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은 로스해가 무엇인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작년에 국내 수산시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로스해(Ross Sea)를 아느냐고 물었던 제가 스크린에서 다시 말하고 있었습니다. 피터 영(Peter Young) 감독의 ‘로스해: 최후의 바다(The Last Ocean)’가 올해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그 중 한 장면이었죠.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로스해에 드리워진 검은 손길
로스해는 남극에 위치한 남유럽 크기만한 면적의 바다로, 해양 생태계의 마지막 보고(寶庫)입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지구상에서 가장 원시상태에 가까운 생태계가 보존된 그곳에는 먹이사슬의 꽤 많은 최상위 포식 동물들, 다양한 어종과 저생동물(바다, 늪, 하천, 호수 따위의 밑바닥에서 사는 생물들로 말미잘, 불가사리, 가자미, 해삼 따위가 있다)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아델리 펭귄은 1/3 이상이 로스해를 터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영국의 고래 및 돌고래 보존 협회 에리히 호이트(Erich Hoyt) 선임 연구원이 언급했듯이, 인간의 피해를 입어 파괴된 북해와 달리 로스해는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보존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점점 검은 손길이 뻗치고 있습니다. 현재 남극에 관광객들과 과학자들이 출입하고 있습니다. 사진 촬영만 허용하거나 연구활동에 제한사항이 있는 등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로스해에 한해서는 특별한 제약이 없어 어업이 마구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이들 어업 활동에 한국의 수산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 2011년 인성실업의 인성 7호가 남극해의 한 해역에서 이빨고기 조업 제한량의 약 4배를 남획하다 적발됐습니다.

무분별한 어업 활동이 빚은 결과는 남극 이빨고기(toothfish)의 감소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빨고기는 너무 낯선 이름일 것입니다. 그럼 칠레 농어(Chilean sea bass)나 메로는 어떤가요? 국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같은 물고기인데, 다소 어려운 실제 이름을 그럴듯한 이름으로 둔갑하여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극 이빨고기는 약 2m의 길이에 150kg정도 되는 큰 물고기로, 주로 영하의 기온에 서식합니다. 영화에서 클리브 이반스(Clive Evans) 교수는 10여 년 전에 연구목적으로 연간 500마리의 남극 이빨고기를 잡았지만, 2011년에는 겨우 8마리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남극 이빨고기는 남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남극 이빨고기는 남극에 사는 포유동물의 주요 먹잇감이기 때문에, 남획은 결국 남극 생태계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합니다.   

로스해와 함께 사는 길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짐 반스(Jim Barnes) 남극보호연합의 대표는 택시 운전자에게 로스해의 현실에 대해 설명하며 그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남극의 펭귄, 고래 등을 보호해야죠.”

로스해에 해양보존구역(Marine Reserves)을 지정하면 우리는 원시 상태의 로스해 그리고 그 안의 생태계와 보다 오래도록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극해양생물자원보전위원회(Commission for the Conservation of Antarctic Marine Living Resources, CCAMLR)는 로스해의 해양생물자원을 관할하는 국제기구로, 25개 회원국의 대표들이 매해 모여 논의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회의는 실망적인 결과만 안겼습니다. 로스해에서 어업 활동을 중단하고 남극 주변에 해양보존구역을 설정하자는 제안에 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 등 몇몇 국가가 반대해서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회의 자리에서 한국은 침묵으로 일관해 이를 방관한 책임이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책임감 있는 일원이라면 한국 정부는 오는 7월에 있을 CCAMLR 회원국 논의에서도 동일한 태도를 반복해 보여줘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