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수호대] 성열훈씨의 고래 탐사 일지

Feature Story - 2012-09-14
2012 바다수호대투어의 특별한 프로그램, 바다 탐사 캠프! 동해바다의 고래를 찾아 2박 3일 동안의 고래 탐사 과정에 함께 한 그린피스 서포터들! 이들이 생생한 에스페란자호 체험기와 탐사 과정의 희열을 전해드립니다. 캠프 참가자 중 유일한 청일점 성열훈 씨가 기록한 일지를 엿볼까요?

2012년 09월 10일 

에스페란자호에서의 첫 밤이자 해군 복무 이후 20년만에 배에서 맞는 첫 밤이다. 오늘 하루는 정말 뭐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얼떨떨하다.

선정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오늘 오후 에스페란자호에 승선할 때까지 설렘과 기대감으로 입에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 특히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 몇 일을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건 좀 신경쓰였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오후 2시 30분, 잘 모르는 곳이라 서두르다보니 오히려 1시간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마침 나와 거의 동시에 도착한 고래탐사 투어 참가자 한 분과 같이 에스페란자호 오픈보트 행사 코스를 한 바퀴 돌면서 이런 저런 그린피스활동에 대한 설명 및, 고래포경문제, 참치혼획문제, 남극에서의 남획문제 등에 대해서 설명도 듣고 팔찌도 만들었다.

시간이 되어 라운지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한 명 두 명 투어 참가자들이 들어왔다. 투어에 참가하는 일반인 참가자는 나와 여자 세 분이고 기자가 세 분, 그린피스 서울지부에서 세 분이다. 여기에 투어 참가자 선정에서 탈락했지만 에스페란자호를 타고 고래탐사에 나서겠다는 열정으로 계속 두드린 끝에 결국 주방에서 일을 돕는다는 조건으로 함께 배를 타게 된 승용씨까지 포함해서 한국인은 모두 11명이다. 그리고 그린피스 선원 18명 이외에 외국인으로 탐사투어에 참여한 과학자 두 분, 미디어팀 두 분을 포함하면 이번 투어에 함께 할 인원은 총 33명이다. 33이라... 징조가 좋다. 동양에서 3은 길한 숫자이고 또한 33인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그 33인과 같지않은가! 뭔가 바다에서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다. (결국은 3일째에 고래를 떼로 보게 되는 행운의 조짐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지정받은 내 방 번호는 330호다. 정말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  아무튼 그랬다. 나와 이틀 밤을 같이 쓰게 된 선원은 엔지니어 폴(Paul)이다.

오후 6시, 배에서는 식사시간을 놓치면 그걸로 끝이다. 누가 따로 차려주지도 않고 밖에 나가서 외식할 수도 없다. 12시부터 13시의 점심시간, 18시부터 19시의 저녁시간은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시간인 것이다. 아침은 따로 준비하진 않고 늘 비치되어 있는 빵과 잼, 버터, 우유, 시리얼 등으로 08시 전 까지만 해결하면 된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해외여행을 가서도 잘 실감을 못하다가 그 나라 음식맛을 보면서 내가 지금 외국에 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경우처럼 에스페란자호에서의 첫 저녁식사가 외국에서 느끼는 그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요리사가 인도분이라서 그런지 강한 향신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국적인 음식이 입맛을 돋구었고... 또한 맛있었다. 어떻게 요리사 한 분이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만들었을까하고 놀랄 정도로 종류도 다양했다. 기대 이상이었고 또한 무료로 승선하고 미안했던 마음을 두 배로 미안하게 만들었다. 훌륭했다.

오후 8시,  5시 이후에는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물론 음료수는 24시간 가능하다. 각자가 자기 이름이 쓰여진 장부(?)에 기록하고 냉장고에서 가져가고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맥주값이 싸다. 그것도 너~무 싸다. 싼미구엘, 하이네켄 이렇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한 캔에 0.75유로. 역시 사람들이 면세점을 찾는 이유가 있나보다. 맥주는 참가자들이 개인적으로 사먹지만 음료는 무료 제공이란다. 먹여주고 태워주고 재워주고 구경시켜주고... 그린피스를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 하하하!!!  첫날이라고 한정희 캠페이너가 쏜 맥주를 한 캔씩 마시면서 그린피스에 대한 소개, 내일 일정, 선 내의 안전수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린피스 활동 영상을 보다보니 어느덧 밤 11시가 가까와 오고 있다. 내일의 항해를 위해 우리 모두 침실로... 

 

2012년 09월 11일

00시가 조금 못되는 시점... 걱정하던 순간이 닥쳤다. 말이 좋아 룸메이트지 따지고보면 방 주인인 폴이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그때 난 막 씻고 침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말쑥한 외모의 전형적인 서양 백인 남자다. 순간 그는 "Hi! Nice to meet you. I'm Paul." 난 순간 멈칫하다 "I'm ...... Seeeooong!"  그리고 후다닥 침상에서 올라가면서... "Good night!". 폴도 "Good night!"  그리고 커튼 쫙!  순간 드는 생각, '영어공부 좀 할 걸... '. 남의 방을 쓰면서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얼마나 무례하다고 생각할까.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나저러나 하루의 피곤함과 적당히 흔들어주는 파도의 덕택으로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혹시 코 골지않을까? 에이 모르겠다.

07시, 눈을 떴다. 암흑이다. 폴이 현창을 닫아서 한 가닥의 빛도 새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밥도 먹고 청소도 해야한다. 부시시한 얼굴로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 내게 배정된 청소구역인 샤워실로 향했다. 여기 에스페란자호에는 주인과 손님이 따로 없다. 승천한 후에는 모두가 주인으로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 청소도 마찬가지고 누구도 예외는 없다. 좋은 문화다. 고래탐사 이외에도 여러가지 좋은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감사하다.

09시, 출항이다. 그런데 조용하다. 해군 복무시 입출항은 상당히 요란했다. 특히 출항할때는 승조원들이 갑판에 도열한다든지 하는 의식이 수반되는 큰 일이었는데 여기서는 호줄을 정리하는 선원 몇명만이 갑판에 모습을 보일뿐 경적 소리 하나 없다. 참 '자연'스럽다.

10시 30분, 출항 후 미리 지정된 각자 위치에서(벗어난다고 누가 뭐라진 않지만) 혹시 고래가 나타나지 않을까하고 바다를 눈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다. 바람이 좀 세다. 파도도 좀 높다. 20년 만에 배를 타서 그런지 약간 머리가 어지럽다. 해군출신이라는 객기로 멀미약도 안먹었는데...  먹을걸 그랬나???  아냐, 이정도는 버틸 수 있어!!! 나아지겠지... 미리 알려준 대로 10시 30분이 되니 배 전체에 화재경보 알람이 울렸고 약속한 장소인 헬리콥터 격납고로 당직자를 제외한 모든 승조원들이 모였다. 삼등항해사가 선원들 출석을 불렀고, 쉽코디네이터 김가림씨가 그 외 사람들 출석을 불렀다. 오늘 훈련의 이유는 새로 승선한 사람들을 위한 안전교육이다. 특히 배가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 체온유지를 위한 보호복과 구명자켓을 입는 등의 실습은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14시, 잃어버린 30분... 점심 식사 후 상갑판 함교 우측에서 쌍안경과 맨눈으로 번갈아가며 망망대해에서 고래를 관찰하다보니... 식곤증과 따가운 햇볕 덕에 엄청난 무게의 졸음이 눈꺼풀 위에 내려 짓누르고... 견디다 견디다 못해 바로 14시부터 14시 30분까지 라운지 소파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단잠을 자고 있는데 주방보조로 봉사하고 있는 김승용씨가 나를 깨우며 물어보는 한마디 , "돌고래 봤어요?" "난 돌고래 찍었는데..." "What?" "Gorae~~?" 정신이 번쩍 들어 나가봤는데... 이미 고래는 안보이고 배가 선회해서 고래를 축적하는 중이란다. 부리나케 상갑판에 올라가서 쌍안경으로 고래를  찾아봐도 고래는 보이지않고 주변에서 돌고래 목격담만 들릴뿐이다. 아쉬움 속에 꼼짝도 않고 상갑판에서 고래를 탐색하느라 애꿎은 얼굴만 시커멓게 태우고 말았다.

20시, 그린피스의 주 활동 중 하나가 직접적 액션인데 메시지 전달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배너를 활용한다고 한다. 미리 인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즉석에서 활동가들이 베너를 손으로 직접 자르고, 칠해서 만든다고 한다. 이번 고래탐사 활동 중 하나가 참가자들이 직접 그런 배너를 만들어보는 건데 식사 후 20시에 헬기 격납고에서 두 개 조로 나누어서 만들었다. 30분에서 1시간 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순발력으로 뚝딱 만들어냈다. 이번 작업에는 기자분들도 함께 참여했는데 취재라는 업무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정말 즐거워했다. 배너를 직접 만들면서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는 즐거움이 있었고, 또 메시지를 찾고 만드는 과정에서 고래포경문제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어서 더 의미 있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22시, 오늘은 공식 일정 이후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해가 지고 난 후 배는 더 이상 항해를 하지않고 닻을 내렸다. 항해중이었으면 밤에 선실 밖으로 나오는 건 정말 위험한데 다행히 배가 고정되어 있고 또 그린피스 측에서 배려해줘서 탐사대 전원이 비행갑판에 누워 우주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하늘에는 말 그대로 별천지가 점점드러나는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황홀한데... 밤하늘은 자꾸 우리에게 별들을 떨어뜨렸다. 여기저기서 와~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내일 고래를, 이왕이면 밍크고래를 보게 해달라는 소원을 함께 빌었다.

 

2012년 09월 12일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오늘은 배를 내려야 하는 슬픈 날이다. 그런데 그 슬픔을 어느 정도는 상쇄시키는 좋은 일들이 오전 중에 몰아서 발생한다. 

07시, 오늘 아침에도 역시 폴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2층 침대에서 내려와서 간단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 부시시한 몰골로 식당에 들어갔다. 오늘은 아침부터 과식을 했다. 내일부터는 못먹는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토스트도 빵 세개 사이에 각기 다른 잼을 듬뿍 바르고 다른 사람이 먹고 있는 시리얼이 먹음직스럽게 보여 과도하게 많은 시리얼을 담아서 그 위에 우유를 듬뿍 부었다. 물론 과일도 먹었다. 일 분도 안돼서 후회했지만... 최선을 다해 먹었다. 그런데 두 시간 후에 이렇게 먹어둔게 도움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은 모든게 잘 풀리는 날인것 같다.

09시, 청소를 마치고 라운지에서 오늘 하선하는 사람들에게 일정을 설명해주면서 한정희캠페이너가 놀라운 소식을 전해준다면서 싱글벙글한다. 보트 두 대에 나눠타고 직접 액션 체험을 한다고 한다. 에스페란자호도 즐거운 경험인데... 보트까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다!! 들뜬 마음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과학자 중 한 분인 켈리(Kelly)가 라운지로 들어오더니... 돌고래를 발견했다고 했다. 갑자가 두 가지 행운이 겹친 것이다. 바로 보트를 타고 돌고래 때를 추적하게 된 것이다.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한것이 틀림없나보다. 아니, 어제 별똥별에 소원을 빈 것이 응답 받은건가? 모두들 갑자기 분주해졌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보트 두 대에 나눠 타고 돌고래 추적이 시작됐다. 우리 보트는 촬영이, 저쪽 보트는 탐사가 주 목적이다. 엄청난 속도로 달린지 몇 분 안되서 돌고래 때를 발견했다. 나중에 켈리가 말해준 바에 따르면 족히 400마리는 된다고 했다. 돌고래 떼에 근접해서 미디어 팀 두 분, 기자,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멋진 고래 이미지를 담으려고 미친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나 쉽지않다. 돌고래들이 얼마나 빠르고 장난꾸러긴지... 셔터를 누르려고 하면 사라지고... 여기서 나오겠지 예상하면 저기서 나오고... 그렇게 첫 조우는 별 소득없이 끝났다.

두번째는 돌고래의 이동경로를 예측해서 미리 길목을 지키고 시동을 끄고 대기했다. 엄청난 수의 돌고래들이 맘껏 달려오는 모습이 장관이다. 아 부럽다!!!!  그렇게 몇 차례 만났다 멀어졌다 하면서 카메라에 돌고래의 군무를, 장난스러움을, 자유를 담아갔다. 한편 다른 보트에서는 보트를 멈추고 바다속에 무슨 장치를 담그고 고래 소리를 듣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보트하고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 두 보트의 목적이 고래를 잡지 않고도 고래에 대해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임에는 다르지 않다. 짧은 시간이지만 돌고래 떼와 함께 바다를 달리다보니 정이 드는 것 같다. 능력만 되면 물 속에서 같이 놀고 싶다. 아직은 고래나 종에 대해서, 지구에 대해서 말하기는 두렵고 부끄럽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듯 친해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친한 친구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고래와 곰과 펭귄과 어떻게든 친해지는 게, 그것도 아주 어릴적부터 친해지는게 중요하다는 믿음은 이번 기회를 통해 더 굳건해지는 것 같다.

19시 30분, 서둘러 기념촬영을 마치고 우리를 울산항까지 내려 줄 보트에 내려 멀어져가는 에스페란자호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또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에스페란자호에서 보낸 시간이 2박 3일이 아니라 한 일 년은 된듯한 아쉬움이 너무 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스페란자호와의 이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고, 자연을 대하는, 생명을 대하는 내 마음이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다시 찾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피터팬이 있는 네버랜드에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에스페란자호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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