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워리어 쉽투어] 자원봉사자 문근영씨의 이야기

Feature Story - 2012-11-20
자원봉사자 문근영씨는 지난 9월, 레인보우 워리어호 쉽투어에 약 7주 동안 참가했습니다. 문근영씨가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함께 쉽투어 하며 느낀 점들을 이야기 합니다.

지난 8월 말,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근영씨, 인도양 갈 생각 있어요?” 저는 올해 2월부터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에서 자원봉사자로 시장 조사, 액션 준비, 배너 만들기 등의 일들을 돕고 있었는데, 해양 캠페인을 위한 인도양 쉽투어에 한국어 통역이 필요해 저에게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여유 없는 학교 생활에 지쳐 여행도 하고 쉴 겸 휴학을 고민하고 있던 저는 망설일 틈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네!”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고래를 보다!

지난 9월 23일, 저는 모잠비크의 마푸토로 가는 비행기에 탔습니다. 여행 2주 전, 저는 운이 나쁘게도 왼쪽 발 뼈에 금이 가는 작은 부상을 입었지만 설레는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홍콩과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가는 23시간의 긴 비행 끝에 항구에 정박해 있는 아름다운 초록색 배, 레인보우 워리어호((Rainbow Warrior)를 보자 무언가 가슴이 벅차 오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반구에 온 것도 처음, 아프리카에 온 것도 처음,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도 저에게는 처음이었습니다. 이번 쉽투어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 제 인생에 큰 획을 그을 경험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Good afternoon. Whales, everywhere. Whales, everywhere.”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그 순간 식당에 있던 모두가 포크를 놓고 갑판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갑판으로 나갔는데 저 멀리서 고래가 물을 뿜고 있었습니다. 고래는 이따금씩 물을 뿜으며 꼬리만을 보이고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고래가 나타날 때마다 “우~ 우~”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뱃머리에는 돌고래 세 마리가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항해를 반기듯 미끈한 피부를 뽐내며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드넓은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배, 시원한 바닷바람, 그리고 고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항해의 시작부터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상냥한 몰디브 해안경비대

레인보우 워리워호가 이번 캠페인의 중요한 목적지인 몰디브에 닿았습니다. 몰디브(Maldives)는 몰디브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외국 선박의 어업을 금지하고 대낚기만을 이용한 어업을 허용하는 나라로, 그린피스가 지지하는 지속 가능한 어업방식의 좋은 예가 되기에 몰디브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어업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레인보우 워리워호가 온 것입니다. 또한, 레인보우 워리어호와 몰디브 해안경비대는 몰디브 배타적 경제수역을 협력하여 5일간 감시하기 전에 친목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그린피스와 몰디브 해양경비대가 서로의 배에 방문했습니다. 몰디브 해안경비대의 배인 ‘후라비’에 방문했을 때, 저는 오픈보트를 하듯 선장을 따라 배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객실을 봐도 되냐는 누군가의 요청에 선장은 친절하게도 선원들이 머무는 배의 내부를 보여주었는데, 저는 노래방 기계와 플레이스테이션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경비대’의 배는 어쩐지 딱딱하고 불편할 것 같다는 고정관념을 충분히 깨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 돌아가는 보트를 띄울 수 없게 되자 배 안에서 비가 약해지길 기다렸는데, 경비대는 컵라면도 대접해주고 노래방 기계도 쓸 수 있게 해줬습니다. 우리는 도레미송을 부르며 몰디브 해안경비대 배에서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냐며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몰디브 해안경비대의 배에서 저는 대낚기로 잡은 참치로 만들어진 참치캔을 기념품으로 받았고, 몰디브 남자는 상냥하다는 인상도 함께 받았습니다.

 

저는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자입니다!

이번 쉽투어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는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배에 탔는데 한국 어선을 만나지 못해 결국 한국어를 한번도 못 써봤다는 것입니다. 쉽투어를 떠나기 전부터 “한국 배를 못 만나면 나는 어쩌지? 바다에서 버려지는 건 아니겠지?” 하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는데 바다에 버려지진 않았지만, 실제로 한국 배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선박의 대부분이 대만 어선이었고, 그 외에 일본, 스페인, 스리랑카 국적의 어선을 발견했지만 한국 배는 통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리셔스에 정박해 있을 때 수상한 한국 어선이 항구에 새로 들어왔습니다. 타지에서 한국 배를 만나는 감격의 순간, 인도네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선원들에게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인사까지 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연락을 해보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그 배에서는 대답이 없었고 결국 모리셔스를 떠날 때까지 연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쉽투어의 책임 캠페이너인 사리(Sari Tolvanen)는 저에게 “괜찮아, 오양(선박 이름)이랑 75를 한국어로 말해 봤잖아” 라며 되려 위로를 해줬습니다. 

 

쉽투어, 그 후…

밤에 불침번을 서는 때를 제외하고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어느새 한달 넘게 저의 집, 제 생활의 전부였던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여러 해 동안 배에서 일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이 꽤나 익숙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이 첫 항해였던 저는 배에서 만난 사람들과 헤어져 육지에 적응하는 것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쉽투어로 인해 저의 마음가짐이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레인보우 워리어호와 함께한 7주는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드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새하얀 돛, 고래와 돌고래의 멋진 점프,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수많은 별,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 배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제가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아름답고 감사한 경험들이 앞으로 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됩니다. 아직도 잘 때 침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색하고, 자고 싶은 만큼 늦잠을 잘 수 있는 것이 어색하고, 혼자서 밥을 먹는 것도 어색합니다. 아마도 저는 꽤 오랫동안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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