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이너의 목소리] 대통령께서 꼭 지키시길 바라는 두 가지 약속

Feature Story - 2014-05-29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에서 ‘원자력발전사업자 등의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웃나라의 교훈과 각종 비리를 겪으며 우리 정부가 고안해 낸 해결책이 고작 원전 진흥 부처에 관리 및 감독 권한까지 더하겠다는 것이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한 달이 넘었다. 그 동안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에 대한 수많은 보도와 몇 가지 정부 대응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도 진도 팽목항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들 딸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4월 16일 그날부터 시간이 멈추어 버렸을 터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란 이런 것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가족이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사회 풍조로 인해 희생된 것이라면 마땅히 호소할 곳을 찾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은 몇 갑절이다.

사고가 수습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걱정이 하나 자리 잡았다. 바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원전 사고가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정부는 시민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였다. 이는 단순히 내가 원전 반대 캠페인을 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 재가동에 반대하는 서명을 시작, 이미 1만 5천명(29일 기준)을 넘겼다. 세월호 참사를 원전 사고로 연결하는 것은 안전불감증이 팽배한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너무도 상식적이다.

걱정이 꼬리를 무는 사이,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지만 담화문이 비단 세월호 사고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탈원전 캠페이너로서 꼭 지켜졌으면 하는 대통령의 약속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끼리끼리 서로 봐주고, 눈감아주는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 내겠다”고 강조한 관피아 척결이다. 지난해부터 터져 나온 원전 비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 관피아의 대표격은 바로 ‘산피아’다. 지금까지 원전 비리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은 관계자만 무려 74명에 이른다. 여기에는 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과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산피아를 비롯한 원전 마피아의 척결이 얼마나 시급한지 보여준다.

두 번째는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해 배상재원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업의 잘못을 국민의 혈세로 부담하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손해배상체계에 따르면 후쿠시마처럼 수백조원의 비용이 드는 사고가 발생해도 원전 운영자인 한수원은 약 5,000억 원 까지만 배상책임을 진다. 초과액은 전부 국민의 혈세로 부담한다. 원전 제조사는 전혀 책임이 없다. 2001년 사업자가 100% 책임을 지는 무한책임에서 배상액 한도가 있는 유한책임으로 원자력 손해배상법이 개정된 결과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했다. 한국은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원전 인근 거주민이 무려 405만명(원전 반경 30km 이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 최소 30km 이내 거주민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에 이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여있다. 피해규모가 천문학적이고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원전 사고의 특성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므로 정부는 원전 분야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언급한 두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원전 마피아 청산을 위해 안전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권한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신규 법률제정을 통해 산업부에 주려는 원자력사업자관리감독 권한을 원안위에 넘기고, 이를 다시 대통령 직속 장관급으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또 원자력 손해배상법을 개정, 유한책임에서 무한책임 원칙으로 다시 바꾸고 원전 사업자뿐 아니라 제조사에도 사고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돈을 우선하느라 안타까운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또 벌어져선 안 된다. 대통령의 이번 약속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 가족들과 전 국민 앞에 눈물로 호소한 것이니 만큼 원전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도 반드시 적용, 지키기를 바란다.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지 않고서야 한 줄 단신 뉴스로 쉽게 처리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에 살고 싶다. 

장다울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

캠페이너의 목소리 by 장다울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
Senior Climate & Energy Campaigner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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