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휩쓸고 갔다. 중부 비사야스 군도 동쪽을 강타한 이 태풍으로 6천여 명이 사망하고, 1천 7백여 명이 실종됐다. 필자는 그해 UN 기후변화협약 총회에 필리핀 대표로 참석했다. 그리고 기후변화의 영향에 관한 연설을 하려다 전 세계인 앞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극단적인 기상 이변이 바로 고향을 덮쳤기 때문이다. 친구와 친지들은 돌아오지 않는 가족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다.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 중에는 필자의 동생도 포함돼 있었다. 핵무기나 전쟁만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로 혼란스러워진 날씨도 그에 못지않은 재앙이 됐다.

초대형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타클로반 일대를 휩쓸고 간 모습 <초대형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 타클로반 일대를 휩쓸고 간 모습>

4년이 지난 지금도 비사야스 군도는 하이옌의 피해에서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해마다 평균 20개의 태풍에 맞서야 한다. 이 가운데 5개는 하이옌 못지않은 잠재적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세계 곳곳에서 극심한 혹서와 한파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올해 초에는 초대형 태풍이 미국 동부를 강타했고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의 기록은 해마다 갱신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2017년 역시 ‘가장 더운 해’ 중 하나였다.

물론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 겨울 찾아온 강력한 한파의 원인 역시 온난화로 따뜻해진 북극의 제트기류에 있다고 들었다. 과학자들은 이 추세대로라면 전 세계 어디서든 하이옌과 같은 강력한 태풍이 발생하는 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뉴노멀(New Normal)’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다행인 것은 모든 사람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영국, 캐나다,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국가가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퇴출시키고 있다. 대신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한다. 애플, 스타벅스, 구글과 같이 발빠른 기업은 이미 사용 에너지의 10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그린피스 활동가가 샌프란시스코 애플스토어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캠페인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그린피스 활동가가 샌프란시스코 애플스토어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캠페인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한국도 조금씩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2015년, 한국은 ‘의도적인 감축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BAU)’ 대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7% 감축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더 야심찬 목표를 위해 ‘2030 로드맵’을 보완하는 공론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탄소배출권을 사들이는 대신 국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축소하는 부분이 논의되고 있다고 들었다. 필리핀처럼 기후변화 취약국가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이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만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기후행동추적(CAT)이 지적하듯이, 금세기 말까지 세계 평균 온도 상승폭을 1.5도 내로 잡아두려면 한국의 37% 감축 목표보다 훨씬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상승폭 1.5도 이내’는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합의된 목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이유다.

가동중인 충남 당진 석탄화력발전소<가동중인 충남 당진 석탄화력발전소>

선진국들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과제를 새로운 성장 동력과 기술 개발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미 기술발전과 시장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는 2017년 부터 2040년까지 에너지산업에 투자될 10조 달러 중, 74%가 재생가능에너지 투자일 것으로 예상했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투자되는 예상 비중은 14%에 불과했다. 세계의 산업구조와 경제구조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원전과 화석연료를 포기하고, 기후변화 대응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때 미래의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의 하나된 목소리가 중요하다. 현재 기후변화에 취약한 지역 사람들이 기후변화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린피스는 지난 몇 년 간 스위스 할머니들, 콜롬비아 청년들, 네덜란드, 페루, 파키스탄, 뉴질랜드의 시민들과 함께 정부와 기업들에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해 왔다. 이젠 한국 시민이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할 차례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기후행진에 참여한 아이들<스웨덴 스톡홀름 기후행진에 참여한 아이들>

기후변화는 물에 잠기고 있는 태평양 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분명해지고 있다. 하이옌 때문에 필자가 겪었던 고통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았으면 한다. 제2의 하이옌을 막아내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 한다.

하이옌 태풍 4주년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세레모니<하이옌 태풍 4주년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세레모니>

그린피스와 함께 기후변화를 막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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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옙 사노(Yeb Sano) , 그린피스 동남아시아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