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새끼손가락만한 크릴은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인 대왕고래의 주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고래 먹이’라고만 칭하기엔, 크릴이 우리 바다와 생태계에서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크릴을 먹는 대왕고래-Todd Chandler, Oregon State University/YouTube>

크릴은 아주 작은 새우처럼 생긴 갑각류입니다. 거대한 무리를 지어 서식하고, 자기보다 큰 동물들에게 잡아먹히는 게 일상입니다. 크릴을 주식으로 하는 대왕고래의 경우, 한 입에 수백만 마리의 크릴을 먹어치우기도 하죠.

남극 생명의 근원, 크릴

크릴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지만, 특히 남극해에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남극의 해양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크릴에 의존하기 때문이죠. 대왕고래뿐만 아니라 혹등고래, 참고래, 밍크고래도 매년 남극으로 헤엄쳐와 굶주린 배를 채웁니다. 남극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아델리펭귄, 젠투펭귄 역시 크릴을 먹죠. (녀석들의 똥이 분홍색인 걸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답니다.) 이외에 작은 물고기들과 크릴을 먹기 위해 치아 구조가 진화한 남극바다표범도 모두 이 자그마한 갑각류를 만찬으로 즐깁니다.

이렇듯 사랑받는 남극 크릴은 여러 종류의 크릴 중에서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합니다. 최대 6cm까지 자라는 남극 크릴은 6~7년 이라는 긴 수명을 갖고 있기도 하죠.

크릴은 남극해 다양한 생명의 역할합니다. 크릴을 직접 소비하지 않는 다른 동물도 결국 크릴을 잡아 먹은 다른 종을 통해 먹이사슬의 일부분을 이룹니다. 이빨고기도, 레오파드바다표범도, 알바트로스도, 범고래도 결국은 모두 크릴 없인 살아갈 수 없습니다.

크릴

이 자그마한 생물의 어깨엔 이만큼 막대한 생태학적 책임이 지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수가 많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현존하는 남극 크릴은 수조 마리로 추정됩니다. 종 전체의 무게를 따진다면 지구 상에서 가장 묵직한 생물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 이들의 수가 해마다 요동치고 있습니다.

크릴 개체수가 요동친다?

크릴은 먹이와 피신처를 찾아 빙하의 가장자리에 살아갑니다. 해빙에 의존해 사는 크릴의 생태를 볼 때, 기후변화가 크릴 수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해빙이 녹거나 갈라지면 크릴은 집을 잃게 되죠. 사실 우리는 추정만 할 뿐, 실제로 크릴이 몇 마리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수가 어떻게 바뀔 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확실한 건 크릴을 위협하는 존재가 기후변화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릴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어선들은 남극에서의 활동을 점점 더 확장하려 하고, 수산업계는 각국 정부를 상대로 열띤 로비를 펴고 있습니다. 해양보호구역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것은 굶주린 펭귄에게도, 먹이를 찾아 수천 마일을 헤엄쳐 온 고래에게도 매우 불행한 소식일 겁니다.

갈라진 남극 해빙<갈라진 남극 해빙-출처:© NASA / Jim Yungel>

남극 바다에는 크릴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크릴에게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크릴은 단순한 고래 먹이가 아닙니다. 다양한 생명의 근원이자 시작점이죠.

그린피스에서는 아름다운 남극을 보호하기 위해 ‘남극 해양보호구역’ 지정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내년 열릴 남극해양위원회 연례 회의에서 이 안이 통과된다면, 남극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보호구역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펭귄과 고래, 그리고 크릴을 위해 그린피스와 함께 해주세요.

Protect the Antarctic

글: 윌리 맥켄지(Willie Mackenzie), 영국사무소 프로그램 어드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