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포스코의 만남이 중요한 이유
자동차 업체의 탄소중립, 전기차 외에 필요한 것
도로에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이산화탄소를 몰아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무엇보다 휘발유차·경유차 같은 내연기관차 판매를 하루속히 금지해야하겠죠. 출퇴근길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수도 줄여야하고요. 대신 친환경 대중교통은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데, 여러분 모두 동의하실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쳐서는 안되겠죠? 전기차를 이야기할 때 충전에 필요한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살펴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많은 자동차 업체들은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하며 친환경차 생산에 몰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전기차를 생산하고,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철제 갑옷, 즉 강판이 자동차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입니다. 승용차 한 대를 만드는데 철강 0.9톤 정도가 사용되는데요. 이 만큼의 철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1.64톤이 발생합니다. 요즘 생산되는 중형차 소나타가 1km 주행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130g 정도인 걸 고려하면, 이 소나타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번 왕복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맞먹습니다.
그렇다보니 자동차 강판의 탈탄소를 빼놓고는 자동차 업체의 탄소중립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평균적으로 승용차 무게의 약 50%~65%를 철강이 차지하고 있을만큼 철강은 자동차 제조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까지 자동차 전 과정 내 탄소배출의 60%가 재료 생산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는만큼 자동차 생산, 운행,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비중에서 철강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업체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다면 자동차 철강의 탈탄소화를 빠뜨려선 안됩니다.
현대차그룹, 세계 세 번째 철강 소비 자동차 업체
그린피스는 세계 상위 16개 자동차 업체의 철강 탈탄소화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16개 자동차 업체는 2021년에 4000만~6700만 톤, 2022년에는 3900만~6500만 톤의 철강을 소비했습니다. 파리 에펠탑에 7천 톤의 철골이 사용됐다고 하는데요. 에펠탑 5천 개에서 9천 개 분량의 철강이 매년 거리로 쏟아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철강 소비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1년에 최소 7700만 톤, 2022년에는 7400만 톤으로 추정됩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세계에서 철강을 가장 많이 소비한 자동차 업체는 토요타, 폭스바겐, 현대기아 순이었습니다. 현대차는 2045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자동차 업체들은 앞다퉈 탄소중립을 약속하고 있지만 측정 가능한 목표와 철강의 탈탄소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어느 업체도 사용한 자동차 철강의 탄소발자국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SUV 판매량을 늘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려는 자동차 업체의 마케팅 전략은 철강 소비를 증가시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최소한으로 추정한 결과를 살펴보더라도, SUV 생산 시 사용된 철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량은 2021년 전체 자동차 철강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SUV의 탄소배출량은 10억 톤이었습니다. SUV 증가로 인해 늘어나는 석유 소비량과 탄소배출량은 전기차 판매로도 상쇄하기 어렵습니다.
탄소제로 철강 생산을 앞당길 수 있는 자동차 업체
자동차 산업은 세계 철강 소비의 약 16%를 차지하는 최대 철강 사용자 중 하나입니다. 이 말은, 자동차 업체들이 철강 탈탄소화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생산은 여러 공급업체로 부터 철강을 조달 받지 않아 다른 철강 소비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한 공급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강 업체와 보다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저탄소 철강으로 자동차를 만들더라도 차량의 원가 상승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렇듯 자동차 산업은 제철 공정의 탈탄소화를 촉진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업체들이 저탄소 철강 조달을 약속한다면, 이는 철강 산업이 탈탄소 철강생산으로의 전환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한국, 일본,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세계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지만 북미와 유럽에 비해 탄소 집약도가 높습니다. 아시아 철강 업체들은 철강 탈탄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노력은 하고있지 않은 것이죠.
한국의 포스코와 현대제철, 중국의 바오스틸(Baosteel)과 쇼우강제철(Shougang Steel), 일본의 일본제철(Nippon Steel)과 JFE제철이 많은 자동차 업체에 철강을 공급하며 세계 자동차 강판 시장의 23.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한중일 제철업체들은 환경친화적인 전기로 비중이 10~30%에 불과합니다. 유럽 40%, 미국 70%에 비해 낮습니다. 이들은 대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고로 공정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고로 공정은 용광로에 철광석·코크스· 석회석 등을 넣어 쇳물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고로 공정을 대체할 방식으로는 전기로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와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인 ‘수소환원제철’ 방식이 있습니다.
자동차 강철을 탈탄소화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업체, 철강 업체, 정책 입안자 및 투자자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자동차 업체들은 이러한 협력을 촉진하고 보다 적극적인 친환경차 생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중심에 있습니다. 현대차는 포스코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기로, 수소환원제철 생산 등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전기차 대중화에 대비하여,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현대차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철강의 주요 소비주체로서 기후리더십을 보인다면 현대차는 철강 탈탄소화에 있어서도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철강 탈탄소화를 위해 현대자동차가 앞장서 해야할 일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 자동차 공급망의 탈탄소화는 필수적입니다. 현대차는 전기차 생산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자동차 생산 시 철강 소비를 줄이고, 무탄소 철강 사용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린피스는 현대차에 다음을 요구합니다.
첫째, 2030년까지 철강 공급으로 인한 탄소발자국(철강 원료 채취, 생산, 수송,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의 50%를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늦어도 현대차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약속한 2045년까지 자동차 생산에 사용되는 철강의 100%를 탄소제로 철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둘째, 판매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SUV 및 기타 대형 자동차 모델의 크기를 줄임으로써 철강 소비를 억제해야 합니다.
셋째, 철강 소비량과 이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넷째, 궁극적으로 자동차 생산 수를 줄이고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재고해야 합니다.
그린피스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통, 탈탄소 교통 확대를 위해 ‘친환경 자동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내연기관차와 작별하고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