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와 함께, 불법 참치잡이 어선을 잡아라

Feature Story - 2012-11-26
선망어업에서 주로 사용되는 집어장치는 물고기를 대량으로 포획하기 위한 도구다. 집어장치는 작은 물고기들에겐 마치 쉴 수 있는 수초 같다.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들면, 이를 먹고 사는 더 큰 물고기들이 찾아오고, 마침내 먹이사슬의 상층에 있는 대형 어종까지 찾아드는데, 고기가 충분히 모였다 싶을 때 그물로 주위를 에워싸 건져올린다. 어선들이 노리는 것은 참치다.

집어장치 혼획량=11억 개 참치캔

선망어업(거대한 그물로 물고기떼를 둘러싸 포획하는 어업방식)에서 주로 사용되는 집어장치는 빠른 시간 안에 참치떼 등을 대량으로 포획하기 위한 도구다. 집어장치는 작은 물고기들에겐 마치 쉴 수 있는 수초 같다.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들면, 이를 먹고 사는 더 큰 물고기들이 찾아오고, 마침내 먹이사슬의 상층에 있는 대형 어종까지 찾아드는데, 고기가 충분히 모였다 싶을 때 그물로 주위를 에워싸 건져올린다. 어선들이 노리는 것은 참치(가다랑어)다. 하지만 그물에 걸리는 건 참치뿐만이 아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상어, 가오리, 고래, 바다거북 등이 함께 그물에 걸린다. 가다랑어와 함께 다니는 어린 눈다랑어나 황다랑어도 마찬가지다. 그린피스 자료를 보면, 어획량 10kg 가운데 2kg은 치어들이며 1kg은 다른 어종이다. 전 세계적으로 집어장치 사용으로 인한 혼획량은 연간 18만2500t으로 11억 개의 참치캔에 들어가는 양과 맞먹는다. 혼획된 어종은 대부분 죽은 채로 다시 바다에 버려진다. 지난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남방참다랑어, 대서양참다랑어, 눈다랑어, 황다랑어, 날개다랑어 등 참치 8종 가운데 5종을 멸종 위기 위급, 취약, 근접 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런 사정 탓에 팔라우 EEZ 및 인근 공해(‘공공의 바다’란 뜻으로 특정 국가의 영유권이나 배타권이 인정되지 않는 바다)상의 조업 활동을 관리하는 국제 기구인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는 7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3개월간은 공해상에서도 집어장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참치자원의 보존을 위해 한국·일본·미국 같은 주요 조업국들과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연방국 등 연안국으로 구성된 협의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1월24일까지 3주간 이 지역에서 한국, 대만, 필리핀 등 각국의 참치잡이 어선들의 조업 활동을 관찰 및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돌며 바다 수호 캠페인을 하고 있는 에스페란자호는 지난 9월 한국을 시작으로 대만, 홍콩을 거쳐 팔라우로 향했다. 기자는 지난 11월3일 팔라우 말라칼섬 항구에 입항한 에스페란자호에 오른 뒤 일주일간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태평양을 누볐다.

태평양 섬나라에 심각한 경제 타격

전 세계인들이 먹는 참치의 60%가량이 중서부 태평양 지역에서 잡힌다. 한국의 참치 어획량 95%가량을 공급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참치 조업국이다. 팔라우 해상이나 인근 공해에서 ‘바다의 귀족’ 참치를 잡으려는 싹쓸이 조업이 늘어 원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그린피스 자료를 보면, 국외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태평양 섬나라들은 해마다 약 1억3400만~4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11월2일 코로르에서 만난 존슨 토리비옹 팔라우 대통령은 호소했다. “불법 조업은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을 음식뿐만 아니라, 작은 섬 국가들에는 절박한 수익원을 빼앗는 일입니다.” 그날 팔라우 정부는 그린피스가 3주간 펼칠 조사 활동에 경찰과 어업감독관을 파견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공동 감시 협정에 서명했다.

그물에 문제 있어도 감독 못해

11월8일 오전, 구명조끼를 입고 다시 보트에 올랐다. 이틀 전 만났던 필리핀 어선에 승선해 조업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 배는 자동추적장치·국제어업허가서·어업감독관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유난히 거친 파도에 보트가 공중부양했다 하강하기를 반복했다. 배는 그린피스 보트 2개를 합쳐놓은 크기였다. 작고 지저분한 배 위에는 2개의 거대한 집어장치와 그물, 밧줄 뭉텅이가 빼곡했다. 갑판 위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린피스 활동가들을 구경하러 나온 선원들이 줄잡아 10명은 넘어 보였다.

‘왜 여기서 조업을 하느냐’는 물음에 ‘필리핀 근해에는 참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팔라우 어업감독관 리미르크 카토상은 이들이 사용하는 그물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물코가 너무 촘촘하다는 것이었다. “저렇게 촘촘한 그물을 사용하면 허가받은 참치뿐 아니라 다른 작은 어종들이 다 걸려들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공해는 팔라우 정부의 감독 권한이 미치지 않는다. 필리핀 어선으로부터 승선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은 뒤에야 조사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일부 어선에 예외적으로 공해를 개방하는 규정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구로 돌아와 잡은 물고기를 하역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않고, 해상에서 몰래 다른 배로 물고기를 옮겨 실은 뒤 제한 어획량을 초과하지 않은 것처럼 속이는 사례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업체, 지속 가능성 평가 낮아

이 해역 공해상의 조업 활동을 관리하는 건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다. 11월24일 정찰 활동을 마치는 에스페란자호는 조사 결과를 갖고 이번 캠페인의 최종 목적지인 필리핀으로 향한다. 12월2∼6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WCPF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린피스는 총회에서 △선망어선 수 및 어획량 감축 △집어장치 사용 전면 금지 △공해에서 전면적 어업 금지 △독립적인 어업감독관 승선 등 규제 시스템 강화를 위원회 쪽에 촉구할 예정이다. 그린피스의 해양 캠페이너 추위언핑은 “한국 정부는 집어장치 사용 금지엔 찬성하고 있지만, 공해 폐쇄나 선망어선 어획 쿼터 감축 등은 지지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가 에스페란자호를 떠난 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명백한 불법 조업 현장을 포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해상에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어선 3척이 WCPFC 소속이 아닌 캄보디아 국적의 운반선에 불법적으로 가다랑어와 황다랑어를 옮겨 싣는 게 발견됐다. 필리핀·인도네시아 어선은 WCPFC 규정을 어겼고, 캄보디아 운반선은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은 불법 조업이다. 사실상의 해적 행위를 한 셈이다.

참치 싹쓸이 조업으로 해양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우려가 커지자, 최근 유럽 등에선 윤리적으로 참치를 소비하자는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무분별한 대량 포획 방식으로 잡지 않는 ‘지속 가능한 참치’(Sustainable Tuna)를 먹자는 것이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한정희(34) 해양 캠페이너는 “영국 등 서구에서는 참치 통조림 업체들이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참치만 원료로 사용하겠다는 친환경 정책을 세워 공개 선언을 하는 등 지속 가능한 참치 공급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거대 식료품 공급업체 세이프웨이도 올해 초 집어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잡은 참치를 통조림 원료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글: 박현정 한겨레21 기자 

 


2012년 11월 26일자 한겨레21 제937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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