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을 덮친 폭우, 빗속에서 가장 먼저 구한 것
폭우 속 건져 올린 단 하나
지금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리고 순식간에 가슴까지 물이 차오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딱 한 가지만 챙길 수 있다면, 무엇을 챙겨야 할까요?
“강아지 삼식이 하나 살렸어요.”

그린피스가 만난 예산 성2리의 폭우 피해자 김보섭 님은 유일하게 구해낸 생명, 반려견 삼식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괘씸하다는 듯 삼식이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선 숨길 수 없는 안도감이 함께 보였습니다.
이른 새벽 마을을 덮친 폭우
평소라면 아직 잠에 들었을 시각인 새벽 5시 반, 빗물이 순식간에 허리까지 차올랐습니다. 높은 건물 없이 논밭이 펼쳐진 마을을 향해 거대한 물이 쏟아져나오는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김보섭 님은 장난스레 말하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아, 사람이 이래서 죽는구나 싶었어요.”
오엽진 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 안의 살림들과 가전 가구들을 말리고 있는 집 앞 마당, 그늘 한구석을 차지한 작은 생명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오엽진 님이 폭우 속에 안아 들어 유일하게 구한 것은 4살 된 반려견 ‘꼬식이’였습니다.

비정상적인 기후재난이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무엇을 남겨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폭우가 지나간 흔적

충청남도 예산의 한 마을, 기록적인 폭우를 버티지 못한 제방이 터졌습니다. 마을에 감당할 수 없는 빗물이 순식간에 덮쳤습니다. 집집마다 가슴 높이에 흙이 묻어 있었는데, 바로 이 높이까지 물이 들어찼다는 흔적이었습니다.
집 안은 금세 엉망이 되었고, 빗물에 둥둥 떠버린 무거운 가전들이 천장 지붕을 때려 집은 지붕조차 망가졌습니다. 벽지는 모두 뜯겨나갔고, 곰팡이는 이미 집 안에 퍼져 있었습니다.
집 바깥에는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건초 더미와 짚단, 유리병, 화투 몇 장, 짝 잃은 슬리퍼가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폭우는 멈췄지만, 재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재난은 뉴스보다 오래 간다

폭우가 내렸던 날을 다시 회상해 봅니다. 실시간 속보로 어느 마을이 물에 잠겼고, 시설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실종 및 사망자 수가 야속하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파랗습니다. 재난 이후의 삶은 속보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쑥대밭으로 변한 마을에 상처 입은 사람들만이 남겨집니다.
한국은 과거부터 폭우, 장마, 태풍과 같은 풍수해 피해가 컸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그 피해는 파괴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2022년 8월 서울에는 역대 최고치의 집중 호우가 있었고, 2023년에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해 매년 여름철 기후재난을 겪고 있습니다.
김보섭 님은 낮엔 집으로 돌아와 복구 작업을 하고, 밤엔 대피소로 사용되고 있는 마을 회관에서 잠을 청합니다. 천장을 때려 부수는 소리에 잠을 설쳤던 그날 새벽 이후로 그는 여전히 대피 중입니다.

그린피스 시민대응단에게 김보섭 님은 이렇게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씀하셨지만, 단 한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이리저리 나뒹구는 잔해들 사이에서 모판을 찾으면 한 구석에 모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년 농사를 지을 때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주민들은 큰 수해를 입었음에도 다음 농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려 집이 잠기고 모든 것을 잃어도 삶은 멈추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

그린피스 시민대응단이 예산에서 만난 김보섭 님과 오엽진 님은 혼자 농사를 짓는 독거 가구입니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수해를 입은 밭에서 비닐을 걷고, 작물을 뽑아내고, 집 근처를 청소하는 일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버거운 일입니다.
김보섭 님은 작년 위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로부터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아침이면 이렇게 매일 집에 나오고 계셨습니다. 갈퀴를 들고 마을의 진흙과 쓰레기를 긁어내는 건 건강한 시민대응단 몇 명이 달려들어도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1박 2일의 긴급 대응 교육을 받고, 재해 현장 경험이 있는 그린피스 시민대응단과 함께 그린피스 캠페인팀은 폭염 속에서 안전 수칙을 지키며 예산 성2리의 두 가구의 수해 복구를 돕고, 피해를 기록했습니다.
무시할 수 없는 이상기후의 경고
매년 매 계절 기후재난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후재난 대응팀은 산불, 폭우 등 다양한 재난 현장을 찾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올해가 가장 심각했다는 증언 그리고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입니다.
폭우가 지나간 뒤 날씨는 맑아 보입니다. 마치 재난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드넓게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고 있자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집 안은 여전히 빗물에 젖어 있고, 벽지는 곰팡이로 뒤덮여 있으며, 몇 달간 정성을 쏟아부은 밭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이상기후를 단순한 자연재해나,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과도한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의 결과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린피스는 이번 폭우 피해 현장을 직접 찾아 피해를 기록하고, 복구를 지원하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목소리를 모으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번 피해만 복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후재난 대응 시스템 구축, 기후위기 대응 중심의 정책 전환, 그리고 장기적인 회복을 위한 체계를 정부와 지역사회에 요구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무너진 집 앞에서 내년 농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후재난 앞에서 더는 개인의 힘만으로 버티게 해서는 안 됩니다.
🌱 당신의 연대가 그린피스의 기후재난 대응 캠페인을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