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산불 피해, 이재민 300명이 말한 진짜 복구의 현실
작년 3월, 영남 지역을 휩쓴 초대형 산불은 대한민국 역대 최대 피해 면적을 기록했습니다. 산불 1주년을 맞아 그린피스는 ‘녹색전환연구소’,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와 함께 안동·영덕·의성 세 지역 피해 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물적 피해부터 대피 경험, 임시주택, 심리 상태, 보상과 복구, 공동체 관계까지 재난의 전 과정을 주민의 응답으로 기록한 조사입니다.
결과는 산불 이후 1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 주민들의 삶이 복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고서 전문은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극심한 피해, 그러나 과소평가된 현실
역대 최악의 대형산불이었던 만큼, 응답자들의 물적 피해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불 이전 대비 이후 피해가 얼만큼 컸는지를 0~100% 척도(재해 이전의 상태를 0% 피해로 간주)로 물어본 결과, 전체 응답자 297명 중 65%는 주택 피해가 재난 이전 대비 80% 이상 피해가 발생했다는 응답을 했습니다. 이어서 가재도구 및 영업장의 경우 재난 이전 대비 80% 이상 극심한 피해를 보았다는 응답자는 각각 68%와 41%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의 응답자가 삶의 터전 뿐 아니라 생계 기반이 동시에 무너진 것입니다.
주민들이 느끼는 피해는 극심했던 반면, 행정기관의 피해 평가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피해체감 정도 대비 행정기관의 피해 평가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대부분이 행정기관이 피해를 과소평가했다고 답했습니다. 과소평가했다는 응답 비율을 살펴보니, 전체 응답자의 80%는 가재도구 피해가 과소평가 되었다고 답했으며, 영업장 및 주택 피해가 과소평가 되었다는 응답 비율은 각각 71%와 67%로 나타나 대부분의 응답자들의 피해평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수십 년 동안 일궈온 것들이 몇 분짜리 서류 조사로 ‘잔존 가치 없음’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산불로 인한 피해가 행정 시스템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답답함과 그로 인한 좌절감이 여전히 피해 지역에 남아 있었습니다.


정보 부족이 만든 불신의 연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가장 중요한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정보 부족이 행정 불신으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입니다.
복구지원비의 내역과 산정 근거를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3%에 불과했습니다. 확인 방법조차 몰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48%였습니다. 피해 현황, 복구 계획, 보상 절차 등에 대한 정보 제공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는 58%로, 적절했다는 응답자의 약 3배였습니다.
통계 분석 결과,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주민일수록 자신의 피해가 과소평가됐다고 느꼈고, 피해가 과소평가됐다고 느끼는 주민은 피해 산정 절차 자체를 불합리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보 부족 → 과소평가 인식 → 절차 불신으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가 확인된 것입니다.
보상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해 지자체에 문제를 제기한 응답자는 56%였지만, 합당하게 처리됐다는 응답은 5%에 불과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한 집단일수록 행정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더 낮아, 현행 이의신청 절차가 불신을 해소하기보다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PTSD 87%, 그러나 심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7%가 PTSD 위험 이상에 해당했고, 고위험군은 67%였습니다. 정상 범위에 해당하는 응답자는 8%에 불과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수준은 산불 경험의 충격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득 회복 수준이 낮을수록, 행정 신뢰가 낮을수록, 구호지원 배분이 불공정하다고 느낄수록 PTSD 위험이 높아지는 관계가 확인됐습니다. 반대로 정보 제공이 적절하고, 구호 배분이 공정하며, 공동체 결속이 유지되는 경우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수준이 낮아졌습니다.
피해 주민의 심리적 회복은 상담이나 치료 프로그램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계 회복,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공동체의 유지 등 복구의 모든 과정이 곧 심리적 회복의 과정입니다.

소득 회복의 조건은 공정한 행정
응답자의 85%가 산불로 인해 경제활동에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습니다. 소득 회복이 10%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38%, 앞으로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가진 응답자는 52%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특히 과수 농가의 경우, 사과나 자두 같은 다년생 작물은 묘목을 심어도 정상 수확까지 5~7년이 걸립니다. 당장의 시설과 수확물 손실뿐 아니라, 수년간의 미래 소득이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 소득 단절은 현행 보상 체계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소득 회복에 대한 전망이 실제 피해 규모뿐 아니라 행정에 대한 신뢰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피해사실 조사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인식하는 주민일수록 현재 소득 회복 수준이 높고, 미래 회복에 대한 전망도 긍정적이었습니다. 반대로 조사가 불합리했다고 느끼는 주민은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비관적이었습니다. 경제적 회복은 돈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과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당사자는 모르는 산불특별법
응답자의 80%가 산불특별법의 내용을 모르거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내용을 아는 응답자 중에서도 58%가 주민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피해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가 법의 존재도 내용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법이 실효성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법의 내용적 보완과 함께, 개정 과정을 통해 피해 주민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피해 주민이 복구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이번 실태조사는 산불 피해의 회복이 보상 금액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면 불신이 생기고, 불신은 절차에 대한 불만으로, 다시 심리적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피해 주민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자기 삶을 재건하는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 정보를 투명하게 전달하고 복구 과정에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상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그린피스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산불특별법의 실효성 강화와 피해 주민 중심의 복구 체계 마련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기후재난 현장에서의 기록과 활동이 계속될 수 있도록 지금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