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을 막을 천연 방패막, 생물다양성
지난 3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국토를 불태웠습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이번 산불. 앞으로 이런 대형 산불이 더 자주, 더 크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산불을 막는 해답이 숲의 ‘생물다양성’에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그린피스가 5월 22일 ‘생물다양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2025년 3월 22일 오전 11시,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서 산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묘객 한 명이 산소 주변 마른 가지를 정리하려 라이터를 켠 것이 발화 원인이었습니다.
그 작은 불꽃은 순식간에 거대한 산불로 번져나갔습니다.
산불은 초속 25m의 강력한 돌풍을 타고 청송, 영양을 지나 영덕까지 무서운 속도로 번졌습니다.
초속 25m는 시속 90km에 달하는 속도입니다. 웬만한 자동차의 주행 속도만큼 빠른 바람이었습니다. 이 돌풍 탓에 산불은 무려 78km 떨어진 지역까지 단 1~2일 만에 도달했습니다.
이번 산불로 인해 약 104,000ha의 산림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면적(약 1,000만ha)의 약 1%에 해당합니다.
안타깝게도 31명이 목숨을 잃고, 4천여 채의 주택이 전소됐습니다. 생태계 전반에 걸친 피해 규모는 정확히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왜 이렇게 산불 피해가 컸을까요?
산불 피해는 주로 식생과 기후, 인간 활동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번 산불에서는 특히 강력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가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송진에 포함된 테르펜 등 정유 성분이 많아 불에 매우 잘 타는 나무입니다.
특히 피해가 컸던 청송 지역은 그 이름처럼 소나무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나무도 이런 극단적인 조건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나무 종류가 정말 산불 피해에 영향을 미칠까요?
그린피스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폴란드 아담미츠키에비치 대학교 연구진과 함께 산불 시뮬레이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본 시뮬레이션은 단순화된 지형과 조건에서 진행된 것이므로 실제 산불 상황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침엽수의 산불 피해 양상은 실제와 유사하게 나타났으며, 현실 적용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정밀 분석과 검증이 필요합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두 가지 숲을 비교했습니다.
하나는 잣나무 한 종류로만 이루어진 '침엽수 단순림', 다른 하나는 잣나무와 소나무, 굴참나무와 신갈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섞인 '혼합림'입니다.
두 숲에 있는 나무들은 정유 함량과 같은 화학적 특성을 배제하고, 나무와 불의 형상적인 영향만을 정밀하게 재현했습니다.
의성 산불 당시와 같이 산림 연료 습도가 낮은 건조한 상황에서 산불이 일어난다면, 두 숲은 어떤 차이를 보일까요?
연구 결과, 침엽수 단순림은 산불 시작 2시간 후 전체 숲의 30%가 불탔습니다. 그러나 혼합림은 약 20%만이 불에 탔습니다.
처음엔 혼합림이 더 빠르게 불이 붙는 듯 보였습니다. 혼합림은 키가 다른 나무들이 많아 낮은 나무에서 높은 나무로 불길이 쉽게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무 꼭대기로 불이 옮겨 붙는 ‘수관화’ 현상은 혼합림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반면 침엽수 단순림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처음 불은 천천히 확산했지만, 균일하고 밀집된 수관으로 인해 곧바로 수관화가 발생했고, 결국 대부분의 나무가 타버렸습니다.
놀랍게도 혼합림 내의 잣나무들은 같은 잣나무라도 단순림보다 훨씬 적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는 다양한 종이 섞인 숲이 개별 종의 산불 피해까지 줄일 수 있음을 뜻합니다.
영상을 확인한 이시영 강원대학교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순 사면형 지형(단순 상향 경사) 조건에서 산불의 확산 양상을 재현한 것”이라며 “혼합림 내 활엽수의 경우, 실제 지난 3월 산불 당시에는 잎이 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처럼 잎이 난 조건과는 차이가 있어 정확한 비교에는 한계가 있으며, 보다 정밀한 추가 분석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산림 연료 습도가 낮은 환경에서 침엽수림의 수관층으로 화재가 옮겨붙는 시뮬레이션 결과는 실제 산불에서 나타난 주요 양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도 같은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그린피스가 방문한 주왕산 국립공원 현장에서는 침엽수림이 대부분 전소됐으나, 혼합림이나 활엽수림은 상대적으로 안전했습니다. 숲 자체가 천연 방화림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실제는 어떨까요?

현장에서도 같은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그린피스가 방문한 주왕산 국립공원 현장에서는 침엽수림이 대부분 전소됐으나, 혼합림이나 활엽수림은 상대적으로 안전했습니다.
숲 자체가 천연 방화림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숲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다양한 수종이 혼합된 숲은 특정 지역의 기후와 지형, 생태적 조건에 맞춰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특히 100년 이상 자라난 숲은 다양한 종들이 균형을 이루는 '극상림' 단계에 이르며, 이 숲은 산불뿐 아니라 홍수, 가뭄 등 다양한 재난에도 강한 저항력을 보입니다. 또한 인간에게 깨끗한 물과 공기 등 필수적인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계획적으로 조성하기 어려운 이런 자연적 숲은 개발, 관광, 인위적 조림 등 여러 인간 활동에 의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보호지역은 생태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으며, 산불 진화를 목적으로 한 산림도로(임도) 건설 등으로 생태계가 파편화되어 결국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보호지역의 온전한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사회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산불과 같은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가장 효과적인 자연 방패는 바로 보호지역입니다.
기후재난으로부터 우리를 막을 천연 방패막, 숲
건강한 생태계가 자라나는 보호지역을 보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