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래하는 침묵의 숲, 고운사 사찰림
개발되고 베어지는 보호지역
그린피스의 생물다양성 캠페이너가 된 후, 전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보다 파괴된 모습을 더 많이 보았습니다. 백두대간 보호지역 중 하나인 민주지산의 벌채 현장, 천연보호지역임에도 누군가가 인공조림을 하기 위해 숲을 벤 모습. 심지어는 조선시대부터 보호지역이었지만, 동계 올림픽을 위해 스키장이 건설된 가리왕산을 차례대로 봐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곳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리입니다.
나무가 베어진 지 얼마 안 된 곳에는 새나 곤충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베어진 나무 사이, 포크레인이 지나간 자국 위에 서서 눈을 감으면, 모든 생명과 소리가 빠져나간 우주 한가운데 남겨진 듯, 공포에 가까운 공허와 고독에 휩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운사 사찰림 프로젝트는 제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산불에서 살아남은 무수한 생명이, 상처를 뚫고 자라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노래하는 침묵의 숲, 고운사 사찰림
지난 2025년 3월, 역대 최악의 산불이 천년고찰이자 야생동물보호구역인 고운사의 사찰림을 덮쳤습니다. 사찰림 약 97%가 피해를 입었고, 경내는 전소되었습니다.
통상 이런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산불 피해를 입은 숲을 모두 베어내고 새 나무를 심습니다. 그러나 고운사의 주지 등운스님은 그대로 놔두기로 결심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 하나인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의 뜻에 따라, 과거 아름다운 소나무숲을 인위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자연이 선택한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자연이 활엽수를 택하면 활엽수가, 소나무를 택하면 소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놔두기로 한 것입니다.


주지스님의 선택 이후, 숲의 침묵은 서서히 깨지고 있습니다.
검게 타버린 땅바닥에서 초록색 맹아가 올라왔습니다. 산불 당시 땅 속에 숨어 살아남은 유충이 껍데기를 벗고 매미로 태어나 날개짓하며 울고 있습니다. 어린 풀을 찾아온 새들의 지저귐이 하루하루 더해졌습니다. 모니터링 결과 사찰림에는 너구리와 노루 등 일부 포유류 동물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산불에서 목숨을 건진 생명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방치가 아닙니다.
사람의 눈에 불탄 숲은 폐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생태계의 시작입니다. 불에 탄 나무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비옥한 토양에 날아온 씨앗이 싹을 터 새로운 나무가 자랍니다. 국립생태원 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처럼 온대 몬순 기후에서는 숲을 자연에 맡겼을 때 대부분 참나무류를 중심으로 한 낙엽활엽수림으로 변해 가는 뚜렷한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 한반도 주요 낙엽활엽수림인 신갈나무군락의 구조적 특성 및 천이 예측)
새로 나는 숲은 이전의 소나무 숲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다양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생명의 보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030년까지 훼손된 자연의 30%를 복원하고, 보호구역을 확대하여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려는 UN생물다양성 협약의 방향과도 일치합니다.

그린피스는 안동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서울환경연합과 생명다양성재단 등 국내 주요 환경단체들과 함께 고운사 사찰림의 자연복원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연 천이(일정한 지역의 식물 군락이 시간이 지나며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가는 현상)가 어려운 지역에 한해서는 지역에 자생하는 씨앗을 심는 등 최소한의 인위적 노력만 기울이려 합니다. 이를 위해 국내 식생, 동물, 음향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숲의 자연적인 회복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10년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를 숲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은 방치가 아닙니다. 천이의 현장을 직접 조사하고 사찰림에 오고가는 동물을 촬영하는 등 오랜 기간 동안 관찰하며 누적되는 기록은, 관행처럼 이루어진 대규모 인공조림 대신 자연복원을 고려하고 선택할 선례가 될 것입니다. 보호지역의 숲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전할 정책의 근거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 고운사 사찰림을 넘어 대한민국 주요 숲들을 보전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는 방치가 아닌, 더 나은 생태계를 위한 기다림입니다.

침묵의 숲이 다시 노래하도록.
여러분의 후원은 회복의 기록, 분석, 공개, 정책의 전환까지 이어지는
생태계 보전을 위한 선례를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