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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발전소 수출, 그 검은 돈의 진실

국정감사장에 나타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3분 호소

글: 한신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캠페이너
지난 7일 열린 국정감사에는 먼 나라에서 온 참고인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왈히(WALHI)에서 일하는 메이키와 사웅이었죠. 이들에게 주어진 발언 시간은 단 3분. 둘은 무엇을 말하려고 이 먼 곳까지 왔을까요?

지난 10월 7일 오후 6시,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장에는 증인·참고인 30여명이 증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기석 가운데 앉아있는 눈에 띄는 외국인 두 명, 인도네시아인 메이키 빠엔동과 드위 사웅 씨는 참고인 자격으로 국정감사에 참석했습니다. 메이키와 사웅은 인도네시아 최대 환경단체 왈히(WALHI) 소속 활동가들로, 메이키는 서부 자바 지부장이고 사웅은 자카르타 에너지 팀장으로 현지의 석탄화력발전소 퇴출 캠페인을 이끌고 있습니다.

메이키와 사웅에게 한국은 ‘악질 국가'로 비춰집니다. 이들은 한국이 인도네시아 어촌마을 찌레본에서 자행한 악행을 고발하고자 자카르타에서 서울까지 5,290km를 날아왔습니다. 메이키는 국정감사장에서 “한국 공적금융기관이 투자하고 한국 기업이 건설한 석탄화력발전소로 주민들은 생계 터전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발생시켜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9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장에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질의에 인도네시아 최대 환경단체 왈히(WALHI) 소속 활동가 메이키와 사웅이 답변을 하고 있는 모습.

도대체 한국이 찌레본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요? 찌레본은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5시간 정도 떨어진 자바 섬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주민들이 해안가에 차고 넘치는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평화로운 곳이었죠. 찌레본의 비극은 2009년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의 수출입은행이 투자하고 두산중공업이 건설한 석탄화력발전소. 어획량이 줄고 소금에 까만 석탄재가 묻기 시작했습니다. 생계를 위협 받은 주민 다수가 마을을 떠났습니다. (관련 동영상 보러 가기)

찌레본의 어부 하심과 등 뒤로 보이는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 십년 전 발전소 건설을 시작한 이후 잡히는 조개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 와중에 수출입은행은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에 이어 2호기 투자를 결정하고, 현대건설이 2호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주민들은 공사 현장 앞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현대건설은 어떻게 했을까요? 부적절한 방법을 통해 찌레본 군수에게 65억 루피아(약 5억 5천만 원)를 전달하고 시위를 해산시켰습니다. 메이키는 “현대건설이 순자야 푸르와디사스트라 전(前) 찌레본 군수에게 돈을 건넸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며 “최근 인도네시아 부패방지위원회(KPK)가 순자야를 돈세탁 혐의로 다시 기소했다. 주민들은 이 결과에 대해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의 내용은 순자야에 대한 매관매직 재판 도중 한 증인의 증언으로 드러났습니다. 인도네시아 반둥부패법원은 지난 5월 22일 순자야의 매관매직 혐의에 유죄 판결을 내렸으며, 판결문에 담긴 증언 내용에는 현대건설이 무려 55차례 거론됐습니다. 현대건설이 순자야에게 돈을 건넨 수법이 자세히 담겨 있죠. 이후 인도네시아 부패방지위원회는 관계자들에 대한 출국금지명령을 내리고 증거를 수집하며 현대건설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뇌물수수 보도가 쏟아지면서 해명 요구가 빗발쳤지만 현대건설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장에서 증인으로 소환된 손준 현대건설 전략사업본부 전무에게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물었지만 “오해가 있다" “모른다" 등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소속 김성환 의원이 집요하게 묻자, 손 전무는 “현지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법률자문용역기관을 선정해 처리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순자야의 매관매직 판결문에 증언으로 삽입된 현대건설 자금 전달 방식. 베베르의 면장이자 순자야 군수의 부하직원이었던 리타 수사나는 본인이 현대건설의 돈을 전달하는 전달책이었음을 시인했다.

과연 법률자문용역 기관이 현지 민원을 ‘처리’할 수 있을까요? 순자야 사건의 판결문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순자야가 지정한 회사(순자야 부하직원의 사위가 소유한 회사)와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이체했습니다. 부하직원은 이 돈을 여섯 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인출해 순자야에게 전달했죠. 뇌물수수에 동원되는 전형적인 자금세탁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순자야는 해당금액의 일부를 지역사회 공무원 등에 지급, 시위를 해산시키는데 사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부패방지위원회는 최근 현대건설로부터 받은 돈을 포함, 거액의 자금세탁 혐의로 순자야 전 군수를 추가 기소했습니다.)

10월 4일, 사웅과 왈히(WALHI) 활동가들이 부패방지위원회(KPK) 건물 앞에서 현대건설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찌레본에 세워진 석탄발전소와 주민들의 고통. 그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고위공직자에게 돈을 건넨 현대건설. 이 모든 과정은 우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작점이었던 찌레본 석탄발전소 1호기는 한국 은행과 한국 기업이 지은 발전소였고, 2호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1호기와 2호기에 모두 참여한 수출입은행은 우리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 자금'을 이용해 석탄발전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돈이 석탄발전소를 짓는 데 쓰인 것이지요.

6월 30일, 그린피스가 찌레본 2호기에 투자하는 수출입은행(KEXIM) 앞에서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뇌물 의혹에 대해 묻는 레이저 액션을 펼치고 있다.

현대건설의 비리 의혹으로 한국은 석탄발전소뿐만 아니라 부정부패까지 수출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메이키와 사웅은 오늘도 인도네시아에서 현대건설과 순자야에 대한 면밀한 수사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논란이 되는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 2호기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수사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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