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a-Suh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UNFCCC COP18/CMP8)가 막바지에 이를 때, 필리핀에서는 초대형 태풍으로 인해 약 700여명이 사망하고 11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밤샘 끝에 하루가 늦춰져 폐막할 때까지 회의에 참석한 많은 국가들은 정치적인 대화로 시간을 소모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며 실망스러운 결과를 안겨줬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교토의정서의 제2차 공약기간은 새 의정서가 발효될 2020년까지 8년간 지속 된다고 결정됐지만, 일본, 러시아, 캐나다, 뉴질랜드는 2차 공약기간을 탈퇴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기후협약은 오히려 퇴보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좀 더 낮추고 2014년 리뷰를 통해 배출량 목표를 좀 더 높이겠다고 협의했지만, 이를 통해 현재 지구의 빠른 기후변화 속도와 그 피해에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유럽연합(EU)의 ‘결렬된 협상’이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스스로 먼저 나서 배출감량과 기후변화기금을 야심차게 약속하려 했지만, 유럽 내 반대국가들의 강한 반발로 그 목표치를 하향조정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블로그에서 이야기 했었던 남아도는 배출권 (일명 Hot Air)도 마지막 순간까지 협상될 수 없었던 사항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가 끝까지 배출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마지막날의 협상은 10시간 동안 아무 진전 없이 갈등만 거듭했습니다. 결국 유럽연합 및 다른 국가들은 제2차 공약기간까지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의 국가에 배출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대신 배출권 거래를 원활히 할 수 있는 기준을 좀 더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배출권 보유 국가들이 2차 공약기간 동안 배출권으로 큰 이익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배출권의 주요 고객인 스위스, 일본, 호주 등의 국가들이  동유럽에서 나오는 배출권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죠.

재정문제도 큰 물음표만 남긴 채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사실 이번 총회가 카타르에서 개최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주요 석유국들의 기여를 많이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회의 일정의 반 이상이 진행될 때까지, 그 어느 국가도 저개발국들의 기후변화 대응 및 적응에 필요한 기금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영국 등 유럽 강국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들이 기자회견으로 저개발국  지원을 약속했지만, 지속적인 기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는 않았습니다. 선진국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제침체 속에서 장기적인 재정 약속은 어렵다는 입장이고, 저개발국의 경우 재정지원이 없다면 기후변화를 대응하거나 적응하기 불가능 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선진국은 기금운용에 영향력을 갖고 저개발국 사업을 지원하려 하지만, 저개발국의 입장에서는 당장 시급한 복구나 적응 등 자국의 상황에 맞게 기금을 사용하고 싶어합니다. 결국, 반기문 사무총장이 기금 확보는 2014년 정상회담을 통해 마무리 짓자고 발표하여 재정문제가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구가 처한 심각한 상황보다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과연 선진국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일까요?  현재 선진국이 화석연료나 대기업에 제공하는 보조금 및 혜택을 줄인다면 충분히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며 저개발국을 도울 수 있습니다.

기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그리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 몇몇의 정치인들과 기업들을 위해 수십 억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미래가 고통 속에 머물러야 할까요?

교토의정서에 대한 협상이 마무리 되면서 필리핀의 협상가 사뇨(Saño)는 발언 시간에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국가의 협상가로서 또는 한 국가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그저 필리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호소합니다. 전 세계에 그리고 여기에 있는 세계 국가의 대표들에게 우리가 직면한 이 잔인한 현실에 대해 간곡히 호소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소수의 정치인들이 원하는 결정이 아닌, 바로 70억 인구가 원하는 결정이어야 합니다. 저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에게 호소합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더 이상 변명하지 마십시오. 제발, 도하가 여기 우리의 올바른 정치적 결정으로 새롭게 기억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발, 2012년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그런 의지를 보여줬던 용기있는 해였다고 기억되게 해주십시오. 저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여기 지금 이 곳이 아니라면, 그럼 어디서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사뇨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물음을 던졌을 때, 과연 다른 협상가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제 우리는 다음 협상이 어떻게 진전되어 나아갈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글: 서형림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