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린피스에서 일하는 이유
그린피스 한정희 캠페인 전문위원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첫 캠페인을 시작한 2015년, 해양 캠페이너로 합류해 현재는 캠페인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정희 전문위원. 지난 11년 동안 그린피스 안팎에서 환경을 위한 일을 이어오며, 그린피스와 특별한 인연을 쌓아왔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변화와 도전, 그리고 그린피스로 다시 돌아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나를 ‘극J’에서 ‘극P’로 만든 그린피스
사실 그린피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15년보다 더 전이었어요. 2010년, 서울사무소 개소를 앞두고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죠. 당시 그린피스가 진행하던 참치 남획 반대 캠페인에 프리랜서 리서처로 참여했었어요.
당시에는 그린피스처럼 국제적인 규모로 활동하는 환경단체가 국내에 없었어요. 이런 단체라면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 역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느꼈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린피스는 제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원래 저는 항상 계획에 맞춰 생활하는 사람이었어요. 어릴 때는 전날 밤에 책가방을 미리 싸 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자던 아이였죠. 그런데 캠페이너로 일하면서는 임기응변이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지금은 완전히 ‘극P’ 성향이 됐어요. 일단 시도해 보고, 잘 안 되면 바꿔 보고.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집, 그린피스
그린피스를 떠나 있는 동안에는 제주도에서 지냈어요. 워낙 자연을 좋아하고 야생동물 보전을 공부하기도 해서, 제주에서도 프리랜서로 여러 환경단체와 함께 일했죠.
다회용컵을 대여하는 사회적 기업도 설립했어요. 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수요도 점점 늘어났죠. 그런데 2023년 말, 일회용품 규제가 완화되자 순식간에 다시 일회용품을 사용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다회용기 시스템이 아무리 잘 자리 잡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더라도, 정책의 변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했어요. 그래서 다시 그린피스로 돌아오게 됐죠. 그린피스는 정책을 바꾸는 단체니까요.
처음 서울사무소에서 일할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요? 아마 조직의 규모와 인력 구성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가 캠페인도 하고, 언론 대응도 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모두 해야 했죠. 지금은 인원도 늘고 업무도 세분화되면서 훨씬 전문적인 조직으로 성장했어요.
반면 변하지 않은 점은… ‘혼란’과 ‘열려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우선한다’는 점이에요. 그린피스는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조직인 것 같아요.

Save the Whales에서 Saved the Whales로, 고래를 지켰다!
캠페인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역시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죠. 캠페이너는 하루 24시간 캠페인 주제만 생각하고, 외부 상황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지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작은 성취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린피스는 오랫동안 고래 보호 캠페인을 진행해 왔는데요. 원래 캠페인 슬로건은 “Save the Whales(고래를 지켜라)”였어요. 그런데 캠페인 끝에 정부가 과학 포경을 금지하는 큰 성과를 거뒀죠. 그때 잠시 슬로건을 “Saved the Whales(고래를 지켰다)”로 바꾸기도 했어요. 이런 기억들이 계속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후원이 정말 변화를 만들까요?
저는 정책을 바꾸는 일을 해요. 현재의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국내외 사례를 조사하죠. 관련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살펴봐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언론 활동도 하죠. 이 모든 과정에는 정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다른 분야에 후원할 때는 내가 얼마를 후원하면 어린이 몇 명에게 도움이 되고, 몇 명이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환경 캠페인은 그렇지 않아요. 정책이 바뀌고 기업이 변화했다는 것이 실제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숫자로 명확하게 보여드리기가 어렵죠.
하지만 이렇게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준비해 왔기에,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을 때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리고 복잡한지 이해해 주시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응원해 주시는 후원자님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후원자님이 지켜주시는 독립성이 우리의 힘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그린피스에서 일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 후원자님들의 후원만으로 운영되며 독립성을 지킨다는 원칙이에요.
제가 직접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 많은 단체와 기업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경험했어요. 그런데 지원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들을 계속 비판하는 단체를 지원하기는 쉽지 않겠죠. 그러다 보니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으면 그들의 정책이나 방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정말 어려워요.
저는 그린피스에서 일하면서 여러 자문회의에 참석하는데, 보통 자문비를 지급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 조직의 규정상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문비를 받지 않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쓰고 나와요.
그 문구를 쓸 때마다 생각해요. ‘나는 정말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었구나’ 하고요.

함께 긴 변화의 여정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5년 동안 꾸준히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동적인 일이에요. 그만큼 기대와 믿음, 신뢰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뜻이니까요.
기업이나 정부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길고 지난한 과정 속에서 ‘이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닌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고 막막해질 때가 많아요. 그러다가 현장에서 후원자님들의 응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엄청난 힘을 얻어요. 적어도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이 한 사람에게는 분명히 영향을 미쳤구나, 우리가 함께 변화를 만들고 있구나 하는 보람을 느끼죠.
제가 그린피스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큰 조직과 작은 조직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큰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조직력과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린피스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국제 환경단체로서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고,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누구보다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인데도,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서명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우리는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책을 바꾸고,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답니다. 멀고 험난한 길이지만, 여러분 덕분에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더욱 힘을 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15년 전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
“앞으로도 계속 불확실한 일들이 많을 거야. 하지만 불확실성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
그린피스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시도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곳이에요. 변화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죠.
‘그린피스는 네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힘을 더해 주는 곳이야.’
캠페이너로 일하면서 이런 믿음이 제게 참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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