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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오염 되는 후쿠시마, 숲은 잘못이 없다

2019 후쿠시마 현지 조사, 그 두 번째 이야기

글: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장마리
후쿠시마에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낙엽이 떨어질때마다 조사팀은 잠시 벗어뒀던 마스크로 코와 입을 막고, 머리에 쓴 모자도 점검해야 했습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의 프로토콜 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을 침묵해선 안됩니다.
2019년 10월 후쿠시마 방문기, 그 두 번째 이야기 입니다.

원전 서북서 방향 20km, 오보리

조사팀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몸을 움츠렸다. 외곽에 차를 대고 오염이 심한 마을 내부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마스크 안으로 흙냄새가 번졌다. “마스크 절대 벗지 말아요!.” 누군가 소리쳤다. 방호복에 점퍼까지 입으니 마스크와 옷 안이 덥다. 도쿄전력 검문소에서 30분가량 이동해 오보리 마을에 도착했다. 선량계 숫자가 10 마이크로시버트(μSv/h) 이하로 내려가지 않자, 차 안에서 계속 알람이 울렸다. 알람 기준을 20μSv/h 이상으로 변경했다. 이곳이 접근 제한 구역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곳은 일본 정부가 이르면 내년부터 피난 지시를 해제할 여섯 개 지자체 중 하나다. 특히 오보리는 나미에에서 도자기 공예로 관광지 역할을 했던 배경이 있어, 일본 정부가 재건 중심 마을로 정했다. 그린피스는 현장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년째 후타바, 오쿠마, 나미에, 도미오카, 이타테, 가쓰라오 등 여섯 개 지자체의 피난 지시 해제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제염 작업 효과가 없고 수십 년, 길게는 세기를 넘어서까지 지속적인 재오염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2017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보리 마을의 평균 방사선량은 11.6μSv/h, 연간 피폭량 101mSv/h 에 해당한다. 일본 정부 제염 목표치보다 약 100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찾은 오보리는 제염 작업이 한창이었다. 유채꽃씨가 날아왔는지 축구장의 4배 크기의 면적이 온통 노란 꽃밭이다. 자연은 여전히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이 꽃밭 주변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옷을 입은 서너명의 사람들이 흙을 파내고 있다. 나에겐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차량 주변의 선량을 점검하는 조사팀원 레이. 그린피스 동아시아 연구조사팀장이다
차량 주변의 선량을 점검하는 조사팀원 레이. 그린피스 동아시아 연구조사팀장이다 장마리
주차된 차량 왼편의 버려진 차와 집. 출입금지를 뜻하는 철문이 설치되어 있다
주차된 차량 왼편의 버려진 차와 집. 출입금지를 뜻하는 철문이 설치되어 있다 장마리

나미에로 그린피스를 초대하고 조사에 동행한 주민 2명이 차 안에서 대기했다. 숙소에 머물 것을 요청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한 분은 창밖으로 잠시나마 고향을 보고 싶다고 했다. 차 안 선량이 5μSv 이하로 떨어지는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우리는 30분 이상 헤맸다. 차량 오른편, 왼편의 선량이 달라 조사팀은 낮은 선량 방향에서 대기할 것을 요청했다. 도로 방향으로 제염토 운반 차량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오른편은 3.8μSv, 버려진 집 옆인 왼편은 3.4μSv 였다.

팀 내에서 조사 지역 사전 점검 역할을 맡은 레이가 차 문을 열었다. 차량 주변에서 마을 초입으로 가까워진 순간, 선량계 알람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사람씩 차 밖으로 나섰다. 안전을 위해 주어진 조사 시간은 40분이었다.

원전 서북서 방향 30km, 쓰시마 칸노씨의 집

칸노씨 집이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이 더 조마조마했다. 칸노씨는 작년 가을 이후 이 집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했다. 비 때문에 집 주변이 더 오염되지 않았겠냐고 몇 번을 되내였다. 114번 국도를 따라 한 켠은 산으로 통하는 내리막길, 다른 한 켠은 거주지역이었다. 타지 사람들이 칸노씨 집을 찾을 때마다 숲과 산을 보며 자연에 치유 받고 간다고 했다. 아름다운 전경에 모두 반했다. 칸노씨는 그렇게 이 집과 쓰시마가 가진 치유의 힘을 믿으며 한평생을 살았다고 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말이다.

피난민이자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생존자인 칸노씨의 집은 나미에 지역 쓰시마에 있다. 2017년 칸노씨의 집에서 방사선 조사 작업을 하는 그린피스 전문가들을 창밖으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피난민이자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생존자인 칸노씨의 집은 나미에 지역 쓰시마에 있다. 2017년 칸노씨의 집에서 방사선 조사 작업을 하는 그린피스 전문가들을 창밖으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제염 효과 홍보를 위해 시범 지역으로 선정된 칸노씨 집은 2012년까지 집중적으로 관리됐다. 일본 정부는 민가와 도로에서 20m 반경까지만 제염 작업을 시행하기 때문에 숲은 처음부터 제염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산림을 제염하는 건 불가능하다. 강한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숲에 머물던 방사성 물질들이 물을 타고 멀리 번진다. 다량의 빗물로 땅과 지하수, 사람들과 접촉이 쉬운 곳까지 재오염 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그러니까, 후쿠시마의 70~80%를 차지하는 숲이, 이 지역을 행운의 섬으로 만들어주었던 그 숲이 이제 거대한 방사능 저장고가 된 것이다. 이처럼 고농도의 방사선 오염이 진행되는 지역으로 귀환을 명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인권 말살이다.

칸노씨 집은 320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공간이다. 집 바로 뒤편 거대한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할아버지는 세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모두 15m는 족히 넘어 보였다. 칸노씨는 원전 사고 직전 내부 인테리어를 모두 손봤다. 구석구석 정성으로 꾸민 그 집에서 불과 두 달도 살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제염이 완료된 집 안은 0.3μSv/h 수준이었다. 집 밖의 흙먼지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내가 장화 바닥을 거즈로 감싸는 동안 칸노씨가 집 안을 향해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칸노씨는 그렇게 이 집과 쓰시마가 가진 치유의 힘을 믿으며 한 평생을 살았다고 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말이다.
칸노씨는 그렇게 이 집과 쓰시마가 가진 치유의 힘을 믿으며 한 평생을 살았다고 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말이다.

눈길이 가는 것은 달력, 그리고 기둥의 빨랫줄이었다. 집 안에 걸려 있는 세 개의 달력 모두 2011년 3월에 멈춰있다. 당시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쓰시마로 대피해 칸노씨 집에 한 달간 머물렀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바람이 쓰시마 지역으로 불어 오염이 더 심했기 때문이다. 칸노씨는 곧 대피 상황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정부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년 칸노씨의 집을 조사하면서 두 가지를 발견했다. 하나, 일본 정부의 제염 작업 효과로 집 안과 마당의 방사선량이 주변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 둘, 지역을 감싸 안고 있는 산림이 집 주변을 재오염 시킨다는 것이었다. 조사팀은 이날 이후 두 번 더 칸노씨 집을 방문했다. 재오염의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칸노씨는 측정 결과를 묻지 않았다. 집을 떠나며 칸노씨는 다시 인사를 전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원전 서북서 방향 30km, 쓰시마 바바씨의 집 그리고 114번 도로

칸노씨 집에서 차로 5분가량 이동하면 바바씨 집이다. 다시 보니, 이 집들은 하루에 2천 대 이상의 제염토 운반 차량이 지나가는 114번 도로와 산 사이에 갇혀 있는 모양새다. 바바씨 집에 들어서자 선량계 숫자가 격렬하게 반응한다. 배경 수치를 확인한 조사팀장이 팀원들에게 허락한 시간은 단 15분이었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었다. 내가 속한 팀은 114번 도로에서 약 10m 가량 떨어진 앞마당을 조사하고, 다른 팀은 마당을 지나 집까지 이어지는 경사진 길목에서 초당 방사선 신호를 측정한다.

선량계를 들고 마당 안 창고 쪽으로 한발씩 내디딜 때마다 선량계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건물 측면에 서자 알람이 울렸다. 핫스팟(고준위 방사선 측정 구역)이었다. 1m 지점에서 30μSv/h. 땅에서 50cm 높이로 선량계를 낮추었다. 50μSv/h였다. 10cm로 선량계를 낮추자 90μSv/h를 뛰어넘었다. 레이가 주변 팀원들에게 핫스팟 수치와 위치를 알렸다. 숫자를 가까이 보려고 몸을 낮췄다. 조사팀장 미크로가 소리쳤다. “마리! 그곳에서 당장 나와!”

이 정도의 고준위 핫스팟을 발견하면 전체 팀에 알리고 몸을 멀리해야 한다는 수칙을 순간 잊었다. 우리 팀은 마당 밖으로 나와 차량을 중심으로 선량이 낮은 쪽에 줄을 섰다. 한 사람씩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방호복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바씨 집 전체의 선량이 높았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했다. 방호복 상의부터, 하의, 모자, 장화, 장갑의 순서에 잘 맞춰 탈의해야 한다. 조사에 사용한 장비를 차에 넣는 방법, 조사 후 방호복을 벗고 차에 타는 순서 등이 모두 정해져 있다. 레이는 내가 벗은 방호복 바지와 모자를 받아 방사성 폐기물 봉투로 하나씩 포개 넣었다. 발은 뗀 체 몸만 차 안으로 구겨 넣으면 다른 팀원이 장화를 벗겨 보관용 봉투에 담는다. 모두 차 안에 흙이나 먼지를 유입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 약 10km 떨어진 나미에 타운의 학교, 어린이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은 지진 피해가 극심했고 파도로 많은 건물이 무너졌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이 지역의 피난 지시를 해제했고, 사고 전 21,000명에 비해 2.1% 수준인 500명만 귀환했다. 그중의 3분의 1 정도가 원전 지역 노동을 위해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다. 2017년 조사 당시 학교 주변의 평균 방사선량은 5μSv/h였다.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 약 10km 떨어진 나미에 타운의 학교, 어린이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은 지진 피해가 극심했고 파도로 많은 건물이 무너졌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이 지역의 피난 지시를 해제했고, 사고 전 21,000명에 비해 2.1% 수준인 500명만 귀환했다. 그중의 3분의 1 정도가 원전 지역 노동을 위해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다. 2017년 조사 당시 학교 주변의 평균 방사선량은 5μSv/h였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다른 팀원을 기다리며 114번 도로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하얀색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있던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접근이 금지된 집으로부터 불과 10~40m 떨어진 114번 도로는 2017년 이용이 허가됐다. 도로나 주변의 선량을 알리는 계기판이나 안내가 없으니 사람들이 오염 수준을 알 리 없다. 그린피스 수석 원자력 전문가 숀 버니가 작년 조사 중에 차를 타고 이 도로를 지나가다가 한 가족이 도시락을 먹고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어린아이가 둘이었다. 물론 그들은 이곳에서 살지 않고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114번 도로에서 올해도 10~30μSv/h의 핫스팟을 발견했다. 나로선 아이들이 이 도로 부근의 오염된 풀, 꽃, 나뭇가지를 맨손으로 만지지 않았기를, 차 안으로 세슘이 묻은 흙먼지가 유입되지 않았기를, 그리고 그 먼지를 흡입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흙을 만지고 싶은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앞으로 수 세기 행운의 섬을 재오염시킬 후쿠시마의 숲도 잘못이 없다.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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