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강우 특징의 변화 - 기후변화 탓인가요?
지난 6월 14일 기상청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후센터가 한국 주요 하천 유역별 강수량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극한 강수량, 즉 비가 평년보다 이례적으로 많거나 적게 내릴 예측치를 산정해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는다면 21세기 말 극한 강수량이 최대 70%이상 증가하리라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탄소 배출량이 지금과 같거나 늘어난다면 100년에 한 번 꼴로 빚어지는 ‘재현빈도 100년 극한강수량’도 2081년부터는 지금보다 절반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기록적인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 재해, 또는 극한의 가뭄 사태를 지금보다 훨씬 자주, 훨씬 험악한 양상으로 겪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상 기후 – 재해- 피해 확대의 악순환
최근 10년간 우리는 대설·한파와 가뭄, 폭염, 태풍·호우 등 이상기후 현상을 더 자주 더 험악하게 겪었고, 그에 따른 인명 등 피해도 점점 커졌습니다. ‘역대급’ 이나 ‘기록적’ ‘이례적’ 등의 수식어에 대해서도 점점 둔감해지고 있습니다. 아니 아직 우리는 진짜 ‘역대급’ 기상 재해를 경험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6월 기상청의 강수량 전망도 그같은 우려를 뒷받침합니다.
선행한 기후 재난이 또 다른 재난을 더욱 악화-가속화하며 연쇄적으로 증폭시키는 현상을 ‘폭포효과(cascade effect)’라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형 산불들처럼, 기록적 폭염과 가뭄이 대지와 공기를 건조화하고, 그렇게 자연발화 및 진화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어 산불의 규모를 키우는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 봄-여름 우리가 경험한 극한의 가뭄과 지긋지긋한 폭우도 그런 폭포효과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징후일지 모릅니다.
지난 8-10일 시간 당 최대 141mm 비를 뿌리며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을 강타한 폭우는 점차 남하해 13-14일 충남에 시간 당 110mm 비를 뿌리며 지역을 삼켰습니다. 기록적 폭우로 1조원이 넘는 사상최대 피해액을 냈던 2020년 우리나라 1일 최다강수량은 361mm 이었습니다. 8월 8일 수도권 하늘은 380mm 의 비를 쏟아내며 2년 전 ‘기록적’ 양의 비를 쉽게 갈아치웠습니다.
15일 오후 6시 기준 중앙재해대책본부(중대본) 집계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시작된 폭우로 모두 14명 (서울 8명, 경기 4명, 강원 2명 등)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습니다. 이재민은 총 7,749명, 침수 피해를 입은 주택·상가는 모두 8,949채입니다. 농작물 피해도 커서, 충남의 경우 약 1,754헥타아르의 논밭이 물에 잠기거나 흙에 묻혔고, 가축 8만1,857마리도 폐사했습니다. 동해안의 경우 산불 여파가 채 아물기도 전에 강타한 폭우로, 대규모 산사태 우려도 커졌습니다. 호우 예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추가 피해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국 강우 특징의 변화 - 강수량 증가↑ 강수일수 감소↓ 강수 강도 증가↑ 최대무강수계속기간 증가↑
우리는 사계절 중 장마철에 강우가 집중된다고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폭염과 폭우의 동시 발생, 장마철이 끝난 뒤 태풍도 없이 퍼붓는 집중호우 등 기상 이변을 꽤 자주 겪어왔습니다. 당연히 인명 피해와 사회적 및 경제적 피해도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30년 연 평균 강수량이 그 전 30년에 비해135.4㎜ 늘어난 반면 강수 일수는 21.2일 감소했습니다. 비 오는 날은 줄어든 반면 한 번 내리면 폭우일 때가 잦아졌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1912~2020년 연대별 강수 변화 추세를 보면, 계절별로는 여름철 강수량이 급증했고, 강수 강도는 여름과 가을에 증가했습니다. 강수 일수의 감소는 특히 동해안 지역에서 두드러져, 하루 강수량 1.0mm 미만인 날이 얼마나 지속됐는지를 보여주는 ‘최대무강수계속기간’의 장기화로 나타났습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처럼, 대형 산불의 배경에 그같은 가뭄과 건조기후가 있었습니다.
연중 비 오는 날이 줄어들고, 한 번 내리면 국지적 폭우를 퍼붓고, 그것도 여름 가을에 집중된 탓에 봄-겨울은 가물고 건조한 계절이 됐습니다. 건조 기후는 대규모 산불을 낳고, 숲이 불타면서 물을 머금지 못하고, 불로 인해 물과 친화성 없는 소수성(hydrophobic) 토양으로 변질된 땅은, 적은 비에도 쉽게 유실되거나 산사태 등 추가 피해를 낳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해가 갈수록 더 끔찍한 양상으로 겪게 될 지 모르는 기후재난의 폭포효과입니다. 이상기후현상은 그 밖에도 축산농가 방역 비상, 농산물 식량 위기, 물가 상승과 수인성 전염병 등 보건-건강의 위험도도 증가시킵니다. 모든 게 우리가 뿜어낸 온실가스의 직-간접적 복수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정치적 권력이 약할수록 더 크게 입습니다.
극단적 이상기후가 이제 '새로운 표준(뉴 노멀)'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COP26 개막일에 맞춰 보고서를 발간하며, 기록적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이 우리가 사는 지구를 ‘미지의 영역’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페테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극단적 이상기후는 이제 ‘뉴노멀’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냉혹한 사실은 과학자들의 반복된 엄중한 경고에도 지금 온실가스 배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 11월 이집트에서 제27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 총회(COP27)가 열립니다. 지난해 유엔 기후총회에서는 각국이 새롭게 약속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지켜지더라도 지구 평균 온도를 1.5도가 아니라 2.4도 상승의 재앙적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는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한국을 포함하여 불충분한 목표를 제출한 국가들은 올해 다시 목표를 제출할 것을 요구 받았습니다.
올해 강력한 기후공약을 걸고 출범한 호주 정부는 선거 직후 전임 연립정부 26-28% 감축 목표를 폐기하고, 2005년 대비 2030년까지 43% 감축으로 상향 조정한 목표를 유엔기후변화협약 UNFCCC(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에 즉각 제출하여 공식적인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연이은 폭염, 산불과 폭우로 이상기후를 처절하게 겪은 호주 시민들의 요구에 대한 정부의 응답이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지난해 2018년 총배출량 대비 2030년 순배출량의 40% 감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기준연도와 목표연도에 같은 지표(총배출량 혹은 순배출량)를 적용하고, 불확실한 해외감축과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을 고려하지 않으면 사실상 30% 감축에 불과한 목표입니다. 강화된 감축목표였지만 독립적인 글로벌 연구기관은 한국의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면 “매우 불충분”한 목표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은 최소한 2030년까지 50%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와 더불어 올해 정부는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구체화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중장기 에너지 믹스 계획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이상기후 대응에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온실가스 감축입니다. 정부가 이상기후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위해 기후재난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탄소중립을 어떻게 실현해나갈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느냐에 달렸습니다.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책임과 역할에 걸맞은 대담한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고 진취적으로 실행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