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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증언집: 재난을 살아내는 중입니다

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지난 2025년 3월에 발생한 영남 초대형 산불은 하루 만에 마을을 삼켰습니다. 산불이 발생한 이후 시간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기록되지 않았던 시간과 그 시간을 버텨낸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기후재난이라는 용어는 흔히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매년 반복되는 산불, 폭우, 폭염, 극한 기후 현상들이 기후재난이라는 말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기후재난의 위험성은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재난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 이후의 일상을 쉽사리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린피스 기후재난 대응 캠페인팀은 기후재난 시민대응단과 함께, 지난 2025년 3월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영덕 신안리 마을에서 재난 직후부터 일상을 찾아가는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은 마치 사고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 외상을 남깁니다. 우리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재난 이후의 삶을 기록하고, 회복을 위한 방법들을 함께 찾아 나섰습니다. 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남겼고, 이제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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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살아내는 중입니다’ 책 표지, 2026년 6월 발간 @greenpeace
‘재난을 살아내는 중입니다’ 책 표지, 2026년 6월 발간 @greenpeace

재난을 살아내는 중입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뉴스는 그것을 몇 가지 숫자로 빠르게 정리합니다. 피해 규모가 얼마인지, 복구비가 얼마인지, 임시주택이 언제 발주되었는지. 이런 정보들은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장들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대피했는지, 잠은 어디서 잤는지, 임시주택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우리가 고민했던 지점이 바로 이 간극입니다. 이 책은 그 간극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불길이 지나간 신안리의 모습

그날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신안리 마을의 조용하고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밥을 먹고, 씻고, 잘 준비를 마치던 평범한 저녁 위로 갑자기 산불이 닥쳤습니다. 청송에서 넘어온 산불은 초속 25미터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습니다. 이재민들은 날아드는 불똥을 피해 급히 대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집을 등지고 나설 때만 해도,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설마 조금 있다 돌아오겠지, 내일은 다시 들어오겠지.'

나올 때는 마지막인 줄 몰랐지만, 결국 돌아갈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한 이재민은 급히 대피하느라 양말도 한 짝밖에 신지 못했습니다.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던 중 전화를 받고 다급히 뛰쳐나왔기 때문입니다.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상황을 말해주는 양말 한 짝, 그 긴박함과 상실감이 함께 느껴집니다.

산불로 다 타버린 영덕 신안리 뒷산 @greenpeace
산불로 다 타버린 영덕 신안리 뒷산 @greenpeace

12인의 증언

대피 경보를 들은 사람이 있고, 듣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경보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의 문제로만 바라봐선 안 됩니다. 경보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빨리 전달되었는가가 핵심입니다.

"대피하세요!"는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실제 대피와 생존으로 이어지려면 직접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그날의 대피는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수많은 장벽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챙기다 대피가 늦어진 사람이 있었고, 방송을 들었지만 가족과 이웃을 챙기느라 버스를 뒤늦게 탄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피 끝에 도착한 곳은 영덕군 체육관이었습니다. 혼란 속에서 가족이 왔는지, 이웃이 왔는지 계속 확인하는 이재민들. 대피소마저 불길에서 안전하지 않았기에, 첫날 밤을 모두 뜬눈으로 불안을 삼키며 보내야 했습니다.

열흘이 지나서야 체육관에서 당분간 지낼 임시 주거지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 주민들은 가족·친척 집이나 모텔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신안리 주민들은 모두 함께 마을 회관으로 돌아갔습니다. 재난을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을 회관에 조리 시설이 갖춰져 있어 가장 중요한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장님의 식당과 마을 회관을 활용해 잠자리를 마련하고,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그 시간들을 버텨냈습니다.

영덕 신안리 산불 피해 이재민이 불타기 전 살던 집을 그리고 있다. @greenpeace
영덕 신안리 산불 피해 이재민이 불타기 전 살던 집을 그리고 있다. @greenpeace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

산불 이후 불면증이 심해졌다는 한 이재민은 수면제를 먹어도 도통 나아지지 않아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지만, 그 시간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밤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잠마저 오지 않으면, 누워 있는 사람은 기억과 통증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합니다. 저마다 방법을 찾습니다. 커피를 끊고, 운동을 하고, 약을 먹어보고, 밤마다 잠을 청해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재난 이후 심리가 안정되지 않으면, 매일 찾아오는 밤도 안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재민들은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로 소중한 물건들과 추억을 잃었지만, 다시 수납장을 채우며 임시주택 안에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회관을 찾아 이웃들과 잠깐 웃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일을 살아겠다고 다짐합니다.

시민대응단이 마을을 찾을 때마다 마을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조심스러운 거리에서 서서히 정이 퍼지는 거리로. 결국 사람이 회복하는 데에는 아픔과 고통의 경험을 '사람과 함께 나누는 과정'이 필요했음을 신안리는 보여주었습니다.

영덕 신안리 기후재난 피해 기록을 함께한 기후재난 시민대응단 @greenpeace
영덕 신안리 기후재난 피해 기록을 함께한 기후재난 시민대응단 @greenpeace

기후재난 시민대응단의 이야기

기후재난 시민대응단 3기는 2025년 11월 사전 교육을 마치고 기후재난 현장에서 복구와 회복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영덕에서는 산불 피해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매달 함께 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에서 시민대응단을 맞이하는 이재민들의 반응도 달라졌지만, 직접 참여한 단원들 스스로도 변했음을 느꼈습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활동이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대응단이 전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재민을 기록하러 갔던 단원들은 돌아온 뒤 자신도 바뀌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재민의 삶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혼자 듣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진심으로 시작된 이 활동에서, 우리는 책을 통해 영덕 산불 피해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더 많은 시민이 서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에은 대단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지식이나 전문성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 이 행동이 기록이 되고, 변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도 그 변화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함께 기후재난의 증인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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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5명의 그린피스 후원자님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발간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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