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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 없는 탈플라스틱 대책, 플라스틱 총량은 23% 늘고, 수출길은 막힌다

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정부가 지난 해 23일 발표한 '탈플라스틱'이라 이름 붙인 종합대책(안)을 열어보니, 2030년 한국의 폐플라스틱 총량은 912만 톤으로 지금보다 18%나 늘어납니다. '감축 계획'이 아니라 사실상 '증가 계획'인 셈입니다. 세계가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자고 논의하는 이 시점에 한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프랑스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시키면 재사용 식기에 나옵니다. 감자튀김도 재사용 용기에 담겨 나오고요. 법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독일 코카콜라는 유리병과 재사용 페트를 20번 이상 다시 씁니다. 이것도 규제입니다. 같은 맥도날드, 같은 코카콜라지만 한국에서는 어떤가요? 일회용 용기를 마음껏 쓰고 있습니다. 규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규제가 강한 유럽에선 돈을 들여 시스템을 바꾸고, 한국에선 그 비용을 아끼며 수익을 챙깁니다. 전형적인 '규제 차익'이죠. 정부의 탈플라스틱 대책이 이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요?

지난 12월, 정부는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책은 생산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와 연도별 이행 계획이 없어 역행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플라스틱 규제를 환경 보호를 넘어서 글로벌 무역 표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현 정부안은 단순한 환경 정책의 후퇴를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린피스가 이 대책의 허점 6가지를 콕 짚어봤습니다.

1. 플라스틱 감축 목표의 착시: BAU 기준으로는 왜 총량이 18% 늘어날까요?

정부의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은 2030년까지 신재 기반 폐플라스틱을 700만 톤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재생원료를 포함한 실제 폐플라스틱의 총량은 912만 톤으로, 2023년 대비 약 18% 증가합니다.그럴듯해 보이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1. BAU(Business As Usual, 현상 유지) 기준이라는 함정입니다. "지금처럼 쓰면 1,011만 톤까지 늘어날 거야"라는 가상의 숫자를 먼저 세워놓고, 그보다 줄였으니 성공이라고 하는 방식입니다.
  2. 재생원료는 빼고 세는 꼼수가 있습니다. 새로 만든 플라스틱만 줄이고 재생원료로 만든 건 제외했습니다. 둘 다 합치면 912만 톤으로 지금보다 훨씬 많습니다.

반면에 EU는 2018년 실제 수치를 기준으로 "여기서 15% 줄이겠다"고 못 박았고, 스페인은 "일회용 플라스틱 70% 감축"처럼 구체적인 감축 대상을 못박았습니다. 한국 정부안에는 "뭘 얼마나 줄이겠다"는 숫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목록만 잔뜩이고, 구체적인 목표는 없습니다.

    💡 대안: BAU를 버리고 기준년도 대비 '총량 절대 감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20%처럼 실질직인 감축 수치가 필요합니다.
정부의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은 구체적인 목표는 없습니다. 실질직인 감축 목표가 필요합니다.
플라스틱 규제는 플라스틱 오염, 환경 이슈가 아니라 무역 장벽이 되었습니다.

2. EU PPWR·ESPR 시대, 한국 수출 기업이 직면한 3가지 위기

플라스틱 규제는 플라스틱 오염, 환경 이슈가 아니라 무역 장벽이 되었습니다.

EU는 포장재 규정(PPWR), 에코디자인 규정(ESPR)으로 배터리, 섬유, 가전, 타이어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 플라스틱에 대한 법적 규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배터리 여권 도입, 미판매 의류 폐기 금지, 포장재 유해물질(PFAS) 사용 규제 등은 이미 입법이 완료돼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탈플라스틱 정책안에서 우리 정부가 강제하는 것은 ‘PET 재생원료 30%’ 하나 뿐입니다. 나머지는 2028년에서야 시작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수출 기업은 그때까지 이런 글로벌 규제 변화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아래 3가지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1. 이중생산의 비효율 : EU 수출용과 한국 내수용을 따로 만드는 비효율적인 생산구조에 놓입니다.
  2. 에코 덤핑 :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한국에 국제 기준 미달의 제품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알리, 테무 같은 글로벌 e커머스 플랫폼의 제품도 유럽에서는 EPR 분담금을 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닙니다.
  3. 브뤼셀 효과*로 유럽 기준이 곧 세계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EU 규제를 맞추지 못한 주력 수출 품목은 전 세계에서도 수출이 어려워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브뤼셀 효과 : 유럽연합(EU) 규정이 EU 외에 전 세계적인 표준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 대안: 환경부 뿐만 아니라 산업부, 중기부와 함께 범부처 TF를 만들고, EU 규제 임박 품목 (배터리, 섬유, 전자제품)의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3. 다회용기 보조금의 한계: 왜 재사용 의무화가 필요한가요?

재사용은 폐기물 발생 자체를 막는 순환경제의 최우선 전략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다회용기 사업은 법적인 의무 없이 보조금, 즉 세금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없으면 사업도 멈추게 됩니다. 반면 40년 넘게 작동하며 세계적으로 검증된 ‘빈용기 보증금제’는 기업들이 재사용 의무가 없으니 일회용 용기로 전환하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 대안: 한시적인 보조금이 아니라 재사용을 의무화를 해야 합니다. 음료 기업 제조사에는 재사용 용기 출고를 법으로 부과하고 지원사업으로 검증된 환경에서는 다회용기 사용을 의무화해, 재사용 시스템이 지속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의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에는 명확한 품목별 금지 시점과 목표 수치를 담은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에는 명확한 품목별 금지 시점과 목표 수치를 담은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4. 일회용품 규제, '권고'가 아니라 '금지'가 시장을 바꿉니다

정부안에 등장하는 ‘단계적 시행’, ‘권장’과 같은 모호한 단어들은 기업에게 잘못된 신호로 읽힙니다. 친환경 투자는 보류하고 눈치보기만 계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강한 규제가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1995년 종량제, 2018년 매장 컵 금지, 2019년 비닐봉투 금지 모두 시민 행동으로 바뀐 정책입니다. 무서운 건 규제에 대한 불편함이 아니라, 규제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입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후퇴는 정부 신뢰를 무너뜨린 대표적 사례입니다. 전국 시행을 한다 안한다 하더니 지자체 자율 시행을 이야기하면서 객관적 근거도 없이 시범사업을 사실상 폐기하고 있습니다. 원칙 없는 정책 변경은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시장과 국민들에 혼란만 안깁니다.

    💡 대안: ‘검토’와 ‘권고’를 삭제하고, 명확한 품목별 금지 시점과 목표 수치를 담은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절차적 정당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5. 탄소중립 역행: 소각되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재활용 플라스

정부는 탈플라스틱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소각’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폐플라스틱의 30%를 ‘열적 재활용’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열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 방식으로 사실상 소각입니다. 국제 표준(ISO), 미국, EU 등은 이를 재활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에너지 회수’라는 별도의 항목으로 구분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를 재활용률에 포함시켜 순환 실적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탄소중립에 역행한다는 점입니다. 플라스틱은 석유로 만들기 때문에 소각하게 되면 온실가스가 나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배출량을 에너지 부문으로 넘기면서 국가 전체의 탄소 배출량은 그대로인 ‘조삼모사’식 통계 착시입니다.

더 큰 위기는 30%를 소각하겠다는 목표를 잡게되면, 기업들은 비싼 재활용 시설 대신 저렴한 소각로에 의존하게 됩니다. 재활용이 가능한 양질의 플라스틱마저 비싸다는 이유로 태워지게 됩니다.

    💡 대안: ‘열적 재활용’ 대신 ‘에너지 회수’로 변경하고 정부안은 ‘소각’이 아닌 ‘순환’이 정책 목표의 1순위가 되야 합니다.

6. 미세 플라스틱: 해외와 국내를 차별하는 세탁기

정부는 이미 2017년에 끝난 화장품, 치약 규제를 성과인 양 포장하고 있습니다. 정작 바다로 흘러가는 미세플라스틱의 가장 큰 배출원인 세탁물(35%)에 대한 대책은 쏙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미세플라스틱을 막는 기술은 이미 있습니다. 삼성과 LG의 유럽 수출용 세탁기엔 미세플라스틱 필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법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세탁기엔 규제가 없기 때문에 필터를 장착할 의무도 없습니다.

EU는 한국과 반대로 모든 의도적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반면 현재 정부안은 화장품, 세정제처럼 특정 제품만 콕 집어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입니다. 그러나 규제 목록에 없는 인조잔디, 비료 캡슐 같은 거대 배출원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규제 공백화가 장기화될 수 있습니다.

    💡 대안: 품목별 지정 방식 대신 포괄적 금지로 전환해야 합니다. 플라스틱 저감에 도움이 되는 기술은 즉시 의무화하고, 저품질 제품은 즉시 퇴출시켜야 합니다.
세계가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자고 논의하는 이 시점에 한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세계가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자고 논의하는 이 시점에 한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규제는 족쇄가 아니라 경쟁력입니다

지금의 탈(脫) 플라스틱 정책은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글로벌 경쟁력에서 도태되게 만듭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한국이 ‘규제 갈라파고스’로 고립되기 전에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정책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정부가 생산 감축을 포함한 진정성 있는 ‘탈(脫) 플라스틱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그린피스와 함께 요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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