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가와 카츠타카(67세)는 현재 도쿄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사이타마현의 카조시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후쿠시마 현의 후타바 마을에서 살았으며 후타바의 전(前) 시장이었습니다. 슬하에 장성한 세명의 자녀가 있는 그는 지역사회의 붕괴를 가장 안타까워 합니다.

“제가 본 것은, 제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시청건물 4층에서 저는 파도 사이로 집과 나무들이 쓸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제 위치를 잃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지요.” 이도가와씨는 손을 포갠 채 조용히 앉아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꾼 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쓰나미가 후타바의 해변도로를 강타하기 10분 전, 그는 그 도로 위를 운전해 갔다고 합니다. “만약 제가 조금만 늦게 그곳을 지났다면, 저는 오늘 여기 있을 수 없었겠죠.” 재앙의 규모는 그를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시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자원을 보호하는 모든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었습니다. 옳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어요.”

그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도쿄전력과 중앙정부에 계속 문의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 안전합니까?” 언제나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네”

그러나 그는 후쿠시마 재앙 전부터 정부의 공식적인 대답이 그러리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저는 정부와 도쿄전력이 우리에게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부와 기업에의 분노와 실망 

3월 19일, 이도가와는 그 어떤 조언도 얻지 못한 채 후타바 마을 주민들을 가급적 먼 곳으로 대피시켜야겠다고 결정합니다. 현 세대의 주민들과 미래 세대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역사회였습니다. “후타바 마을이여 영원하라”가 주민들을 향한 그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네비게이션 장치가 없는 배와도 같습니다. 이 메시지로 우리의 목적지를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떠올리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오직 원자력산업계와 원자력발전만을 지원하고, 마치 우리가 죄인인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재앙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 방사능의 위협 아래 있는지 모르기때문에, 이 재난은 우리에게 가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와도 같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상황은 인간이 만든 재앙입니다. 그리고 이는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2011년 재앙 직후, 며칠 동안은 방사능에 대한 정보가 은폐됐습니다.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를 줄이기 위해 요오드 알약을 복용하라는 기본적인 지시도 없었고요. 의대에서는 비밀스러운 논의만 오갈 뿐, 사람들을 위한 방사선 검사는 없었습니다. 후쿠시마 내에서는 라디오를 통해 ‘안전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이 지원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은 즉시 대피해야 했는데도 이 범죄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이도가와씨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방사능과의 전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어떤 사람들은 방사능 없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죠. 우리의 헌법에 의하면, 이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3년이나 흘렀는데도 변함없는 이 상황은 후쿠시마의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일입니다. 재앙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우리 총리가 이런저런 발표를 하는 동안에도 일본은 오염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거짓말을 반복해서, 현재의 극단적인 상황까지 오게 된 겁니다.”

이도가와 카츠타카 후타바 전 시장 이도가와 카츠타카 전 시장의 족보

잊혀진 사람들, 그리고 역사의 파멸

“우리는 일본 안에 살고 있는 난민입니다. 우리는 보여질 수 없는, 잊혀진 사람들이죠. 버려진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해 얘기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요? 우리에 대한 배려는 없습니다. 갈 곳도 없고요. 우리는 집과 머물 곳이 필요하지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는 손을 맞대며, 조심스럽게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커뮤니티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피해자들이 정책 결정의 구성원으로 재건에 동참할 수 있죠. 그러나 일본에서 우리는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오염된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잊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피해자와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도쿄에 있는 관료들은 원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값싼 방법으로 원전사고를 마무리 지으려고만 하지요. 미래를 위한 정책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사고가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지만, 그는 세부 사항, 날짜, 그리고 속임수들을 기억합니다. 가장 크게 잃은 것이 무엇인지 묻자,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습니다. “신뢰입니다. 완전히 잃었어요. 정부와 도쿄전력은 우리에게 상처를 줬고, 전 그들에게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는 잠시 실례하겠다며, 방을 떠나 비단 스카프로 싸인 나무 상자를 갖고 왔습니다. 정면에는 그의 가족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일본 전통 와시 종이에 족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족보는 수백 년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재앙은 역사의 파멸입니다. 특히, 개인적인 가족의 역사 말입니다. 하지만 비단 저와 제 가족만의 일은 아니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이도가와씨는 주민들과 연락을 지속하며, 어딘가에 새로운 후타바 마을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곳은 우리를 보러 오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의 마을이 될 거예요.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