼 피난민들의 삶은 “어느 것 하나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100% 안전하다는 원전 사업자의 말을 믿었던 이들은 이제 국가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낍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잊혀져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피해자들은 한국의 가족, 친구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만약 한국에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 우리가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를 상상할 수 있었지요.  우리 역시 정확한 정보를 제 때에 제공받지 못할 것이며, 피해는 온전히 시민들 몫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일상의 행복은 모두 파괴되고,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잊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저는 묻고싶습니다. 만약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그 때 원자력발전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나요?”

이번에 만난 60대의 오카와라 씨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반핵 공부 모임도 하고 사회 운동에도 참여했지만 바쁜 삶 때문에 지속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 때는 구소련의 기술적인 문제로만 생각하며 일본에서는 사고가 발생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일이라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자신이 후회된다는 그의 말에, 저는 저와 우리 모두를 대입해 봅니다.

 

윤호섭 교수

후쿠시마 2014 이야기 by 윤호섭

윤호섭(1943~) 명예교수는 국내 그래픽디자인 1세대 디자이너로 70~80년대에 88올림픽, 펩시콜라 한글로고 디자인 등의 대중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82년부터 2008년 2월까지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재직, 매년 인사동 거리에서 진행되는 녹색 티셔츠 퍼포먼스를 통해 ‘인사동 티셔츠 할아버지’로 알려진 생태주의 예술가이자 교육자이다. http://www.greencanv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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