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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태운 것은 석유만이 아니다 : 공기·물·바다까지 무너지는 중동

가자에서 테헤란까지 - 전쟁이 파괴한 삶의 조건들

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3월 8일, 테헤란에 검은 비가 내렸다.

지난 3월 8일 이스라엘군이 이란 테헤란 일대 석유 저장시설 네 곳과 송유 시설 한 곳을 공습했다. 약 900만 명이 사는 이란의 수도는 검은 연기로 뒤덮였고, 석유 연소로 발생한 중금속, 황산화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등이 섞인 빗물이 쏟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검은 산성비가 이란 시민에게 위험하다고 공식 경고했다. 이란 적십자사는 주민들에게 실내 대피를 권고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난 2월 28일 이후 50여 일이 지났다. 이란과 레바논, 가자지구 등 곳곳에서 환경 피해가 쌓이고 있다. 영국 분쟁환경감시기구(CEOBS)는 3월 초까지 이란-이스라엘-걸프 12개국에서 300건 이상의 환경 피해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누적되고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중동 전역에서 미사일과 드론에 의해 수십 곳의 정유시설, 유전, 가스 처리 시설, 항만이 피격됐다고 집계했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WHO는 각각 성명과 경고를 발표했고, 유엔 사무총장에게는 에코사이드(생태계 대량 파괴, 생태 학살) 관련 진정서가 제출됐다.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인종학살과 환경 파괴, 미국-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전쟁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은, 중동 전역의 생태계와 민간인의 삶의 기반을 동시에 무너뜨리고 있다.

테헤란의 석유 저장 시설에 대한 공격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심각한 건강 피해를 초래할 것입니다.
테헤란의 석유 저장 시설에 대한 공격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심각한 건강 피해를 초래할 것입니다.

2년 반, 가자의 조용한 생태학살

미국-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전부터, 또 하나의 학살이 환경을 체계적으로 파괴해 왔다. 가자에서는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2년 반째 이어지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2025년 9월 23일 발표한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이후 가자의 나무작물 97%, 관목지 95%, 연간 작물 82%가 파괴됐다. 대규모 식량 생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물도 마찬가지다. 하수 처리 시스템의 붕괴와 배관망 파괴, 그리고 정화조 임시 사용이 가자 주민 대부분이 의존하는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해안과 해양도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로서는 검사조차 불가능하다. 그 결과 수인성 질병이 폭증했다.

건물도 기반 시설도 무너졌다. 가자의 약 25만 채 건물 중 78%가 손상되거나 파괴됐다. 이로 발생한 잔해는 6,100만 톤. 이 중 15%는 석면, 산업폐기물, 중금속에 오염됐을 위험이 있다. 이 잔해를 치우는 데만 15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된다.

그린피스 중동·북아프리카(MENA) 사무소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 첫 120일 동안에만 가자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50만톤 이상이다. 이는 100개 이상의 기후취약국 연간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퀸메리대학교·랭커스터대학교 연구팀은 재건 과정을 포함한 장기 탄소 비용을 3,100만 톤으로 추정한다. 팔레스타인 환경 NGO 네트워크는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에코사이드"라고 규정했다. 테헤란과 레바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가자에서 2년 반 동안 벌어져 온 일의 연장선에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가자 전쟁 환경 영향을 분석한 동일 연구팀은 이란 전쟁 첫 14일간 배출된 온실가스를 500만 톤 이상(CO₂ 환산)으로 추산했다. 아이슬란드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넘는 규모다. 그중 240만 톤은 주택과 인프라 파괴에서 나왔다. 이란 적십자사에 따르면 약 2만 채의 민간 건물이 손상됐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 수치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테헤란 시민들은 석유 화재 연기만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니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나오는 콘크리트 분진, 석면,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있다. 테헤란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어서 오염물질이 빠져나가기 어렵다. 폭격이 끝난 뒤에도 시민들의 유해 물질 노출은 계속된다. 재건 과정에서 잔해를 허물고 다시 짓는 동안 같은 물질이 다시 공기 중에 퍼지기 때문이다.

공기뿐 아니다. 물 인프라에 대한 피해는 중동 지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공습으로 이란의 담수화 시설이 파손됐다.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바레인의 담수화 시설이 파손됐다. 쿠웨이트 국제공항의 연료 탱크도 이란 드론에 피격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 타누라 정유시설, UAE의 루와이스 정유시설과 푸자이라 항만도 공격을 받았다. 공격의 주체는 다르지만, 파괴되는 것은 같다.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이동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시설이다. 유엔대학교 물·환경·보건 연구소의 모하메드 마무드 중동기후수자원정책 책임자는 "평화로운 때에도 깨끗한 식수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며 "물 인프라에 대한 피해는 오래 지속된다"고 말했다.

레바논의 상황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3월 2일부터 공습을 재개해 리타니강 다리 최소 6개를 파괴하고, 남부 레바논의 수도 시설과 태양광 발전 설비를 폭격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주거지역에서의 백린탄 사용을 보고했다. 백린탄은 피부에 닿으면 뼈까지 태울 수 있으며, 토양과 물을 오염시킨다. 그린피스 중동·북아프리카(MENA)는 가자에서 나타난 파괴 패턴, 의료시설 공격, 민간 인프라 파괴, 광범위한 환경 파괴가 레바논에서도 반복되고 있으며, 이러한 초토화 전술이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연대/전쟁 규탄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이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연대/전쟁 규탄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이다.

바다가 기억하는 전쟁들

지난 3월 말, 페르시아만에서는 약 20척의 선박이 공격을 받았다. 침몰한 군함에서 연료와 중유가 흘러나왔고 유조선 일부에서도 기름이 유출됐다. 해당 해역에는 산호초, 해초 서식지, 듀공과 바다거북의 산란지가 있다.

페르시아만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수온이 상승하고 있는 해역 중 하나다. 기후변화로 이미 산호초와 해초 군락이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전쟁으로 인한 석유 오염이 겹치고 있는 것이다. 그린피스 독일 사무소는 선박 이동 데이터와 위성 영상을 분석해 페르시아만에 갇힌 유조선 85척 이상이 총 210억 리터의 원유를 싣고 있으며, 피격 시 기름이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 그린피스 독일의 니나 노엘레(Nina Noelle)는 "페르시아만에서 단 한 건의 기름 유출만으로도 이 취약한 해양 생태계가 복구 불가능하게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얕고 폐쇄적인 해당 해역에서는 오염물질이 외해처럼 빠르게 희석되지 못한다. 해저 퇴적물에 가라앉은 중금속과 유해물질은 오랫동안 남는다.

이 바다는 이미 전쟁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유조선과 석유 플랫폼이 광범위하게 공격받았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유정 약 700개에 불을 질러 수개월간 타올랐다. 당시 그린피스는 이란 해안에서 석유 오염 현장 조사를 수행했다. 35년이 지난 지금, 같은 바다에서 세 번째 전쟁, 세 번째 파괴가 이어지고 있다.

유출된 원유는 바다 생태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피해를 일으킵니다.
유출된 원유는 바다 생태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피해를 일으킵니다. © Derick Hingle / Greenpeace

보이지 않는 위협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의 유일한 가동 원전인 부셰르 원자력발전소는 네 차례 공격을 받았다.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는 국제사회의 핵 안전에 대한 "무관심"을 비판했다. 유엔 핵감시기구(IAEA)는 모든 당사국에 자제를 촉구했지만, 폭격을 받은 이란 핵시설에 대한 현장 사찰 접근은 여전히 차단된 상태다. 카타르 총리는 부셰르 원전 피격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하며 "바다가 완전히 오염되고, 3일 안에 물이 바닥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의 얀 반데 퓌터(Jan Vande Putte) 핵·방사선 전문가는 전력망 공격이 부셰르 원전의 냉각 시스템에 연쇄 장애를 일으켜 국경을 넘는 핵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셰르 원전은 페르시아만 해안에 위치해 있어, 사고 시 해양 오염은 걸프 연안국 전체로 확대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위협은 원전 만이 아니다. 폭격된 이란의 군사 시설 중 상당수는 지하 깊이 매설되어 있거나 주거지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어떤 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로 스며들고 있는지, 충분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백악관 앞에서 ‘전쟁 반대(NO WAR)’ 메시지를 전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백악관 앞에서 ‘전쟁 반대(NO WAR)’ 메시지를 전하는 그린피스 활동가들 © Tim Aubry / Greenpeace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번 전쟁에 대해 유엔대학교 물·환경·보건 연구소의 카베 마다니 소장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싸워온 사람으로서, 이것은 수년을 후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CEOBS의 더그 위어 소장은 "인도적 필요가 먼저이기 때문에 환경 피해는 대부분의 분쟁 이후에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염된 토양, 중금속이 가라앉은 해저,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는 시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는 것들이다.

전쟁이 파괴한 것의 목록은 길다. 가자의 농지와 식수, 테헤란의 공기, 페르시아만의 바다, 바레인과 이란의 식수, 레바논의 수도관과 다리, 부셰르 원전 주변의 안전. 이것은 군사 목표물의 목록이 아니다. 사람들이 숨 쉬고, 마시고, 살아가는 조건의 목록이다.

전쟁의 환경 피해는 부수적 손실이 아니다. 그 자체로 폭력이다. 하지만 현행 국제법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거의 없다. 이제 그 폭력의 주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면책이 계속되는 한, 같은 일은 반복된다.

그린피스는 다음을 요구한다. 가자와 레바논 등 이 전쟁에 휘말린 중동 모든 곳에서 조건 없는 영구 휴전, 민간인을 표적 삼는 모든 국사행동의 중단,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종식, 포괄적 무기금수와 국제법 위반 책임자에 대한 제재, 유엔과 인도주의 기구의 막힙없는 구호 접근, 지금 지중해를 건너는 세계 수무드 플로틸라의 안전한 통항.

그리고 이 전쟁이 드러낸 화석연료 의존의 취약성을 마주하고, 전쟁의 에너지에 흔들리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사회로 체질을 바꿔 나갈 것을 요구한다. 전쟁 경제에서 벗어나는 길이 곧 평화 경제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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