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에너지 전환, 시민들과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Feature Story - 2017-10-25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에너지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이번 공론화과정을 통해 단계적 탈원전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확인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지난주 저는 태국 방콕에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동료들과 2018년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인의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에 서울 사무소 대표로 참석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오전에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숙소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국내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지난 2년간 그린피스가 시민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시민 참여단의 최종 결정이 발표됐기 때문입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셨겠지만, 471명 시민 참여단 다수의 결정은 새 정부의 장기적 탈원전 정책은 지지하지만, ‘공사가 중단된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되어야 한다’였습니다(재개 59.5%, 중단 40.5%).

이 결과에 참담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지난 한 달간 그린피스 동료뿐 아니라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동료 및 전문가들과 함께 시민 참여단의 건설 중단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2016년 5월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신고리 5, 6호기 추가 건설 허가 심의에 맞춰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진행한 이색 퍼포먼스>

아버님께서 원자력계에 일하셨던 저는 유럽에서 에너지 정책을 공부하고 일본에 위치한 UN기구에서 일을 할 때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했습니다. 안전에 관해 최고라던 일본에서 대형 원전 사고로 천문학적 피해와 수습조차 불가능한 처참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한국의 탈원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그린피스의 캠페이너로서 많은 시민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탈원전 에너지 전환 정책의 수립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건설 중단 결정으로 저의 개인적인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사실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지난 5년간 만났던 수많은 시민들과의 다짐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후쿠시마에서 만난 피난민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인 수가노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국에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안전한 원전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한국이 일본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밀양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서울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을 알려주셨고, 원전이 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으니 이를 잘 알려달라 당부하셨습니다. 부산에 사는 제 동갑내기 친구와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꼭 신고리 5·6호기를 취소시키자 다짐했고, 신고리 원전 앞 평화적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 활동가는 재판을 받는 불편함보다 시민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니 자신들의 용기있는 비폭력직접행동이 우리 사회를 위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당부와 다짐들이 여전히 제 가슴에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The Rainbow Warrior is in South Korea for a three week tour as part of Greenpeace’s campaign to push the Korean government to change its energy policy. The government is planning to build two more reactors at the Kori Nuclear Power Plant, the world’s largest nuclear power plant complex, located between Busan and Ulsan. The plant already has six reactors and there are around 3.4 million people living within the 30km zone around the plant. A press conference and open boats are organized during the first days of the tour.
<지난 2015년 신고리 원전 앞에서 신규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에너지 전환의 시대


이번 추석, 가족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신고리 5·6호기 문제로 같이 놀아주지 못한 제 6살 아이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왜 원자력발전소를 지었어요? 할아버지 나빠!”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원전을 지은 건, 그 당시에는 아빠와 너, 그리고 세상을 위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야. 할아버지를 미워하지마. 이제는 아빠가 할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너와 우리 이웃을 위해 바람과 햇빛을 쓰는 에너지를 늘려나갈 거야. 아빠만 믿어!”

전쟁을 겪고, 가난에서 벗어나야 했던 부모님 세대에게 안전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2017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월호와 경주 지진을 겪은 우리에게, 생명과 안전은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또한, 경제성장과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원전에 의존해야 했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습니다.

원전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쇠락해가고 있습니다. 위험하지만 값싼 방식이라는 원전의 장점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합니다.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는 그 경제성이 날로 좋아져 이미 세계 곳곳에서 원전과 화석연료의 경제성을 앞질렀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재생가능에너지의 잠재성과 기술력은 충분하고, 경제성도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료를 수입하지 않고도, 사고를 걱정하지 않고도, 미래 세대에 핵폐기물을 떠넘기지 않고도 재생가능에너지로 전기를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공급하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9월 영국에서 해상풍력발전사업이 원전 발전 비용 절반에 낙찰된 것을 알리는 그린피스 후원자이자 배우인 엠마 톰슨>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은 ‘위험하지만 값싼 원전이냐, 안전하지만 비싼 재생에너지냐’가 아닙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이상 뒤쳐지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안전하고 경제적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루고 새로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중앙정부와 소수 대기업이 아닌 지자체과 시민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이행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신고리 5·6호기 이후, 우리가 가야 할 길


이번 공론화 결과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시민들이 장기적 탈원전에 대해서는 흔들림 없는 지지(원전 축소 52.3%, 원전 확대 9.7%)를 보여줬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몇 달간 더 많은 사람들이 단계적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이 안전에 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새로운 산업 경쟁력 창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에너지 정책이 소수 전문가나 이익단체의 문제가 아닌, 이해 당사자인 시민들에 의해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도 생겨났습니다.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면, 고리 원전 단지에는 9기의 원전이 밀집하게 됩니다. 이는 어느 국가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특수한 위험입니다. 우리 정부는 이제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멈춤 없이 이행해가면서, 동시에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해 앞으로 건설될 5기의 원전과 이미 가동 중인 24기의 원전에 대한 안전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재생가능에너지를 여전히 먼 미래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미 재생가능에너지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지난 40년간 원전과 석탄 중심의 시스템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2016년 4월 부산항에 정박한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방문한 시민들에게 신고리 5, 6호기 추가 건설의 위험을 설명하고 있는 장다울 캠페이너>

경제학자 케인스가 이야기했듯, “변화가 힘든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위해, 이제 우리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이행을 더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린피스는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고 그 혜택을 직접 누릴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활동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정치적·재정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과학적인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더 나은 대안을 함께 제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한 에너지 전환에 앞으로도 그린피스와 함께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글: 장다울, 그린피스 선임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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