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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는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글: 장다울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 전역이 악몽에 휩싸인 지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달 말 일부 오염지역의 피난지시를 해제하며 ‘후쿠시마가 사고로부터 회복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핵발전소 사고 후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초대형 원전 단지에 다시 2기의 신규 원전을 지으려는 대한민국은 후쿠시마의 비극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긴날의 꿈이었지 ~♪♬

온 국민의 애창곡이었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한 소절,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그리운 건 그 옛날 이별의 공간이었던 부산항과 아름다운 동백섬만이 아니겠지요? 가족, 친구들과 여름 휴가차 찾았던 해운대 해변, 태종대, 광안리와 자갈치 시장의 정겨운 풍경… 아마 부산은 꼭 그곳에서 자라거나 살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추억으로 자리하는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30715 SOUTH KOREA KORI : The Greenpeace flagship Rainbow Warrior is seen in front of the Kori 1 nuclear reactor as the group calls for nuclear energy phase out starting with the Kori 1 reactor, the oldest nuclear facility in the country. The Rainbow Warrior is on its ‘Nuclear Emergency Tour’ of Korea with the aim of demanding for proper nuclear emergency plans. Before the protest, the Rainbow Warrior blew its siren towards the power plant to alert the public of the danger it poses. Every 15th of the month, Korea holds an emergency drill in preparation for a military attack. There is however no proper drill in case a nuclear meltdown occurs. ALEX HOFFORD / GREENPEACE<지난 2013년 한국을 찾은 그린피스의 레인보우워리어 호가 고리원전 인근에서 원전 위험을 알리는 메시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런 부산이 회복 불가능한 재앙으로 폐허가 된다면… 상상이 가시나요? 부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이었던 현대자동차 공장과 석유화학단지가 위치한 울산, 그리고 인접한 양산까지 말입니다. 이 세 개 도시의 380여만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하고, 목이 메게 그리워도 자신의 건강을 담보로 하지 않는 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영화 속 상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현실 속 위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6주년을 맞이하며..

2017년 3월 11일, 바로 내일은 일본 전역을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6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해 11월 저는 그린피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팀의 일원으로 후쿠시마를 방문해 현지 상황을 조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 끝나지 않은 후쿠시마의 비극과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에 대해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후쿠시마는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수만 명의 주민들이 지금도 피난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이미 133조 원에 이르는 사고 피해 비용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이 사고 비용의 대부분은 일본 시민들이 내는 세금과 전기요금에서 충당되고 있고, 사고 인근 지역에는 여전히 두려움과 절망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후쿠시마 현을 방문한 그린피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팀은 이타테(Iitate) 마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래 지도에서 보시듯 이타테는 사고가 난 핵발전소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28~4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거리상으론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이곳은 사고 후 바람 방향이 내륙 쪽으로 바뀌었을 때 방사능 구름이 지나가면서 고농도로 피폭이 된 지역입니다. 그린피스는 사고 직후 이타테 주민들을 즉각 대피시켜야 한다고 경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사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피난지시를 내리면서 이곳 사람들이 오히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보다 더 많은 양의 방사선에 피폭되었습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 지점에서 28-47km 떨어진 이타테 마을<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 지점에서 28-47km 떨어진 이타테 마을>

일본 정부는 지난 5년간 위 지도상에 노란색으로 표시된 ‘거주 제한 구역’과 녹색으로 표시된 ‘피난지시 해제 준비 구역’에서 방사성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除染) 작업을 시행해 왔습니다. 특별한 작업은 아닙니다. 민가와 도로 20m 반경 지역 지표면의 오염된 흙을 약 5센티미터가량 걷어내 밀폐된 플라스틱 자루에 담는 방식입니다.

후쿠시마 현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산림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이 제염 작업을 진행하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갔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그린피스 전문가팀이 이 지역의 방사성 오염 실태를 측정한 결과 제염 후에도 대부분 지점에서 일본 정부가 설정한 제염 목표인 시간당 0.23μSv(마이크로시버트)를 상회하는 방사선 수치가 측정되었습니다.

효과는 미미했지만, 제염작업으로 발생한 핵폐기물의 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아래 사진과 같이 수백 개의 핵폐기물 자루가 주택과 농지 인근 노지에 그대로 쌓여 있는 곳이 후쿠시마 현 내에 이미 14만6천 개(2016년 10월 기준)가 넘게 있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검은 자루만 7백만 개 이상입니다. 보낼 곳도 없이 산처럼 쌓여있는 핵폐기물 앞에 서면 그 누구라도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산처럼 쌓여있는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후쿠시마에 14만 6천여 곳이 넘는다>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일본 정부의 거짓말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이타테 마을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피난지시를 이달 말로 해제할 계획입니다. 피난지시가 해제되면 피난민들이 매달 받고 있던 주거 지원금도 1년 뒤 끊기게 됩니다. 결국,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없는 피난민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문제입니다.

지난 11월 그린피스 조사 결과, 이타테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향후 70년 동안 받게 될 공간 방사선의 누적 피폭량이 39~183mSv(밀리시버트)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연 방사선, 사고 직후 피폭량, 귀환 후 내부 피폭량은 제외한 채 공간 방사선 피폭량만을 고려한 수치입니다) 이는 매주 흉부 X-레이를 찍으며 사는 것과 비슷한 수치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연 방사선 외에 추가 피폭을 연간 최대 1mSv 이하로 제한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타테 마을의 고농도 오염 지점(hot spot)의 수치(11.7μSv/h)를 보여주는 사진>

주민들이 돌아와서 살기에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닙니다.

돌아가는 것은 결국 주민 개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고,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는 주거 지원을 지속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의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결정은 피난민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현지 조사 중 이타테 마을에서 만난 피난민 미우라 쿠니히로 씨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타테 마을로부터도, 후쿠시마 현으로부터도,
일본 정부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려졌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피난민 미우라 쿠니히로 씨, 곧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미우라 씨는 사고 전, 이타테에서 3대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피난지시가 해제되면 본인은 돌아가 살 생각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방사능이 걱정되지만 고향이자 인생의 모든 추억이 담긴 곳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살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자식들과 손주들은 함께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씀하시는 미우라 씨에게 조심스럽게 어떤 기분이신지 여쭤보았습니다. “양팔이 모두 잘린 기분입니다”라고 답했던 미우라 씨의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후쿠시마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후쿠시마의 비극은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은 국가 면적 대비 핵발전 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고, 현재 가동 중인 원전 중에서 규모로 세계 1위, 3위, 4위, 7위의 초대형 핵발전소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작년 9월 12일 핵발전소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과 이후 최근까지도 이어진 590여 차례가 넘는 여진은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습니다.

실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고리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인근 30km 내 부산, 울산, 양산 382만 여 명의 시민들이 위험에 처할 겁니다. 단지 부산, 울산, 양산 사람들에게만 닥치는 위험은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원자력 정책 관련 최고 권위자인 본 히펠(Frank N. von Hippel) 프린스턴대 교수와 재미 핵물리학자인 강정민 박사는 고리 3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 국토의 50%가 넘는 5만4천㎢가 피해를 입고,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2,430만 명이 피난을 가야 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피해비용 또한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후쿠시마 사고와 유사한 사고 상황과 피해를 가정하면, 고리 핵발전소 사고 후 6년이 되는 시점까지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비용은 대략 1,000조 원을 넘을 수도 있습니다.(* 영상으로 보기: 영화 <판도라>보다 더 참혹할 수 있는 현실! )

위험한 핵발전으로부터 단계적으로 벗어나는 에너지 전환은 이미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사고 이후에는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독일에 이어, 최근 가까운 나라 대만도 2025년까지 에너지 전환 정책을 통해 단계적 탈핵을 추진하기로 법에 명시했습니다. 선진국 중 매우 드물게 현재 핵발전 규모의 대폭 증대를 계획하고 있는 한국도 이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해야 합니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560인 국민소송단 부산 모임에서>

에너지 전환의 시작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입니다. 바로,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이며, 주변 30km 인구 또한 세계 최다 수준인 382만 명에 달하는 고리 핵발전소에 신고리 5, 6호기를 추가로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부터 취소시켜야 합니다!

그린피스와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560인 국민소송단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의 위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해 9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힘을 모아 함께 요구한다면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은 이룰 수 있는 목표입니다.

아름다운 동백섬과 추억을 간직한 부산항이 우리 곁에 지금처럼 머물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단계적 탈핵을 위한 첫걸음에, 모두의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우리의 싸움에 -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 취소 서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