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반지하 침수, 기후위기 속 가장 먼저 무너지는 삶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데 발밑이 축축해 이상하다 싶었어요. 갑자기 현관문 틈으로 물이 밀려 들어오더니, 화장실 바닥에서도 거센 물줄기가 솟구쳤죠.”
“너무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거리는 이미 온통 물바다였어요. 정말 무서웠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서울 응암3동의 반지하 주택에 사는 정연순(가명)님은 지난 8월의 기록적인 폭우를 떠올리며 울먹였습니다. 지역신문에 따르면 은평구는 8월 13일 낮 12시 5분 기준, 직전 1시간 동안 100.5m에 달하는 극한호우가 쏟아져 응암3동에서는 약 80가구가 침수되어 주민들이 긴급 대피를 했습니다.
기후재난 대응, 현장에서 함께하다
그린피스는 극한폭우로 피해가 컸던 지역을 찾아 긴급 복구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침수 피해가 있었기에, 긴급히 침수 가옥 지원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반지하에 들어서니 방과 발코니 곳곳에 여전히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침수 당시 집 밖에서는 맨홀이 역류하면서 도로로 넘친 물들이 집안으로도 들어왔고, 집안에서는 화장실과 싱크대에서 오수가 역류하면서 집 안과 밖에서 빗물이 들이닥쳤습니다. 안 밖에서 들이닥치는 빗물은 순식간에 집안에 들어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건 챙길 시간도 없이 몸하나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은 빠졌지만 젖은 벽지는 그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린피스 기후재난대응팀은 젖은 물건을 꺼내고 집안 곳곳에 남은 물을 퍼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집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방문하여 필요한 일들을 도왔습니다. 물이 찬 집안에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기제품은 말할 것도 없고 가구들도 물을 머금고 내려앉았습니다. 청소를 마친 뒤에도 역한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침수의 흔적들을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날 긴급 복구 활동엔 여러 단체가 함께 했습니다. 특히, 그린피스와 재난 대응 협력 단체인 원불교 봉공회는 긴급히 세탁차를 투입했습니다. 세탁차가 도착하자 세탁기를 돌릴 수 없던 이재민들은 얼룩진 이불과 옷가지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부피가 큰 이불은 봉사자들이 먼저 발로 애벌빨래를 해 세탁기에 넣었고, 작은 옷가지는 곧바로 세탁이 시작되었습니다. 침수로 전기 공급이 끊긴 상황에서 세탁차는 주민들에게 정말 절실한 도움이었습니다.

기후재난, 더 큰 고통을 안기는 취약계층
“내 나이가 여든인데, 몸도 아파서 정리할 엄두가 안 나요. 혼자 살면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눈도 잘 안 보이니….”
한 주민이 안내한 집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반지하라 불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바닥에는 아직 물이 고여있었습니다. 젖어 엉켜있는 가재도구들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막막해 보였습니다.

펌프가 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물을 빼내지 못했습니다. 작은 생활 도구부터 집 전체까지 모든 것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내 80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에요. 몸이 아파서 어떻게 정리할지 막막했는데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오니 너무 감사해요”
피해 주민은 봉사자들을 보자마자 감사하다는 말부터 꺼냈습니다.
2022년 8월,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서 생활하던 세 모녀가 침수된 집에 갇혀 목숨을 잃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극한호우로 거리엔 물이 허벅지 높이까지 차오르고, 빗물이 현관문을 막아 대피하지 못했던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비극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재난이었습니다.
반지하 주택은 주로 저소득층·노인·장애인·이주민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후위기가 점점 심화되면서 이들에게 반복적으로 더 큰 위협이 닥쳐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고위급 회의(정상회의)에서 “우리는 ‘기후 지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가속 페달까지 밟고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기후재난은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것입니다.
반복되고 예고된 재난
응암3동 반지하 주택침수는 올해만이 아닙니다. 2018년에도 호우로 인해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었는데 그 당시 채 복구가 되기 전에 10여세대가 다시 침수되었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 상황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침수 사고가 발생한 2022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반지하 주택 약 22만호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지하층 주거용 건축 허가 금지, 반지하주택 매입 후 리모델링사업, 침수우려지역 우선 정비사업 등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침수 대책은 여전히 실효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3년 11월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를 보면 서울시에서 지하 거주 가구에 대한 단기대책으로 물막이판, 개폐식 방범창 등 침수 방지시설 설치 지원사업을 시행하였지만 전반적인 실적이 부족했고 정작 중요한 하수구 역류방지를 위한 역류방지변 설치는 설치비율13.4%로 낮았습니다.
기후재난 대응 위한 근본적인 대책 시급
이번 폭우 피해 현장은 기후위기의 불평등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제도와 정책은 취약계층 보호는 물론, 기후위기 자체를 막기 위한 근본적 대응에서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특히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기후취약계층을 법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불평등이 커진다는 점은 많은 연구에서 지적되고 있지만, 탄소중립기본법 어디에도 ‘사회적 약자 보호’나 ‘정의로운 전환’이 재난 대응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반영돼 있지 않고 재난 대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에 대한 선제적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피해를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기후재난을 줄이려면 지구온난화를 1.5℃ 막기 위해 각 국가가 세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부터 강화해야 합니다. 한국의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배출량이 가장 높았던 2018년 대비 36.4% 감축입니다. 하지만 이는 1.5℃ 목표 달성을 위한 전지구적 감축목표인 45%보다 8.6%나 못 미칩니다. 현재 우리는 2035년 NDC를 확정해야 합니다. 최근, 여러 기후 단체에서는 2018년 대비 최소 61.2% 감축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IPCC 6차 보고서를 근거로 보았을 때 국제적인 과학 기준에 부합하는 수치입니다.
헌법재판소도 2024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이 2030년 NDC만 규정하고 2031~2049년 목표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역시 올해 7월, 각국은 “기후위기에 대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지금 여기서 가장 약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제도 마련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이 동시에 이뤄질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기후재난 현장 제일선에서 피해 주민들과 함께 복구 활동을 펼치고 동시에 현장 기록을 통해 장기적인 회복을 돕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책제안을 통해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갑니다. 기후재난은 더이상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후재난 대응 캠페인에 동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