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라! 해외석탄!] 폭주하는 쌍두마차, 두산중공업과 한국전력의 고삐를 쥐어야 하는 이유
"화석연료 문명이 붕괴하는 시점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손실을 보는 국가는 한국이다. 지금 당장 준비하지 않으면 자식, 손자 세대에는 한국이 이류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누가 이런 무서운 경고를 했을까요? 바로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3차산업혁명』의 저자이자 20년 전부터 유럽연합(EU)의 그린 뉴딜 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제레미 리프킨이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세계적인 석학의 경고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2조4천억 원.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출입국자 수가 95% 감소하면서 국내 여행 업계가 입은 피해 규모입니다. 이 금액은 이번 팬데믹과는 아무 상관없이 수년간 석탄 발전에 몰두하다가 재무위기에 빠진 두산중공업이 공적 금융기관들로부터 지원받게 된 금액이기도 하죠. 우리 정부는 석탄 발전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눈이 멀어서인지 외부의 엄중한 경고는 전혀 들리지 않나 봅니다.
'내 모든 걸 다 잃는대도… 오직 너만 바라볼 거야'
공적지원금을 받게 된 두산중공업은 4월 말 제출한 자구안에서 석탄 발전 부문의 구조조정 계획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스터빈 발전 사업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추진하겠다고 했을 뿐이죠. 이보다는 최근 회사 대표가 주주들에게 직접 밝힌 계획에서 이 회사가 석탄 발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30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최형희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기존 주력 시장의 매출을 최대화하면서 신규사업 시장에 접근을 모색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두산중공업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기존의 주력 사업은 바로 위기의 원인이었던 석탄 발전입니다.
더 큰 문제는 두산중공업이 추진하려고 하는 석탄 발전 사업이 회생은커녕 손실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두산중공업이 최근 수주한 석탄 발전소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는 인도네시아 자와 9, 10호기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계약입니다. 정부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 사업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시행한 결과, 공사 과정에서 계약 금액 약 1조9천억 원의 32%에 이르는 6천억 원 가량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설계에서 시공까지 이뤄지는 EPC 계약의 특성상, 시공사는 공사 중에 비용이 늘어나더라도 추가 비용을 발주처에 청구할 수 없어 고스란히 자체 손실로 떠안아야 합니다. 자와 9, 10호기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면 올해 지원받은 공적 자금의 4분의 1을 공중에 태워버리는 꼴이 됩니다.
자와 9, 10호기 사업 이전부터 비슷한 문제가 벌어져 왔습니다. 두산중공업이 공사를 진행하고도 발주처로부터 받지 못한 금액인 미청구 공사 금액은 2019년 말 기준으로 1조3천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35%에 육박하는 상황입니다. 두산중공업의 기존 주력 시장인 석탄 발전 산업은 더 이상의 매출을 기대할 수 없는 사양 산업이며, 이에 대한 집착은 잃을 게 너무 많은, 그릇된 짝사랑일 뿐입니다.
'한국전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자와 9, 10호기 저가 수주로 인한 손실은 두산중공업 혼자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본 KDI 조사는, 두산중공업의 재무 상태를 고려했을 때 초과되는 공사 비용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자와 9, 10호기 사업을 발주한 사업주 중 '이 회사'는 1400억 원의 손실을 부담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회사는 어디일까요? 바로 한국전력입니다.
왜 한국전력이 두산중공업의 저가 수주와 관련하여 손해를 보는 걸까요? 먼저 자와 9, 10호기 사업의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면, 한국전력은 현지 국영 전력 회사의 자회사인 인도네시아 파워 및 석유 화학 기업 바리토퍼시픽과 합작 회사를 세우고 600억 원을 출자하는 지분 투자를 했는데요. 이 합작 회사는 석탄 발전소를 건설할 시공사(두산중공업)와 건설 후 25년 동안 발전소를 운영할 발전사(한국전력, 중부발전)를 각각 선정해 계약합니다. 또한 해당 사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 기관(한국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KDB산업은행 등)에 보증을 서는 역할도 합니다. 지분 투자자는 사업주로서, 해당 사업이 손실이 났을 경우 지분 비율만큼 그 손실을 부담해야 할 책임이 있죠.
시공사와 맺는 EPC 계약에서 계약 금액을 초과하는 공사비는 통상적으로 시공사가 자체 부담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공사가 추가 금액을 부담할 재정적 능력이 부족한 경우, 공사를 중단하고 새로운 시공사를 선정하여 완공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기존 시공사를 통해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사업주는 부득이하게 추가 공사비를 지원하게 되는 것이죠. 자와 9, 10호기 관련 합작 회사 구성원 중 신용 등급과 자금 조달 능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전력이 우선적으로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며, 정부조사기관인 KDI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점점 더 멀어지나봐'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전력은 자와 9, 10호기 사업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최근 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러한 목표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실현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고로 IEEFA는 작년 9월 두산중공업의 몰락을 예견하기도 했었죠.
IEEFA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인도네시아의 전력 수요는 자와 9, 10호기 사업 추진이 결정된 2015년보다 평균 34.2% 낮아졌습니다. 과다한 수요 예측에 기반해 전력 공급을 늘려온 결과, 현재 인도네시아의 전력 공급은 수요를 크게 웃도는 상황입니다. 보고서는 특히 자와 9, 10호기가 건설될 지역인 자와-발리섬의 전력 예비율은 곧 41.5%에 달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전력청(PLN)이 국가 전력 공급 계획에서 밝힌 현지의 적정 예비율 25~30%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비율입니다. 더욱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기 침체로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률은 -0.4%까지 하락할 수 있으며, 전력 수요는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제는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PLN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지며, 자와 9, 10호기 사업주인 한국전력에게도 재무상 악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PLN은 그동안 발전설비 건설에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 일본, 중국 등 주요 민간 발전 사업자에게 유리한 전력 구매 계약 조건을 제공해 왔는데요. 그 대표적인 것이 실제 전력 생산 여부와 관계없이 전력 구매 대금을 지급하는 의무 구매 조항(이른바 Take-or-Pay)입니다. 그런데 전력 공급에 비해 수요가 늘지 않게 되자, 매출이 늘지 않는 PLN로서는 전력 구매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 것이죠.
인도네시아 정부와 PLN 이 민간 발전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민간 사업자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며 계약 조건 변경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최근 현지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MEMR) 전력실장 리다 물리야나(Rida Mulyana)는 4월 초 인도네시아 발전 사업의 전 력구매 계약상 의무 구매 조항은 이행하기 어려워졌고, 민간 사업자들과 PLN 사이의 계약을 재협상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바 있어 상황 변화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설령 PLN과의 의무 구매 조항이 변경되지 않더라도, 인도네시아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단가가 저렴해짐에 따라 석탄 화력 발전의 경쟁력이 상실될 가능성도 큽니다. 영국의 금융 싱크탱크인 카본 트래커 이니셔티브(Carbon Tracker Initiative)는, 인도네시아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단가가 2028년에는 석탄 발전보다 저렴해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자와 9, 10호기는 25년간 한국의 한국전력과 중부발전이 운영하는데,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될 경우 2024년 완공 후 4년 만에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는 중대한 사업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PLN의 압박이 지속될 것은 자명합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석탄 발전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고 투자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러 국가에서 탄소세와 탄소 거래제가 논의를 거쳐 시행됨에 따라 대량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석탄 발전 산업에 대한 투자외 비용이 점차 증가할 것입니다.
전 세계 전력 시장의 과잉 설비 위험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와 글로벌 에너지 모니터(Global Energy Monitor), 시에라 클럽(Sierra Club), 에너지 및 청정 대기 연구 센터(Centre for Research on Energy and Clean Air, CREA)가 2019년 세계 석탄 발전소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의 세계 석탄발전소 가동률은 전년에 비해 51%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의 에너지 개발에서 보듯 계획상 수요와 실제 수요의 격차, 유치 국가의 재생에너지 개발 정책 변경 등으로 인해 석탄발전소는 결국 좌초자산화할 것이며 이는 시간 문제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석탄 발전량을 80% 줄여야만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C 이하로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이에 UN은 2020년을 세계적으로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 계획을 끝내는 해로 만들 것을 촉구했죠. 두산중공업과 한국전력은 이러한 환경적 피해뿐만 아니라 뻔히 보이는 재무상 손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석탄 사업을 지속해서는 안됩니다.
그린피스는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해외 석탄발전 투자 정책과 석탄 발전 기업에 대한 불투명한 지원에 맞서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린피스와 함께해 주세요.
1편 보러 가기: [멈춰라! 해외 석탄!] 전 세계 1위 해외 석탄 투자국, 중국을 막아라
2편 보러 가기: [멈춰라! 해외 석탄!] 일본 메가 뱅크를 움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