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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모듈원전(SMR)의 진실

글: 장마리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소형모듈원전(SMR)이 기후위기의 대안이자 사용후핵연료 폐기물과 사고 위험을 억제할 것이란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성, 안전성, 그리고 기술성의 한계를 바로보면 이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소형’ 원전도 위험하다

원전은 끊임없이 대형화돼 왔습니다. 규모가 클수록 경제적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크기가 작고 효율이 높다는 이른바 소형모듈원전(SMR)이 등장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SMR은 300MWe 규모 이하의 소형 원자로입니다. 과거 미국의 항공 모함, 핵 잠수함에 적용되던 기술로, 최근에는 전력 생산을 위한 목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 최신 원전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로 ‘소형’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공장에서의 대량 제작 및 조립을 통해 건설 기간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원전 규모가 작아질수록 건설 단가는 높아집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이 지난 40년간 SMR 상용화를 위해 수십 조 원을 투자하고도 뼈 아픈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2016년, 사고 30주년을 맞은 체르노빌 원전의 모습.

전 세계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SMR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대형 원전이 야기한 체르노빌의 막대한 사고 피해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기대는 2017년 미국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의 파산으로 좌절로 바뀌었습니다.

세계 원전 절반 지은 130년 전통의 기업, 웨스팅하우스의 파산

웨스팅하우스는 SMR 선진 기술로 600MWe 규모의 SMR 상용화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경영진은 경제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1000MWe 규모로 용량 증대를 시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 보글(Vogtle) 원전 등의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잦은 설계 변경과 건설 기간 지연으로 인한 63억 달러(약 7조 원)의 손실을 감당하지 못 해 기업 매각의 결과를 맞게 됩니다.

문제는 SMR의 상용화 가능성을 가장 높였다고 평가받는 미국 뉴스케일(Nuscale)이 웨스팅하우스의 전철을 밝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영진은 웨스팅하우스와 같은 경제성을 이유로 50MWe에서 77MWe 규모로 용량 증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1kW당 건설 단가가 2003년 1,718달러(약 194만 원)에서 2020년 8,500달러(약 964만 원)로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SMR은 수십, 수백 기를 건설해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소형이 소형이 아닌 셈입니다.

그린피스가 2015년 세계원전산업회의가 개최된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원전 투자는 지구를 희생시킨다’라는 메시지의 배너를 들고 비폭력 직접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SMR 짝사랑, 허상 위에 쌓은 모래탑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6월 24일 보도 자료를 통해 “뉴스케일의 SMR이 설계 인증을 획득하고 아이다호 주 국립연구소 내에 발전소 건설을 확정했다”며 “한국도 주저할 틈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부는 뉴스케일의 SMR 상용화를 ‘조건부’ 승인했습니다. 경제성뿐만 아니라 안전성 측면에서도 지난 40년간 극복하지 못 한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케일이 안전성을 지적받은 핵심 설비 문제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실증로 건설을 위한 부지 선정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실증로는 신기술을 차용한 원자로가 기술적·경제적으로 실용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만든 실험형 시설입니다. 언제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원전의 부지를 확보하는 길은 멀고도 험할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투자한 소형모듈원전, 상용화 가능할까?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지난 6월 테라파워(TerraPower)의 소듐냉각고속로(SFR)에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SFR은 고속로의 열을 물 대신 소듐으로 식힙니다. 그렇다면 소듐을 사용하는 원전은 얼마나 안전할까요? 소듐은 공기와 수분에 노출됐을 때 폭발과 화재 위험이 커, 과학자들은 이를 ‘고속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95년 일본 몬쥬 고속로 화재 사고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6년 몬쥬 고속로의 폐로를 결정했지만, 현재도 연간 약 2,000억 원의 운영비가 투입됩니다. 소듐과 함께 굳어진 핵연료를 외부로 꺼낼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 11조 원의 투자가 커다란 핵폐기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린피스가 1992년 일본 몬쥬 고속로 연료 주입을 위해 플루토늄을 운반하는 프랑스 배를 가로막는 비폭력 직접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소듐의 안전성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실증로 건설을 위한 부지 선정 문제 역시 남아 있습니다. 일각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실증로 건설과 수십 년이 소요될 수 있는 안전성 검증은 SMR의 상용화의 가장 큰 난제 입니다.

기후위기 리스크에 전면 노출된 원전

이처럼 명백한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는 소형모듈원전(SMR)이 기후위기의 대안이라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습니다. SMR이 신속히 상용화되면 석탄 화력 발전소를 대체해 2050년 탄소 중립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원전은 원자로의 열을 물로 식혀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취수가 용이한 강가와 해안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미국 신용 평가사 무디스(Moody's)는 미국 내 원전이 대부분 기후위기로 인해 증가하는 폭염, 태풍 등의 기상 이변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즉 기후위기가 악화할수록 극심한 기상이변에 노출되어 원전의 취약성도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내 원전 6기가 지난해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가동이 정지되기도 했습니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조사 결과 고리 3·4호기 정지는 강풍을 타고 날아온 바닷물 염분이 전력 설비에 흡착돼 불꽃이 튄 것이 원인이며, 신고리 1·2호기는 송전탑에 설치된 전선이 강풍에 심하게 흔들려 가동정지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2020년 7월 5일, 플로리다주의 터키포인트(Turkey Point) 원전 4호기가 호우로 인해 터빈발전기가 멈춰 원전이 불시 정지됐는데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터빈발전기의 방수처리 결함과 발전기 코일의 습기노출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2020년 8월 10일, 아이오와주의 듀안 아놀드(Duane Arnold) 원전이 폭풍에 냉각탑이 파손되고 외부원전이 차단되며 불시 정지됐습니다. 이런 아찔한 사고가 유럽과 미주에서 연달아 발생한 것이 무디스의 원전 기후 리스크 분석의 배경이 됐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원전을 건설하자는 주장은 불난 집에 화약을 설치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전, 기후위기 대안 아니라 더 큰 위협

영국 서식스대학교와 독일 국제경영대학원(ISM) 연구팀은 과학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게재한 논문에서 “원전에 대한 대규모 신규 투자는 재생에너지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능력과 이득을 억제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린피스가 불가리아의 한 광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메시지가 새겨진 태양 모양의 천막을 펼치고 비폭력 직접 행동을 진행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대안이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는 원전이 아닌 재생에너지입니다.
기후위기라는 인류 생존의 위협을 또 다른 위협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원전은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과거의 수단일 뿐입니다.

결국 SMR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민간 투자를 이끌기 위한 과장된 해석에 불과합니다. 언제 회복 불가능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원전으로 우리의 안전과 영속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보다 신속한 탈원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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