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이너의 목소리] 에너지 국책사업 절차의 비민주성 드러낸 밀양 송전탑 사태

Feature Story - 2013-05-25
밀양 지역 주민들은 알몸시위를 불사하며 필사적으로 공사를 막으려 합니다. 과연 무엇이 평균연령 75세의 고령 노인들을 저항하게 했을까요. 이번 밀양 사태는 국책사업을 내세워 주민의견수렴 등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해온 정부의 관행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입니다.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포크레인을 저지하는 할머니. 사진=환경운동연합

밀양 송전탑 사태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부터 재개된 공사 현장에서 한국전력공사(한전)과 주민이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전은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90.5km) 구간에 필요한 756kV 송전탑 161기 중 109기에 대한 공사를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밀양시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단장면 4개 면을 지나게 될 나머지 52기는 주민들의 반대로 아직 세우지 못했습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알몸시위를 불사하며 필사적으로 공사를 막으려 합니다. 과연 무엇이 평균연령 75세의 고령 노인들을 저항하게 했을까요. 이번 밀양 사태는 국책사업을 내세워 주민의견수렴 등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해온 정부의 관행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입니다.

 

평생 농사짓던 땅을 빼앗긴다는 소식

사실 이곳 주민과 한전 간의 갈등은 무려 8년이나 지속돼왔습니다. 8년 전 어느 날, 주민들은 평생 농사짓고 살았던 땅을 정부에 ‘강제 수용’ 당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 이곳에 송전탑이 필요한지, 충분한 사전 설명이나 설득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의견 수렴과정도 형편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이 문제는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월 당시 74세였던 故 이치우 할아버지가 분신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회적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후 한전은 지난 9월 공사를 중단했다가 8개월 만에 다시 재개에 나섰습니다.

 

주민 의견보다 우선하는 그들의 ‘효율성’

현재 한전은 주민들과의 충분한 합의 없이 밀실에서 급히 진행한 절차에 대한 반성은 커녕, 주민들을 님비(NIMBY·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뜻의 ‘Not In My BackYard’의 줄임말로, 지역 이기주의를 뜻함)의 주체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원(電源)개발촉진법’에 기인합니다. 이 법은 전원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법에 따르면 사업자는 발전소나 발전, 송전 등 전기시설 전반에 대한 설립계획서 및 허가서를 관계행정기관(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효율적인 정책 집행을 위해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무성의하게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홍보가 거의 없다 보니 사업자는 주민들의 커다란 반대 없이 쉽게 행정기관의 승인을 받습니다.

주민들은 보통 국책사업의 시행을 공사가 막 시작할 즈음 알게 됩니다. 밀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정부는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주민은 물론, 국민들까지 기만했습니다. 신고리 3호기의 생산 전력이 총 전력생산량의 1.7%밖에 되지 않는데도, 송전탑 건설 지연으로 전력수급난이 예상된다는 협박을 하고 나선 것 등이 그 예입니다.

 

사업자·정부 반성 없다면 제 2의 밀양은 또 생깁니다

에너지 국책사업을 시행하면서 정부가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비단 밀양만이 아닙니다. 2000년대 초 전북 부안에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유치하려던 것이나 현재 강원 삼척시의 신규원전 건설문제도 비슷한 맥락을 띱니다.

밀양 사태의 경우, 주민의견수렴 절차에 소홀했던 한전에 당연히 큰 책임이 있습니다. 또 그 부당함을 꼬집고 사업승인을 재검토했어야 할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전원촉진법이 밝히듯 사업의 목적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면 국민의 의견을 계획단계부터 수렴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24일 정부와 주민은 뒤늦게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협의체 운영과 별도로 공사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연 주민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진정성이 결여된 모습입니다. 국민과의 소통은 정책의 일방적인 홍보와 불도저식 강행이 아닙니다.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다면 제 2, 제 3의 밀양이 계속해서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글: 이현숙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 사진: 환경운동연합 트위터 @kf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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