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산불은 ‘기후재난’, 대응은 각개전투” 땜질 처방 넘어 韓 기후재난 거버넌스 전면 개편 필요해
- 그린피스-서울대, 韓·美 산불 거버넌스 비교 연구 결과 발표
- 기후위기로 대형화·장기화되는 산불, 사후 복구 중심 정부 대응의 한계 지적
- 韓 건조주의보 일수 1970년대 대비 2.1배 급증… 산불, 인위적 실화 아닌 기후재난으로 봐야
- 전문가들, “분산된 지휘 체계, 장기화된 피해로 인한 공동체 붕괴 등 총체적 문제... 마을 중심의 회복 시스템 시급”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8월 27일, '기후위기와 대형산불: 기후재난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3월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의 피해가 장기화되고 있으나, 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는 여전히 사후·단기 복구 중심에 머물러 있어 통합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모였다.
이번 토론회는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 중 ‘재난안전관리 체계 확립’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공론화한 자리로, 그린피스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현행 산불 대응 체계의 근본적 대책 마련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린피스가 캘리포니아와 한국 산불 추세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건조주의보 일수는 1970년대에 비해 2.1배 증가했으며, 미국항공우주국(NASA) MODIS 위성 자료상 활동 화점(火點) 수는 2000년대 초반 대비 최대 4배까지 늘어났다. 심혜영 그린피스 선임연구원은 “위성 자료는 한국의 산불이 발생 빈도뿐 아니라 강도와 위력 면에서도 강력해지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며, “실화가 발화 원인일 수는 있지만 이를 대형 재난으로 키우는 것은 기후위기로, 산불을 인위적 실화 문제로 보는 사회재난 프레임에서 벗어나 ‘기후재난’으로 인식하고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전국 건조주의보 일수 그래프(1973-2024)>
이어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한국과 미국 캘리포니아 기후재난 정책 비교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 재난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산불을 복합 재난으로 인식해 ‘예방-보호-완화-대응-복구’의 5단계 순환 체계를 통해 ‘완화’ 단계에서 재난의 장기적 영향력을 줄이고 회복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한다. 반면 한국은 산불을 사회재난으로 분류하며 ‘완화’와 장기적 ‘회복’의 개념이 없는 4단계 선형적 대응에 그쳐, 재난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의 산불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재난으로, 대응이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문다면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은 감당할 수 없다”며 근본적인 정책 변화에 대해 강조했다.
현장 대응 체계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미국은 주정부가 산불 대응의 1차 책임을 지고 연방정부가 필요시 지원하는 협력적 분권 구조를 갖추고 있어, 일원화된 지휘체계 하에서 효율적 대응이 가능하다"며 "반면 한국은 중앙정부 중심의 하향식 체계로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부문별 토론에서는 재난 현장 대응부터 공동체 회복 과정까지 전반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배재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현재 산불 규모에 따라 지휘권이 지자체장과 산림청으로 나뉘는 시스템은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며, “지휘 체계를 일원화한 산불대응체계가 필요하며, 특히 재난대응역량과 전문성을 가진 기관들에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정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해외 재난 및 복구 사례를 소개하며, “재난 이후 빠른 원상 복구에만 그치지 않고, 마을 공동체의 회복 과정 지원과 주민 중심의 지속가능한 마을 재건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선발화로 인한 산불 문제와 시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전력회사의 책임과 역할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신하림 강원일보 기자는 2019년 고성 산불 사례를 들며 “원인 제공자가 명확한 산불일수록 보상 기준 합의 여부, 정부의 구상권 청구 문제로 공동체 갈등이 더욱 심화됐다”며, “소송 전에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과 논의를 통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주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전력회사인 SDG&E(San Diego Gas & Electric) 사례를 소개하며 “산불 위험시 전력을 차단하는 ‘공공안전 전력 차단’ 제도를 도입해 사후적 책임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했다”며, “한전 또한 전력 공급의 안정성 뿐만 아니라 기후재난 시대에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에너지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토론에 참석한 정창성 행정안전부 자연재난대응 국장은 올해 3월 영남 지역 산불의 특징과 대응 사례를 중심으로,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 대응에서 행정안전부의 주요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또한 송남훈 한국전력 배전안전운영처 실장은 “절연케이블 보강, 지중화 및 즉시 차단 계통운전 등 다양한 대책을 시행해 전력설비로 인한 산불 예방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를 함께 주최한 위성곤 의원은 "올해 전국에서 발생한 동시다발적 산불은 우리의 삶과 안전이 기후위기 최전선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었다”며 “피해 최소화와 공동체 회복력 강화를 위해 예방과 완화, 회복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기후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위성곤 의원실, 김정호 의원실, 한병도 의원실, 이해식 의원실, 채현일 의원실, 이만희 의원실, 용혜인 의원실, 정춘생 의원실, 차규근 의원실과 함께 공동주최했다.
그린피스는 산불 정책 토론회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에 구체적인 기후재난 대응 정책 개선을 위한 후속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