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낙제점만 피하려는 현대차의 탈내연기관 발표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는 2021년 9월 6일 독일 국제 모터쇼에서 2035년 유럽, 이어 2040년 주요 시장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고, 2045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강화되는 국제사회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내놓은 뒷북 대책이 아닐 수 없다. 먼저, 2035년부터 유럽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은 현대차가 유럽 수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규제 통과 턱걸이 수준의 대책을 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지난 7월 유럽연합이 2035년부터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2040년 한국과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도 지난해 말 발표에다 한국만 끼워 넣었을 뿐 사실상 기존의 대책과 별 차이가 없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6%는 수송 부문에서 발생하며, 이 가운데 대부분은 자동차와 트럭이 배출한다. 의미 있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과감하게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고 탄소배출 제로 모빌리티로 전환해야 한다. 현대차도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서 수송부문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린피스는 현대차가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라며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요구한다.
첫째. 탈내연기관 시점을 2030년으로 앞당겨야 한다.
유럽연합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은 2050년을 탄소중립 목표 연도로 선언하면서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시점을 2035년 또는 그 이전으로 설정했다. 자동차 수명을 15년 정도로 볼 때 2035년에는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금지해야 2050년 이후 내연기관차 퇴출이 실현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 국가기후환경회의도 지난해 2035년 내연기관 판매 중지를 제안한 바 있다. 일본 역시 2035년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시점으로 논의하고 있다. 보수적인 분석기관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2050 넷제로 로드맵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2030년에는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60%가 전기차로 채워져야 하고, 2035년에는 100%가 전기차여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시점과 관련해 2035년은 마지노선 개념이며, 2030년 이전에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일 항공우주연구센터(DLR)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지구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28년에 내연기관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 영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위원회 격인 기후변화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2030년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차가 2040년 세계 주요 시장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와 과학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영국의 싱크탱크 케임브리지 이코노매트릭스(Cambridge Econometrics)와 그린피스가 9월 중 발표할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내연기관차 퇴출 시점이 2030년과 2035년일 경우 현재 그대로일 때에 비해 2050년 국내총생산이 각각 0.24%와 0.23% 늘고, 일자리는 각각 4만 9천 명과 4만 7천 명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2030년 내연기관차 퇴출이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
둘째.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일제히 탈내연기관을 실현해야 한다.
현대차는 한국과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나머지 시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도 않았다. 2020년 현대차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가 러시아, 인도, 아시아 태평양, 중남미 등 신흥시장에서 판매하는 자동차는 121만대로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 371만 대 가운데 약 32%를 차지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탄소중립 달성과 내연기관 판매 중단이 특정 국가나 지역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에너지기구는 2035년부터는 전 세계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현대차가 주요 시장에 대해서만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시점을 밝힌 것은 지역을 차별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기후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자 직면하고 있는 도전 과제이고 전 인류의 관심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최은서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현대자동차 경영진이 기후위기의 심각성, 시급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미완의 탈내연기관 선언을 국제사회에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홍보하기 어렵다. 그린피스가 처음 현대자동차 캠페인을 시작한 2019년에 비해 탈내연기관 논의가 다소 진전된 것은 의미 있으나 현대차 판매 차량의 97%가 여전히 내연기관차이다.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격 선언이 아닌 2030년 이전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등을 명확히 밝히는 기후 비전을 제시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2021년 9월 7일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