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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3대 메가프로젝트, 속도보다 검증이 먼저다

전력·용수 공급 계획의 투명한 공개와 온전한 환경영향평가 실시를 촉구한다

글: 그린피스
  • 미래 세대가 살아갈 땅과 물 담보로 한 '속도전' 우려…환경영향평가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 필요
  • 극심한 가뭄 지역에 용수 계획 없이 시민 무방비... '선 허가, 후 평가' 한계 반복하며 시민 안전 우려 커져
  • 기후·생태 고려 없는 대규모 국가 산업 계획은 국제법상 국가 의무 저버리는 셈...온실가스 배출 전망의 투명한 공개와 구체적인 전력 공급 로드맵 촉구


(2026년 7월 14일) 국가의 장기 산업 전략을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 수도권으로만 쏠려온 흐름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는 시도 역시, 늦었을지언정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합리적 목적이라도 절차의 생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10년 뒤의 먹거리를 위해 100년 뒤 세대가 살아갈 땅과 물을 담보로 잡는 계획은 미래 세대에게 청구서를 미루는 셈이다.
 

지금 정부는 위험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이후, 정부는 환경영향평가 간소화와 전력·용수의 선확보를 잇달아 지시하며 속도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못 박았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6.3GW, AI 데이터센터 18.4GW로 전력 수요는 모두 24.7GW에 이른다. 이는 원전 약 18기와 맞먹는 규모다. 막대한 전력 수요는 곧바로 에너지 정책의 퇴행 조짐으로 이어졌다. 장관과 일부 전문가들이 나서 신규 원전과 화석연료인 LNG 발전의 추가 건설 필요성을 제기했다. 급기야 2040년 폐쇄가 확정된 석탄발전소도 남겨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AI를 명분 삼아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어렵게 쌓아 올린 탈석탄이라는 합의조차 흔들리고 있다.

용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로 선정된 광주시는 2022~2023년 시민들이 절수 운동에 나서야 할 정도로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비상 대응으로 겨우 버텨낸 그곳에, 하루 65만 톤의 물을 필요로 하는 초대형 산업 수요가 새롭게 더해지고 있다. 기후 위기로 가뭄은 더 예측하기 어렵고 더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제대로 된 검증과 방비 없이 또다시 가뭄이 닥쳤을 때, 산업용수와 생활·농업용수 사이에서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하는가. 그 대가를 먼저 치르는 것은 산업이 아니라 시민들의 소중한 일상일 수 있다. 

가장 우려되는 바는 대규모 에너지 소비 시설과 생산 시설이 '국책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런 검증 과정 없이 강행되려 한다는 점이다. 전력 부하·용수 고갈·온실가스 흡수 능력처럼 물리적으로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는지, 그 부담이 지역과 세대 간에 공정하게 배분되고 의사결정 과정에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는지, 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이 실질적으로 보호되는지, 그리고 이 계획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양립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아직 공개된 바 없다. 

대규모 국가사업에서 이러한 위험 요소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는 환경영향평가와 기후변화영향평가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이 절차는 '선 허가, 후 평가'라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문제는 사업 허가 후에 평가가 진행되는 흠결을 지닌 이 절차마저도 메가프로젝트 진행에서는 ‘간소화’와 ‘기간 단축’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업의 진행이 미치는 기후와 환경적 영향을 평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건너뛰려는 시도는, 생태적 한계와 사회 정의와 공정성을 확인할 마지막 기회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제사회가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유럽연합(EU)은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사업에 대해 ‘개발허가’를 부여하기 이전에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지침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평가를 사업 승인을 정당화하는 사후 절차가 아니라, 사업의 입지와 규모, 설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의사결정 단계에서 사업의 환경영향을 미리 평가하고, 그 결과를 개발허가 여부 및 조건 설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절차로 설계된 것이다. 2025년 5월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법원은 노르웨이의 석유·가스 개발 승인이 다투어진 사건에서, 프로젝트를 ‘승인하기 전’에 해당 사업으로 인한 전체 기후 영향(특히, 수출된 연료의 scope 3 연소 배출량 포함)을 평가해야 하며, 이러한 평가 없이 사업을 승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세계적인 흐름은 국내에서도 다르지 않다. 2024년 우리 헌법재판소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법제의 중대한 흠결이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이듬해 2025년, 국제사법재판소(ICJ)도 국가의 기후 대응 의무가 단순한 정치적, 정책적 약속이 아닌 국제법상의 법적 의무임을 확인했다. 이에 올해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의 의무에 대한 권고적 의견’의 이행을 촉구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의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며 기후 대응에 있어 국가의 책무 강화를 지지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제 무대에서의 대외적 선언은 국내 현실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다. 한국의 대형 에너지 사업 인허가는 이런 흐름과 정반대로 작동한다. 현재 그린피스가 진행 중인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내 3GW 규모의 LNG 6기 발전사업 허가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소송에서 바로잡고자 하는 핵심은, 명백한 법적 기준이 있음에도 환경영향평가 및 기후변화영향평가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전사업 허가가 먼저 내려졌다는 사실이다. 6기의 발전소가 가동될 경우, 30년 동안 1,000건이 넘는 조기사망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그린피스 연구 결과는 이러한 문제를 방증한다. 

이 소송은 단순히 하나의 발전소 허가를 다투는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 추진되는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생태가 감당할 수 있는 기준과 우리 사회의 정의와 형평, 안전과 같은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지 확인할 최소한의 절차조차 갖추지 않은 채 진행된다는 문제를 법정에서 입증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 메가프로젝트가 추진되는 방식은 용인에서 확인된 이 구조적 결함을 더 확대하며 가속하고 있다. 메가프로젝트가 예고하는 것은 용인보다도 훨씬 큰 규모와 속도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이 국가적 결정이 밀어 붙여지는 불안한 미래다. 

산업 계획은 10년의 문제다. 기후는 100년의 문제다. 메가프로젝트를 감당할 환경 정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이 계획은 성공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 투자는 산업 계획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국가의 기반이다. 이 기반이 없다면, 800조 원을 쏟아부어 올린 거대한 메가프로젝트 역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가 '계획'이라는 말을 쓰려면 갖춰야 할 전제가 있다. 그린피스는 그 전제를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공급 계획과 수요 추정치의 검증 : 정부는 이미 밝힌 24.7GW·65만 톤의 수요를 무엇으로, 어디서, 언제까지 채울 것인지 구체적 공급 계획을 공개하고, 특히 18GW를 넘는 AI 데이터센터 수요 추정치는 외부 검증을 받아 과대 추정을 전제로 한 설비 과잉투자와 좌초자산 위험을 막아야 한다. 또한 이 계획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 관련 정부 공식 수치를 공개하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양립 가능한지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2. 생태 한계선 및 사회적 형평성 기준 구체화 : 재생에너지로 감당 가능한 전력, 생활·농업용수와 충돌하지 않는 용수 공급의 한계선을 먼저 조사하고, 구체적·수치화된 조달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사업의 이익과 부담이 지역·세대 간에 어떻게 배분되는지, 지역 주민의 참여와 이의제기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지를 밝혀야 한다.
  3. 수요관리·효율화 수단의 비중 강화 : 발전설비 확충에만 의존하지 말고 수요관리(DR),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산형 전원, 디지털 전력망 등 전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안을, 신규 취수원 확보에만 의존하지 말고 용수 재이용과 절수 기술 등 물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안을 함께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4. 환경영향평가 시점의 전환 : 환경영향평가·기후변화영향평가를 사업 승인 이후의 요식 절차가 아니라, 승인 여부 자체를 결정하는 사전 절차로 삼아야 한다. 국제사회가 이미 '선 평가, 후 허가'를 표준으로 삼고 있는 지금, 한국도 이 국제 기준에 발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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