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산불 이재민과 함께한 1년 : 잿더미 위에서 시작된 회복
2025년 3월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안동, 영양, 청송을 거쳐 영덕까지 번지는 데 불과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불길은 결국 바닷가에 정박해 있던 선박까지 집어삼켰고, 3월 28일 14시 30분이 되어서야 주불 진화가 완료됐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영남 전역에서 주택 3,848동이 피해를 입었고, 4,45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04,000헥타르에 달하는 산림이 사라졌습니다. 그린피스 리서치 유닛이 제작한 지도에 따르면, 경북 산불 피해 범위를 서울과 경기도 지역 지도에 겹쳐본 결과, 서울 대부분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이자, 인명 피해 역시 최악 수준으로 기록된 산불이었습니다.
그린피스 리서치 유닛이 제작한 경북 산불 피해 범위 표시 지도
[가운데 둥근 원을 좌우로 드래그 해보세요]
그린피스 기후재난 대응팀, 산불 현장으로 가다
그린피스 기후재난 대응팀은 산불 피해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협력해 온 단체들(원불교 봉공회, 피스원즈 코리아)과 함께 의성을 시작으로 안동, 청송, 영덕까지 산불 피해 지역을 따라 이동하며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산불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각 도시들은 연기로 가득했고, 매캐한 냄새는 이곳이 지금도 ‘진행 중인 재난 현장’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며 현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산불 통합지휘소에서는 산불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이재민이 대피해 있는 시설을 찾아 피해 규모를 파악했습니다. 이후 마을로 직접 들어가 주민들을 만나며 집과 농지, 삶의 터전이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했습니다.
청송 지역의 한 피해 주민은 잿더미가 된 집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가 우리 증조할배가 지은 집인데…… 가슴이 펑떵펑떵 뛰고 눈물만 나.”
짧은 한마디 속에, 한 세대가 아닌 여러 세대가 함께 쌓아온 삶의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피해 상황을 확인한 뒤, 그린피스 실무자로 구성된 후속지원팀은 다시 현장에 파견되어 원불교 봉공회와 함께 이재민 급식 지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손수 따뜻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담으며 하루빨리 이재민이 일상을 되찾기를 바랐습니다.

긴급대응에서 복구 활동으로
긴급 대응과 피해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그린피스는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마을에서 본격적인 복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품면은 24개 전체 마을에서 300가구가 피해를 입었고, 533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지역입니다. 그중 면 소재지인 신안리는 25가구가 피해를 입고 4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주택뿐 아니라 LPG 배관망, 체육시설 등 마을 기반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 40여 명은 마을회관을 임시대피소로 삼아 공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고령인 상황에서 하루 세 끼 식사 준비, 공간 청소, 빨래 등 공동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전국 각지에서 모인 그린피스 기후재난 시민대응단이 신안리를 찾았습니다. 피해 현장을 함께 돌아보고, 임시대피소로 사용하고 있는 마을회관을 청소하고, 급식 지원을 보조하며 주민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도와드리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이 마을은 산불 이전에 마을회관 증축과 목욕탕이 새로 지어져, 재난 시 임시대피소로 잘 활용될 수 있었습니다.

한 달쯤 뒤, 마을 공동부지에는 이재민이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임시주택이 들어섰습니다. 그린피스 기후재난 대응팀은 다시 현장을 찾아, 이재민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임시주택 입주 청소를 진행했습니다. 입주를 앞둔 분들을 떠올리며 바닥을 쓸고 닦고, 곳곳을 정리했습니다.
입주를 기다리며 현장을 지켜보던 한 이재민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감사해요. 내가 몸이 아파서 어떻게 청소할까 했는데 이렇게 봉사자분들이 와서 해주니 너무 고맙네.”
농촌 지역의 고령 인구에게, 재난 이후 집을 정리하고 짐을 옮기는 일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재난’이 됩니다. 다행히 그린피스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봉사자들이 찾아와 그 부담을 함께 나누었기에, 이 작업이 조금은 덜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산에 타버린 나무들이 베어지고, 전소된 집들이 철거되고, 임시주택이 하나둘 들어섰습니다. 마을은 서서히, 아주 조금씩 복구의 길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복구를 넘어 일상으로의 회복을 향해
이재민이 임시주택으로 옮겨 살기 시작하면서 눈에 보이는 복구 속도는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고, 밤마다 산불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재난 이후 심리 상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린피스는 심리교육 전문기관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교육원’과 함께 재난 심리피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어서 기후재난 시민대응단과 함께 ‘기록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기록 활동에 참여하겠다고 해주신 이재민 13명과 함께, 1월부터 3월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마을에서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이재민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산불 당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삶을 꾸려가고 싶은지 천천히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습니다.

이재민들은 처음에는 낯선 시민대응단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색하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직접 수확한 먹거리를 내어주고,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속마음을 들려주셨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회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3월 15일, 마지막 기록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한 이재민이 눈물을 훔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제 안 온다며 서운해서 어쩌나… 그래도 우리 잊지 말고 꼭 놀러와요.” 그 말을 들으며,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의 회복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진정한 회복을 위해, 바꿔야 할 것들
이렇게 13명의 이재민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한 권의 기록집으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록은 영덕 한 지역의 이야기를 넘어, 기후재난이 한국 사회 곳곳에 어떤 상처를 남기고 있는지 드러내는 작은 증언입니다. 재난을 경험한 시민, 재난에 대비를 하고자 하는 시민 그리고 정책 입안자까지. 이 이야기가 모든 시민의 마음속에 깊이 읽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린피스는 이 목소리들을 바탕으로, 기후재난 대응 체계를 재정비하고, 재난의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 변화를 정부와 국회에 요구할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더 큰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시민 여러분과 함께 묻고 행동하고자 합니다.
그린피스의 기후재난 대응 캠페인에 함께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